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우승이 아니다. 이번 승리는 숫자로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이자 스포츠가 가진 순수한 감동 그 자체다. 프로당구 PBA 투어에서, 그것도 36번째 대회 만에, 39번째 도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 베트남의 응우옌꾸옥응우옌(하나카드)의 우승 이야기다. 전율, 반전, 인간 승리… 이 모든 말이 동원돼도 부족하다.

이번 2025-2026 PBA 9차 투어 ‘웰컴저축은행 챔피언십’ 결승전은 당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감동을 줄 수 있는 서사였다. 상대는 다니엘 산체스. 이미 이번 시즌만 다섯 차례 결승에 올라 우승 2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고 있었던 ‘당구계의 전설’이었다. 더구나 이번 결승 전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던 산체스는 무실세트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는 냉혹하다. 아니,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초반 2세트를 산체스에게 내주며 벼랑 끝에 몰린 응우옌은 그때부터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낸다. 3세트에서 산체스의 기세가 살짝 꺾인 틈을 타 단 7이닝 만에 15-3 완승을 거두며 반격의 신호탄을 쐈다. 이어진 4세트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해 15-9로 가져가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경기 흐름은 다시 산체스로 넘어갔다. 5세트는 15-4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다시 한 세트 차로 앞섰다. 하지만 응우옌은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6세트는 그야말로 ‘괴력’의 연속이었다. 단 2이닝 만에 하이런 12점을 포함해 15점을 채우며 15-2 승리를 거뒀고, 세트스코어는 3-3. 승부는 마지막 7세트로 이어졌다.
이 마지막 세트에는 스포츠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 등장한다. 산체스는 첫 이닝에서 4점을 쓸어담고 이어 다섯 번째 득점을 성공시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심판에게 자신이 공격 전에 공을 건드렸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심판이 눈치채기도 전에 본인이 자진해서 파울을 고백한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승패를 떠나, 다니엘 산체스라는 인물의 품격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산체스의 파울 선언으로 공격권을 넘겨받은 응우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이닝에서 3점, 3이닝째 하이런 8점을 몰아치며 11-4로 세트를 마무리했다. 결국 세트스코어 4-3, 대역전승으로 응우옌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은 단지 결승전의 극적 구성 때문만이 아니라, 응우옌의 지난 여정을 되짚어볼 때 더욱 값지다. 그는 2022-2023시즌 우선 등록을 통해 PBA에 입성했다. 베트남 3쿠션 국가대표 출신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데뷔 첫해 시즌 랭킹 44위에 머물며 고전했다. 2023-2024시즌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반등의 실마리를 잡긴 했지만, 이후 성적은 32강 혹은 64강에서의 이른 탈락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시즌 들어서도 팀리그에서는 하나카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 우승을 이끌었지만, 개인 투어에서는 이름값을 못했다. 그랬던 그가, 39번째 도전 끝에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것도 산체스라는 역대 최강자 중 하나를 상대로. 우승 상금 1억 원을 거머쥐며 상금 랭킹은 34위에서 단숨에 6위로 수직 상승했다. 시즌 월드챔피언십 진출 티켓은 덤이다.
이번 대회는 단순히 누가 이겼냐를 넘어서,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이 ‘실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응우옌의 말처럼, “우승은 행운이 필요하지만, 그 행운은 반드시 노력이라는 뿌리 위에 자란다.”

산체스의 품격 있는 패배도, 응우옌의 눈물겨운 우승도 이 경기 하나로 요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둘이 만들어낸 감동은 오래도록 당구 팬들, 아니 스포츠 팬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PBA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정규투어 9개를 모두 마무리하고, 다음 달 제주에서 시즌 최종전을 치른다. 이미 많은 팬들은 또다시 응우옌의 반란이 이어질 수 있을지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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