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지 않다던데"…노벨상 한강 작품들 뭐부터 읽어볼까
초심자가 처음 읽기 벅찰 수도…초기작이나 시집부터 펴보는 것도 방법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이라는 크나큰 영예의 주인공이 되면서 그의 작품을 읽어보려는 독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그러나 한강의 작품, 특히 장편소설들은 시나 소설 등 문학 작품들을 전에 많이 읽어보지 않은 '초심자'들에게는 다소간의 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소설들은 대개가 명확한 스토리라인이 없는 데다, 환상과 실재가 혼재하고 주인공들은 사실과 몽환 사이의 어딘가에서 하염없이 방황하곤 한다. 선 굵은 스토리와 서사 방식의 소설에 익숙한 전통적인 문학 독자들은 그래서 한강의 소설들을 낯설어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질문들은 무성하나 대답은 없는 탈근대, 혹은 후기 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이라면서 "'미숙한 주체'들의 산문 형식이지만 그 '미숙성'에서 새로운 언어가, 형식이, 사상이 탄생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또한, 읽는 이에 따라서는 충격적으로 느껴질 법한 성(性)적 혹은 폭력적인 장면의 묘사는 한강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데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작가 본인은 '작가 한강'을 막 알게 된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자기 작품으로 '작별하지 않는다', '흰', '채식주의자' 등을 일단 꼽았다. 지난 10일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노벨위원회 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고, '흰'은 상당히 자전적인 내용이어서 아주 개인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도 있다"면서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로 시작해봐도 좋겠다"고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2021·문학동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빈집에 내려가서 인선 어머니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내용이다.
가공할 국가 폭력으로 자행된 제주 4·3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은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결코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결연한 의지를 섬세한 필치로 형상화했다. 한강은 이 소설로 작년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을 한국 작가 최초로 받았다.
'채식주의자'(2007·창비)는 2016년 영국 맨부커상 국제 부문(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으며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세계의 작가' 반열에 처음 올려놓은 문제작이다.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게 된 여자가 극단적인 채식을 하면서 나무가 되기를 꿈꾸고, 또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소년이 온다'(2014·창비) 역시 그의 문학 인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다.
신군부의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무력 진압과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다룬 이 작품은 열다섯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펼쳐 보인다.
'흰'(2016·난다)은 소설이면서 시이기도 한 독특한 글 모음이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달, 쌀, 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에 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을 묶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숨을 거둔, 작가의 친언니였던 아기 이야기에서 출발해 삶과 죽음에 관한 융숭 깊은 성찰을 담았다.
한강의 작품에는 강도 높은 성(性)적 묘사나 가공할 폭력이 잔혹하게 자행되는 장면 등이 상세하게 묘사돼 일부 독자는 "읽기가 힘들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2016년 5월 KBS 'TV, 책을 보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강 작가와 대담을 한 가수 김창완도 당시 방송에서 '채식주의자'의 폭력 장면 묘사에 대해 "뒤로 가면 너무 끔찍하다. 이걸 어떻게 읽나"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런 지적에 대해 "내가 오히려 가장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게 폭력의 장면"이라면서 "이 사람(주인공)이 왜 그렇게 폭력이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를 결국은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서 밖에 말할 수 없기에" 그렇게 썼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한강 읽기'는 매우 큰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평소 소설 읽기를 즐긴다는 김모(47)씨는 "한강은 너무 슬프고 괴로운 감정을 하염없이 느리게 쓰기 때문에 감정의 전압이 너무 높아 읽기 쉽지 않았다"면서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일찌감치 구매했지만 완독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 읽기의 어려움을 상·중·하로 봤을 때 한강의 소설들은 최소 '중상' 또는 '상' 이상"이라며 "읽는 데 매우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한강 입문'은 작가 본인이 직접 언급한 '흰'으로 시작해 초기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문학과지성사)이나 첫 장편 '검은 사슴'(1998·문학동네), 또는 작가의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문학과지성사) 등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사랑과 상실의 감정들을 노래한 전통적인 미학의 서정시들이 다수 수록돼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다소 수월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을 조금씩 읽어본 뒤에 한강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문학적 문제의식을 강렬한 소재와 서사로 풀어낸 작품들인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로 나아가는 것이 '한강 읽기'의 한 방법일 수 있겠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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