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보다 친구가 먼저.." 무명시절 재워주고 먹여준 친구에게 집 선물한 의리남

서울살이 초입, 이찬원은 친구 집에 얹혀 살았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 도전하기 위해 올라온 서울.

연고 하나 없던 낯선 도시에서 손 내밀 수 있던 사람은 단 한 명, 고등학교 시절 인연이 닿은 친구였다.

그 친구의 2.7평짜리 자취방은, 그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서울의 작은 안식처였다.

“그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밤 늦게까지 연습하고 친구의 자취방에 돌아왔기 때문에 밥을 챙겨줄 가족도, 마음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이찬원에겐 혼자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서글펐다.

누구보다 외로웠던 시절. 그 마음을 알기에, 지금은 누군가의 식탁이 되어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미스터트롯’으로 이름을 알리고 나서도, 이찬원은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그 친구였다.

좁은 방에서 함께 라면을 끓여 먹던 기억, 더운 여름에도 서로 배려하며 잠자리를 나누던 기억들.

그 시간은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친구에게 보답했다.

이전보다 열 배는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전세 보증금을 지원해줬고, “월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거창한 수식도, 계산도 없었다. 단지 함께 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 하나로 충분했다.

이찬원의 취미는 지인들 초대해서 집밥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다.

이찬원의 따뜻함은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미스터트롯’에 출전하기 전, 그가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부모님께 어렵게 200만 원을 빌려야 했다. 당시 그 돈은 집안 형편상 아주 큰 금액이었다.

“아직도 그 돈이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돈의 수십 배를, 아니 백 배 이상을 갚아드릴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럼에도 이찬원은 여전히 부모님이 살고 계신 23년 된 대구 집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그 집이 우리 가족의 행운을 가져다줬다”는 부모님의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 역시 쉽사리 떠날 수 없는 공간이라 했다.

그 집은 고된 시절을 함께 버텨낸, 작지만 단단한 ‘가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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