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에 없던 사륜구동 ‘갤로퍼’를 만든 진짜 이유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정세영 회장과의 경쟁 구도
‘갤로퍼’ 성공으로 승기 잡아
현대차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차종 ‘갤로퍼’의 성공은 정몽구 회장의 경영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으로 회자된다. 현대차는 지난 1991년 사륜구동 차량인 갤로퍼 생산에 성공했다.
1938년생인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선대회장의 둘째 아들로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정몽구 회장은 서울 경복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 서울사무소장, 현대자동차써비스 사장, 현대산업개발 사장,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사장을 거친 후 현대중장비산업 회장을 역임하며 그룹 내에서 영향을 키워왔다. 정몽구 회장은 형인 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가족과 그룹 내에서 실질적인 맏이 역할을 맡았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치열한 승계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000년 3월 정몽구 회장과 5남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충돌하면서 ‘현대家’ 역사의 전환점인 사건을 겪었다.
당시 정주영 선대회장이 후계자로 동생인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 관련 10개 계열사를 현대그룹에서 분리했다. 이때 6남인 아산재단 정몽준 이사장도 현대중공업그룹을 분리해 나갔다. ‘왕자의 난’ 이후 분리된 현대차그룹은 20년간 고속 성장을 이루며 현재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 정의선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그룹 내 갈등은 ‘왕자의 난’이 처음이 아니었다. 앞서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선대회장의 동생이자 자신의 삼촌인 정세영 회장과도 경쟁을 벌였다.
당시 현대차는 정세영 회장이 키운 이미지가 매우 짙었기 때문에, 정주영 선대회장 역시 선뜻 정몽구 회장에게 기업을 물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정주영 선대회장은 1980년대 후반 현대차를 꽉 잡고 있던 정세영 회장을 견제하기 위하여 완성차 사업 분야를 위한 신규 투자 지원에 나섰다. 이때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선대회장의 지원에 힘입어 사륜구동 스포츠실용차(SUV) 개발에 착수했다.
갤로퍼 개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국민 전반의 삶이 향상되면서 레저 활동 붐이 일어나는 시대적인 흐름이 주된 이유로 작용했지만, 당시 현대차는 사륜구동 SUV 제작 계획이 전무한 상태로 정몽구 회장과 정세영 회장 간의 다툼의 여지가 없다는 점도 큰 구실이 되었다.
미쓰비시 자동차 파제로(1세대)의 기술을 받은 정몽구 회장은 지난 1991년 갤로퍼 생산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갤로퍼는 출시 이후 큰 인기를 누렸다.
출시한 지 3개월 만에 3,000대가 판매되었고, 이듬해에는 국내 사륜구동 SUV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등 높은 사업성을 기록했다. 이러한 갤로퍼의 성공은 현대차 경영권이 정세영 회장에서 정몽구 회장으로 넘어가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이후 정주영 선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경영 능력을 인정하여 1999년 동생인 정세영 회장도 모르게 이·취임식을 거행했다. 이때 정세영 회장은 현대차의 명예회장이 되었고, 정몽구 회장은 회장직에 이름을 올렸다.
정주영 선대회장은 동생이 아닌 실질적인 장남 위치에 있던 정몽구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철저한 장자 상속 법칙을 고수하게 됐다. 이후 ‘왕자의 난’을 겪기도 했지만, 정몽구 회장 역시 장남인 정의선 회장에 현대차그룹 회장직을 물려주며 현재까지 장자 상속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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