[변상욱 칼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가장 황당했던 존재는 언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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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슈에서 가장 당황하고 황당했던 존재는 언론이었다.
10여년을 연속해 이 맘 때면 고은 시인 자택으로 기자들이 몰려가고 방송사의 중계차량들이 북적이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노벨문학상 취재보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할 만큼 허술했다.
고은 시인 등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것은 2002년쯤부터.
고은 시인의 경기도 안성 집으로 기자들이 몰려간 것은 2005년쯤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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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변상욱 언론인]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슈에서 가장 당황하고 황당했던 존재는 언론이었다. 10여년을 연속해 이 맘 때면 고은 시인 자택으로 기자들이 몰려가고 방송사의 중계차량들이 북적이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노벨문학상 취재보도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할 만큼 허술했다.
고은 시인 등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것은 2002년쯤부터. 고은 시인의 경기도 안성 집으로 기자들이 몰려간 것은 2005년쯤부터다. 당시 영국의 도박사이트가 고은 시인의 선정을 높은 확률로 예상한 것이 원인이었다. 도박사이트에서 확률이 높다하니 외신 몇 곳이 기사로 다뤘고 우리 시인의 이름이 외신에 거론되자 언론들은 열심히 받아쓰며 집으로 몰려갔다. 10년 정도 그리했다. 그리고는 잊었다. 결과만을 생각하니 잇따른 실패에 좌절했고 우리 문학에 애정도 없었다. 언론사에 문학계를 장기간 담당해온 전문 기자가 있기는 했을까.
저명한 문학상 중 맨부커상과 메디치상, 밀라파르테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한 작가가 등장했는데도 그 작가를 노벨문학상에 연결해 보는 걸 잊었다. 먼 훗날에나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라며 관심을 접었다. 노벨상의 추천과 심사과정, 지구촌에서 바라보는 우리 현대사의 서사와 문학의 성과, 우리 문화의 국제적 지위의 변동과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대해 그만큼 무지했다고 해야겠다.
노벨문학상 보도에서 눈에 띄는 언론사는 단연코 한국일보다. 1년 전인 2023년 10월 2일 자 기사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5일 발표, 아시아·여성에게 갈까”라는 제목으로 비유럽권 작가, 특히 여성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내다봤다. 물론 도박사이트를 참고했고 한강 작가가 후보군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자료를 찾고 출판사에 자문을 구하고 한림원 심사위원 구성의 변화까지 짚어가며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올해에도 <'한강 사랑'은 프랑스·일본이 최고… 노벨문학상 홈피엔 “안 읽어봤다”가 60%>라는 제목으로 다른 언론사보다 넓은 시야로 해당 이슈를 다루었다. 다른 언론사는 한국문학번역원·대산문화재단을 인용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열심히 번역·출판해 왔다는 내용만 보도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2010년 베트남어로 번역된 걸 시작으로 28개 언론, 82권의 책이 번역됐다고 소개하면서 노벨문학상 홈페이지,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출판사, 번역가, 독자들의 반응까지 성실하게 보도하고 있다.
노벨상 보도는 수상 소식에 그쳐선 안 된다. 우리를 살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시대의 질곡과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작가도 저널리스트도 그 맡은 책무가 다르지 않다. 한강 작가는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처와 어둠, 우리들의 트라우마에 작가로서 책임을 다하려 했다.
우리 언론의 책무는 왜 5·18이 '세계화'는 이루어내도 '전국화'는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는지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벨위원회에 '광주'의 이름이 내걸리는데 왜 우리는 광주 5·18을, 4·19 함성을, 선열들의 독립항쟁을 묻어버려야 한다고 하는지 따져야 한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에 반응하는 우리 국민의 자학적이고 흉측한 태도들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찌 풀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세월호, 이태원 등 '우리'라는 공동체를 할퀴어버린 참사들을 소설, 연극, 시로 그려내면 외국 문학상은 수상해도, 국내에선 논란이 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현실도 헤짚어 보자.
정유라 씨 등의 SNS 글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모셔다 옮겨 담는 수준의 기사를 써내고 그걸 싣는 언론이라면 제발 문을 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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