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만 넘어 2만도 바라본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홍길용 2026. 5. 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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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다양한 글로벌 유망산업에서 지배력
소프트파워까지 갖춰 호감·친밀도 높아
글로벌 자금의 K-증시 투자통로 넓히면
GDP 초월하는 글로벌 가치 인정받을만

1870년 영국은 세계 산업 생산의 30%를 차지했다. 세계 무역의 25%도 영국을 거쳤다. 1900년 무렵 영국은 세계 상선대의 절반가량을 지배했고, 신규 증기선 발주와 건조에서도 압도적 지위를 누렸다. 당시 영국은 섬유, 철강, 조선, 금융을 동시에 지배한 유일한 나라였다. 본토 인구는 약 3100만명에 불과했지만 4억 인구의 식민지가 시장과 원료 공급원 역할을 했다.

1960년 미국은 세계 GDP의 40%를 차지했다. 제조업이 GDP의 25%에 달했다. 자동차의 GM·포드, 항공의 보잉, 석유의 엑슨, 금융의 JP모건, 전자·전기의 GE·IBM까지 모두 세계 최고였다. 인구도 1억8000만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내수 시장을 갖고 있었다.

1960년대 독일도 자동차의 폭스바겐·BMW·벤츠, 화학의 바스프·바이엘, 기계·전자의 지멘스 등 여러 산업에서 동시에 세계적 기업군을 일궈내며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1968년 일본은 서독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올랐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성장 속도는 둔화됐지만 1995년 일본 GDP는 미국의 70%를 넘어섰다. 자동차의 토요타·혼다, 전자의 소니·파나소닉, 철강의 신일본제철, 조선업까지 동시에 세계를 지배했다. 인구 1억2500만명의 내수 시장도 강력한 기반이었다.

2021년 중국은 세계 GDP의 18%를 넘기며 과거 일본의 전성기 수준을 넘어섰다. IT의 텐센트·알리바바, 전기차의 BYD, 배터리의 CATL, 태양광의 롱기 등에서 불과 20년 만에 글로벌 챔피언을 키웠다. 인구 14억명의 시장을 가진 세계 최대 제조업 기지다. GDP에서 독일도 일본도 실패한 ‘미국 추월’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여러 산업에서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군을 배출한 나라는 이들 다섯 나라 정도다. 모두 글로벌 패권을 가졌거나 한때 패권에 도전했던 강대국들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들과 꽤 닮아 있다. 물론 한국이 과거의 영국, 미국, 일본, 중국처럼 세계 패권을 가진 나라는 아니다. 내수 규모도 작고, 기축통화도 없고, 지정학적 제약도 크다. 세계 GDP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6% 안팎에 불과하다. 전성기 영국의 6분의 1, 미국의 25분의 1,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韓 AI, 로봇, 에너지, 방산, 소프트파워까지 강자로

하지만 상장기업 포트폴리오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이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숫자와 다양성은 과거 강대국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이다.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도 삼성전자는 12위권, SK하이닉스는 16위권까지 올라섰다. 그런데 이익의 크기는 더 경이적이다. 일부 증권사 전망치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은 약 2540억달러에 달한다. 실현된다면 알파벳이나 엔비디아의 예상 영업이익을 넘어 글로벌 최상위권에 오르게 된다. 삼성전자 메모리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도 엔비디아, TSMC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민간 상장기업의 글로벌 이익 1위 계보는 사실상 미국 기업의 전유물이었다. 스탠더드오일, 엑슨모빌, 애플, 알파벳, 엔비디아가 그 자리를 이어왔다. 미국 밖의 제조기업이 이 자리에 도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국 반도체가 지금 그 문턱에 서 있다.

반도체만이 아니다. 자동차에서 현대차·기아 합산 판매 약 730만대는 세계 3위권이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에서도 강자로 꼽힌다.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는 고부가 선박에서 세계 최상위 경쟁력을 갖고 있고, 해양 방산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바이오 위탁생산, 즉 CDMO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3위권 기업으로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17곳과 계약을 맺고 있다.

