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한 실적형 리더’
백화점 혁신의 주역
글로벌 도약 과제 남아
신세계그룹의 경영 승계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명희 총괄회장은 지난 4월 30일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주)신세계 지분 전량(10%)을 증여했다. 이에 따라 신세계그룹은 정유경 회장이 백화점 부문을, 정용진 회장이 이마트 부문을 각각 맡는 남매 경영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정유경 회장은 2015년부터 신세계 총괄사장으로 백화점 사업을 담당해 왔으며, 지난해 회장으로 승진했다. 대외 활동이 거의 없어 조용한 경영 스타일로 평가받지만, 매출과 사업 재편 등 실적을 통해 경영 성과를 입증해 왔다.
정 회장은 기존 백화점 업계의 관행을 과감히 재구성했다. 대구 신세계에서는 명품 매장을 5층에 배치하고, 브랜드 간 벽을 허물어 ‘전문관’ 개념을 도입했으며, 음식점을 별도 거리 형태로 구성하는 등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전략은 고객 동선 최적화와 브랜드 간 시너지 제고를 목표로 한 것이다.

2016년 문을 연 대구 신세계는 정 회장의 실험적 전략이 적용된 첫 점포로, 동대구터미널과의 연결성을 활용해 명품 매장을 5층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함께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당시에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으나, 주요 명품 브랜드 입점과 함께 안정적인 성과를 나타내며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정 회장은 백화점의 기능을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지역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지방 점포에도 고급화 전략을 적용해, 대구점에는 아쿠아리움, 콘서트홀 등 체험형 시설을 도입했다.

강남점 리뉴얼 역시 정 회장의 주도 아래 진행됐다. 2016년 기존 매장을 대폭 증축해 면적을 확대하고 입점 브랜드 수를 600여 개에서 1,000개 이상으로 늘렸다. 더불어 브랜드 중심이 아닌 상품군 중심의 전문관 큐레이션 방식을 도입해 고객의 편의성과 선택 폭을 강화했다.
올해 4월 리뉴얼한 신세계 본점은 문화유산을 현대적 공간으로 재해석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옛 제일은행 본점을 리모델링해 ‘더 헤리티지’로 재탄생시켰으며, 내부에는 샤넬 단독 매장을 비롯해 전통미를 살린 공간 구성으로 백화점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유경 회장은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과 유사한 경영 방식을 보이는 측면도 있다. 특히 ‘인재 운용’에서 그 면모가 드러난다. 이 총괄회장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인물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핵심 전략이 수립된 이후에는 사업 실행과 관련한 세부적인 의사결정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며, 부동산 매입이나 인수합병(M&A)과 같은 실무에도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톰보이 인수 후 디자이너에게 브랜드 운영을 위임했고, 자주(JAJU) 리뉴얼 프로젝트에는 김경은 신세계 아트스페이스 소장을 본부장으로 발탁한 뒤 전권을 부여했다.

정 회장은 수치 중심의 경영 원칙을 고수하며 명확한 목표 설정과 실행을 강조한다. 그는 회의에서 “이익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지표”라며, 조직 전체가 수익성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경영 전략은 신세계의 실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2015년 약 5조 원 수준이던 신세계 매출은 2024년 기준 11조 5,000억 원으로 확대됐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약 2배 증가했다. 자산도 7조 9,000억 원에서 15조 원 규모로 늘어났다. 신세계 강남점은 2017년 이후 8년 연속 전국 백화점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9년에는 업계 최초로 연 매출 2조 원을 돌파했다. 2023년부터는 2년 연속으로 3조 원 매출을 넘겼다. 대구점도 2021년 오픈 4년 만에 연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향후 정 회장은 단순히 ‘대한민국 대표 백화점’ 수준을 넘어서, 아시아와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백화점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정유경만의 신세계’를 구체화하는 일 역시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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