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미래를 걷다...친환경으로 이어가는 축제 [걷자, 올레 ③]
#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새로운 대화의 시작입니다. 제주올레 길은 그저 우리가 지나가는 일방적인 통로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존재를 읽어내고 엮어가는 ‘선(線)’입니다. 길 위에서 우리는 자연이 남긴 자취를 따르면서 동시에 제 흔적을 남깁니다. 영국 사회인류학자인 팀 잉골드(Timothy Ingold, 1948~)의 ‘선과 매듭’ 개념처럼, 우리의 삶은 끝없이 얽히고 풀리는 하나의 긴 실타래와 같습니다. 각자의 발걸음은 매듭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연과 교감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길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감각적 흐름으로 재구성됩니다. 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 빛, 공기와 교감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느낍니다. 올레는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된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 걷는 길은 일회성을 띤 경험이 아니라, 지나온 자취들이 모여 서로 교차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입니다.
‘제주올레걷기축제’는 이러한 길의 본질을 다시금 성찰하면서, 우리가 남긴 흔적들이 어떻게 미래를 향한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레는 곧 자연과의 대화이자,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미래의 ‘선’이기 때문입니다.
<글 싣는 순서>
① 걸어서 제주 한 바퀴, 437km : "길 위의 사색, 나를 향한 여정"
② 따로 또 같이 걷는 즐거움 : 마을과 함께 만드는 축제
③ 제주의 미래를 걷다: 친환경으로 이어가는 축제
④ 올레길 위에서 문화를 만나다 : 올레 위 문화 공연
⑤ 자원봉사와 후원의 힘 : 올레꾼, 봉사자들이 같이 흥겹게 만들어가는 축제
■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최소한의 디자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목적지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표식인 노란 화살표가 있습니다. 800km 장거리 여행에서 도보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란 화살표를 따라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437km 제주도 한 바퀴를 걸어 여행하는 제주올레 길에는 어떤 표식이 있을까? 2007년 3개의 코스를 개장한 제주올레 길을 안내한 것은 오직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뿐이었습니다. 매년 제주올레 길을 찾는 도보 여행자가 급증했고 제주올레 길 역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길을 내면서 코스도 따라 늘었습니다. 그럴수록 여행자들의 안전과 좀 더 체계적인 여행 길잡이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주올레 길의 이정표가 ‘간세’입니다. 제주올레가 올레 길 곳곳에 설치한 작은 조랑말 모양의 이정표로, 각 코스 시작점엔 안내판 등도 설치했습니다. 제주올레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최소한의 디자인이었습니다. 이정표 하나에도 친환경적인 고려가 중요했습니다.
때문에 ‘간세’는 자연풍광을 가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간단한 구조의 외곽선으로 디자인됐습니다. 초창기 ‘간세’의 소재는 친환경 소재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당분을 발효시켜 만든 천연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우리나라 식약청을 비롯해 해외 유수 기관으로부터 환경에 무해한 원료로 승인받은 천연 식물 합성수지가 쓰였습니다.
폐기할 때 땅속에 묻으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 분해됩니다. ‘간세’는 설치와 고정을 위해 매립 구조물을 땅속에 심는데, 이 또한 제주 지역의 자연 폐기물을 활용했습니다. 태풍이 한번 지나가면 제주 해안에는 비바람에 부러진 나무들이 떠다니는데, 이런 목재와 폐석재를 지지대로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연에 맞서는 힘이 부족해 몇 차례의 다른 시도 끝에 지금은 폐플라스틱을 재가공해 재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올레 길은 그 자체로 자연을 존중하는 길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인간은 자연의 자취를 따라가고, 자신도 자연의 일부가 됩니다. ‘간세’ 이정표는 그런 자연과의 교감을 상징하는 존재로, 우리가 걷는 길 위에서 그 의미를 더합니다.