방산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가 글로벌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2차전지의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 전력·발전의 두산에너빌리티·HD현대일렉트릭까지 있다. AI, 조선, 모빌리티, 로봇, 방산, 유틸리티. 지금 글로벌 자본이 몰리는 산업마다 한국의 간판 기업이 포진해 있다. 인구 대국의 전유물이던 산업 다양성을 인구 5100만명의 나라가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드파워만이 아니다. K-팝과 K-드라마 같은 콘텐츠에 K-뷰티, K-푸드까지 더한 넓은 의미의 K-컬처 수출은 2025년 379억4000만달러로 커졌다. 반도체, 자동차에 이은 한국의 주요 수출군으로 올라선 셈이다. 특히 K-뷰티는 더 극적이다.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은 114억달러를 넘기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일부 분기 기준으로는 미국 수출액을 앞서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20세기 이후 영미권을 제외하고 글로벌 대중문화의 메인스트림을 이 정도로 흔든 나라는 드물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게임·만화가 강력한 글로벌 팬덤을 만든 서브컬처형 소프트파워였다면, K-컬처는 음악·영화·드라마·뷰티·음식이 동시에 대중 소비의 한복판으로 들어간 메인스트림형 소프트파워에 가깝다. 일본은 자동차·전자의 하드파워가 먼저였고 소프트파워는 그 주변에서 확장됐다. 한국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동시에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글로벌 빅5 노리는 K-증시, ‘멀티 모달’의 위력

*챗GPT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그래프입니다.

지난 7일 한국 증시 시가총액은 4조6000억달러를 넘어서며 캐나다를 제쳤다. 대만과도 박빙이다. 코스피가 1만까지 가면 인도 증시도 넘어설 수 있다. 집계 방식에 따라 미국, 중국권, 일본 다음의 세계 4~5위권 시장을 바라보게 된다.

순위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우리 증시가 과연 그만한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느냐다. 자격이 있다면 코스피 1만은 종착점이 아니라 중간 기착지가 될 수 있다. 세계의 돈이 한국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장기적으로 2만도 허황된 숫자가 아닐 수 있다.

대만은 TSMC 비중이 압도적이다. 캐나다는 풍부한 자원이 금융과 결합한 모델이다. 상당수 선진국들도 특정 산업이나 기업 집중도가 높다. 스위스는 제약의 로슈·노바르티스와 금융에 집중돼 있고, 네덜란드는 반도체 장비의 ASML과 에너지 중심이다. 덴마크는 노보 노디스크 하나가 주가지수를 좌우한다. 한국만큼 넓은 산업 스펙트럼에서 글로벌 1~3위 기업을 동시에 보유한 나라는 선진국 가운데서도 드물다. 유럽에서는 영국이나 프랑스 정도가 비교 대상인데, 시가총액에서는 이미 한국이 이들을 추월했다.

한국의 명목 GDP 순위만 보면 세계 5위권 시가총액은 과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 증시의 주력은 내수 기업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AI 투자 사이클을 먹고,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모빌리티 수요를 먹고, 조선 빅3는 LNG선과 해양플랜트, 군함 수요를 먹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넥스원은 유럽 재무장 수요를 먹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의 생산 수요를 먹는다. HD현대일렉트릭과 두산에너빌리티는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의 수혜를 받는다.

무엇보다 한국 증시는 내수의 축소판이 아니다. 세계 수요를 충족시키는 수출 제조업 포트폴리오다. 기준을 GDP에서 상품 수출과 제조업 경쟁력으로 바꾸면 코스피 1만은 과장이 아니라 당연한 가격표가 된다. 이미 한국 증시 시가총액은 GDP의 2배 가까이로 커졌다. 이를 두고 버핏 지수상 과열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버핏 지수는 내수와 자본시장이 모두 거대한 미국을 전제로 한 지표에 가깝다. 한국처럼 상장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이 해외 수요에서 발생하는 수출 제조업 경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코스피 1만은 시간 문제, 2만도 바라볼 수

골드만삭스는 지난 7일 올해 코스피 전망치 상단을 9000으로 높였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급등 후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에서 거래되고 있다”면서 “반도체 메모리 업종의 높은 이익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시장은 이익의 지속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부분의 증권사들도 8000선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 단기 급등에 따른 과열 우려도 있지만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실적이 양호하고,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전망이 계속 높아진다면 급격한 조정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의 힘만으로도 코스피는 1만을 바라보게 됐다. 반도체 외에 또다른 엔진들이 많다면 그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 PER은 삼성전자가 6배, SK하이닉스는 5.2배다. 대만 TSMC는 21배, 마이크론도 8~9배에 거래된다. SK하이닉스는 HBM, 즉 고대역폭메모리 점유율 60% 이상으로 마이크론보다 기술적 우위에 있다. 최근 다시 수요가 급증하는 낸드플래시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독보적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한국 증시에 있기 때문에 낮은 값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비교 그룹과 비슷한 값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일례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1위 론자를 넘는 프리미엄에 거래된다. 한국 기업이라고 무조건 할인받는 게 아니다.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SK증권은 글로벌 반도체 비교그룹 수준의 배수를 적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가를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50만원, SK하이닉스는 300만원이다. 현재 주가의 거의 두 배다.

