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선의 뉴한화] ‘클린 재무’ 안고 온실 밖 '독립 경영' 시험대

㈜한화가 테크·라이프 계열사를 분할해 신설 법인을 출범시키며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이끌어온 미래 신사업에 독립 경영 기반을 마련했다. /사진 제공=아워홈

㈜한화의 인적분할로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이끄는 유통·테크 사업 부문이 독립 신설 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사실상 계열분리 수순에 돌입했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장해온 그는 이제 독립 경영 체제에서 실적과 성과로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견조한 재무 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 집중 전략에 시장의 기대가 모이지만, 불안정한 유통 환경과 테크 부문과의 시너지 실현 여부가 기업가치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15일 ㈜한화 인적분할 보고서에 따르면 신설 법인 ‘한화머시너리앤드서비스홀딩스’에는 김 부사장이 그룹 내에서 미래 성장 사업으로 관리해 온 테크 및 라이프 부문이 포함됐다. 편입 대상은 테크 계열사인 한화비전, 한화모멘텀, 한화세미텍, 한화로보틱스를 비롯해 라이프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아워홈 등이다.

분할은 6월 임시 주주총회를 포함한 관련 절차를 거쳐 7월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분할 비율은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으로 존속법인이 76.3%, 신설법인이 23.7%다.

시장에서는 김 부사장의 전용 포트폴리오가 분리되면서 그룹이 사실상 계열분리 수순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장남 김동관 부회장(방산·조선·에너지)과 차남 김동원 사장(금융)의 주력 사업군은 ㈜한화에 잔류하는 반면, 삼남의 유통·테크 부문만 별도 지주로 분리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승계 구도에 따른 사업 분할은 예견된 일이었으나 별도 지주사 설립을 통한 독립 선언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신설 법인은 한화비전의 인공지능(AI) 기술력과 한화로보틱스의 공정 자동화 역량을 결합해 유통·식품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혁신하는 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테크 부문에서는 한화비전의 영상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 팩토리 및 리테일 특화 솔루션 시장을 개척하고, 라이프 부문은 아워홈의 제품 라인업을 프리미엄 중심으로 확대하며 식자재 밸류체인 전반에 스마트 자동화를 적용할 계획이다.

경영 자생력 시험대

신설법인인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사업 구조 /사진 제공=㈜한화

인적분할로 김 부사장은 독립 지배구조를 확보하며 경영 주도권을 강화했다. 신설 법인 초대 대표이사로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대표이사를 지낸 김형조 사장이 내정됐지만, 김 부사장이 유통과 테크 부문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만큼 경영 전반의 주도권은 여전히 그에게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독립 지배구조 확보의 이면에는 그룹의 지원 없이 자생력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따른다. 김 부사장이 총괄해온 일부 사업은 그간 한화의 유·무형 자산과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향후 계열분리가 마무리되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규제와 내부거래 제한 등으로 ‘그룹 프리미엄’ 효과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수혜 사례는 한화갤러리아다. 2021년 4월 갤러리아는 부채비율이 287%에 달하며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으나 장남이 이끄는 한화솔루션에 흡수합병되며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합병 명분은 ‘사업 시너지 및 경영 효율성 제고’였으나 한화솔루션이 자금난에 처한 갤러리아를 구하기 위해 소방수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었다.

합병 이후 갤러리아는 한화솔루션의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업황 회복에 힘입어 재무 구조를 개선했다. 이어 2023년 인적분할을 통해 독립법인으로 전환됐고 ㈜한화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다시 김 부사장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됐다.

미래 성장 축으로 육성 중인 한화로보틱스 역시 ㈜한화 모멘텀 부문의 자동화(FA)사업부를 분리해 신설된 법인이다. 출범과 동시에 김 부사장이 전략 총괄을 맡은 것은 그룹의 핵심 기술을 그에게 이전해 경영자로서 책임과 권한을 실질적으로 부여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세종대학교 황용식 경영학부 교수는 “유통·테크 부문이 분리되면서 김 부사장은 이제 그룹의 우산을 벗어나 홀로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더 이상 기존 한화그룹의 의사결정 체계나 방어막에 기대기 어려운 만큼, 오롯이 경영 능력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부채비율 2.9%...4조7000억 투자 승부수

신설 법인의 재무 구조가 매우 건전하다는 점은 독립 경영의 연착륙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인적분할 계획에 따르면 한화머시너리앤드서비스홀딩스는 약 8800억원의 자산 가운데 부채가 2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부채비율은 단 2.9%로, 안정적인 재무 상태로 출범한다. 그룹 차원에서 김 부사장의 경영 독립을 위해 초기 재무 부담을 사실상 제거해준 결과로 해석된다.

낮은 부채비율은 향후 공격적인 사업 확장과 외부 자금 조달에 유리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김 부사장은 최근 한화에너지 지분 15%를 매각해 825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향후 에프지코리아(파이브가이즈 운영사) 매각을 통해 추가로 600억~700억원 수준의 자금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재무적 여력을 바탕으로 김동선표 신설 법인은 공격적인 성장 전략에 본격 착수했다. 설비투자 2조1000억원, 연구개발(R&D) 2조원, 인수합병(M&A) 6000억원 등 오는 2030년까지 총 4조7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계열사들은 2030년까지 연평균 30%에 달하는 성장률(CAGR)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관건은 김 부사장이 독립 경영의 연착륙을 발판 삼아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황 교수는 “출발점에서 재무 건전성이 높다는 점은 분명 유리한 조건”이라면서도 “한화그룹의 방산·조선·에너지 분야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는 반면 유통·테크 산업은 외부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시장 적응 성과를 내는 동시에 내부 역량 강화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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