■ “환경을 생각하며 걸어요”.. ‘클린올레’·‘그린올레’의 실천
길을 만드는 것보다 그 길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연의 품속에 있는 제주올레 길은 매년 변하는 자연환경의 힘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마주합니다. 2009년부터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수거하는 ‘클린올레’ 활동은 이런 환경을 지키기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당시 봉사자들은 종량제 봉투를 직접 구입하여 쓰레기를 수거하며 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길은 그저 한 번 내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해 자연은 제힘을 한껏 발휘했고, 그 길 위에 도전과제를 남겼습니다. 풀은 끊임없이 자라고, 태풍은 바닷가에 쓰레기를 밀어 넣습니다. 9월이 되면 제주를 강타하는 태풍이 바다에서 온 쓰레기들과 돌멩이들을 길 위에 던져놓으면서, 한때 완벽했던 길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후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유리창에 미역이 달라붙어 있더라고요. 자연의 힘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이사의 회상입니다. “주로 9월에 태풍이 많이 왔는데 한 달에 여러 차례 찾아오기라도 하면 완전히 ‘울고 싶어라’하는 마음이었어요. 사무국 모든 직원이 달라붙어 엉망이 된 길을 복구하느라 팔을 걷어붙이기 일쑤였어요. 그래도 이게 우리의 일이니까, 자연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 역할이니까 열심히 했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클린올레’와 ‘그린올레’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10년 전 시작된 클린올레는 서귀포시청과의 협조로 쓰레기 수거장을 마련해, 쓰레기를 정기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도보 여행자들은 제주올레 길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 활동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그들이 돌아간 자리가, 다음 사람에게는 깨끗한 자연으로 남도록 배려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제주올레는 매월 둘째, 셋째 주 토요일에 ‘제주올레 아카데미 총동문회 클린올레의 날’을 운영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이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 “축제는 곧 환경”...친환경으로 이어지는 ‘제주올레걷기축제’
길 위에서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연이 그 길을 우리에게 내어주었기에 가능합니다.
제주올레는 그 자연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사람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 불편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축제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실천을 요구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BYO (Bring Your Own)’ 캠페인입니다.
이번 ‘2024 제주올레걷기축제’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각자가 자신만의 컵과 수저를 지참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축제에서 맛있는 먹거리가 빠질 수 없지만, 플라스틱이나 일회용 용기를 사용할 경우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올해 축제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을 다회용 식판에 제공하면서, 수십 번씩 그릇을 씻고 나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불편함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자연을 보호하는 작은 실천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올해는 제주도가 다회용기 활성화 지원 사업을 통해 더욱 친환경적인 축제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제주올레는 축제 초반부터 이런 친환경 캠페인을 꾸준히 고수해 왔습니다. 축제 참가자 1만여 명에게 사전 안내를 통해 텀블러와 개인 수저를 꼭 지참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차나 음료를 제공할 때는 각자의 텀블러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저 편리하다는 취지를 넘어, 환경과 위생을 고려한 ‘실천적’인 캠페인입니다.
또한, 제주올레는 현수막이나 포스터를 제작할 때 ‘타이백’이라는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현수막들은 축제가 끝난 후 새활용되어 여권 커버로 재탄생합니다.
작년에 준비했던 축제 현수막들은 모두 여권 커버로 변신하여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와 공식 안내소에서 판매 중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제주올레는 친환경 축제의 모범을 보여주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내가 걸어온 길이 깨끗할 수 있도록”.. ‘클린올레’ 정신
클린올레는 단순한 환경정화 활동이 아니라, 제주올레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자연과의 소통입니다. 내가 남긴 쓰레기는 되가져가고, 남이 버린 쓰레기는 주워 오는 캠페인은 자연을 존중하고, 다음 사람을 배려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배낭에 쓰레기를 넣고 걷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많은 올레꾼이 자연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길 위에서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나눕니다. 축제에서도 클린올레는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았고 참가자들은 축제 시작점과 종점에서 클린올레를 실천하고 그 성과를 기록하며 완주 스탬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클린올레에 참여하는 모습은, 이 축제가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이사는 “‘제주올레걷기축제’는 그저 걷기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면서 “자연을 지키고, 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체득하는 자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축제는 우리가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WE WALK FOR GREEN]
JIBS 제주방송 김지훈 (jhkim@jibs.co.kr)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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