물론 기업이 잘 나가고 이익 증가 추세가 견조하다고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주가는 이익에 배수, 즉 멀티플을 곱해 정해진다. 이익이 같아도 배수가 높으면 주가가 올라간다. 배수는 그 기업의 미래 이익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 기대를 형성하는 투자자가 많고 다양할수록 배수는 높아진다.

K-증시로 글로벌 자금 유입 통로 넓혀야

값은 누군가 사줘야 오른다. 한국 시장은 아직도 거래시간 제약, 복잡한 투자 절차, 환전 불편이 글로벌 자본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같은 물건인데 거래되는 장터가 좁으니 값이 낮은 것이다.

미국 반도체 ETF인 반에크 SMH에서 TSMC ADR, 즉 미국예탁증권 비중은 11.4%, 마이크론은 6.5%다. SK하이닉스는 0%다. 아이셰어즈 SOXX도 마찬가지다. 글로벌에서 가장 큰 패시브 자금, 즉 ETF와 인덱스 펀드가 한국의 간판 기업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구조다.

마이크론이 미국 시장 유일의 메모리 기업이다 보니, AI 메모리 수요가 폭발할 때 글로벌 자금이 마이크론 한 곳으로 쏠린다. 기술력과 무관한 이 구조적 프리미엄이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 격차를 만든다. 한국 기업 주식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금의 접근성이 높아져야 하는 이유다.

관심이 있어도 사기 어려우면 돈은 들어오지 않는다. K-소프트파워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개인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하드파워로 세계 수요를 먹고, K-컬처는 소프트파워로 세계의 관심을 끌어온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관심과 자금을 한국 자본시장으로 연결하는 통로다.

최근 하나증권-홍콩 엠퍼러증권, 삼성증권-인터랙티브브로커스, 키움증권-위불 등 외국인 통합계좌, 즉 옴니버스 계좌 서비스가 잇따라 가동됐다. 복잡한 절차 없이 해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채널이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MSCI 선진시장 편입도 서둘러야 한다. 선진지수에 들어가야 이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연기금과 장기 자금이 구조적으로 유입된다. 한국 기업이 이미 글로벌 선진기업이라면, 한국 자본시장도 선진시장에 걸맞은 구조를 갖춰야 한다.

SK하이닉스의 미국예탁증권 상장도 시험대다. TSMC는 1997년 뉴욕증권거래소에 ADR을 상장한 뒤 미국 가격이 대만 본주를 끌어올린 선례를 만들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ETF에 편입되면 글로벌 패시브 자금이 자동으로 유입되는 구조가 생긴다. 이는 단순한 상장 이벤트가 아니다. 한국 대표 기업을 세계 자본시장의 가격결정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의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는 아직 절반의 성공이다. 상법 개정 등을 통해 지배구조 문제에서는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기업이 좋아졌다고 주가가 저절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돈이 한국 주식을 쉽게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자본시장 거래 메커니즘의 혁신이다. 외환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외국인 투자 절차를 더 단순화하고, 글로벌 ETF와 패시브 자금이 한국 대표 기업을 담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스테이블코인 같은 새로운 결제·환전 수단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코스피 7000까지는 이익이 끌고 왔다. 코스피 1만부터는 접근성이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너머는 한국 기업 뿐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도 함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K-투자 시대는 기업의 시대를 넘어 시장 설계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범려(范蠡)는 춘추시대 말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전략을 수립한 천재 책사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는 관직을 버리고 세 번이나 거대한 부를 이룬 전설적 상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가 마지막으로 터를 잡은 곳은 도(陶)라는 땅이다. 그래서 그를 도주공(陶朱公)으로도 부른다. 도는 사람과 돈이 모이는 곳이었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범려가 도를 택한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천하의 중심이라 제후들이 사방으로 통하고, 화물이 교역한다 (天下之中 諸侯四通 貨物所交易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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