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약사의 자리는 어디인가: 4인 4색의 미래 준비법

김지우, 김시언, 박용재, 오한솔 청년기자 2026. 3. 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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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자단 D조 기획기사

인공지능(AI)이 약학계 현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 앞에서 '약사의 미래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은 이제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약사공론 청년기자단은 이 질문을 들고 현장으로 향했다. 병원, 약국, 제약산업계, 학계-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직접 마주하고 있는 네 명의 전문가를 만나 AI 시대 약사의 역할과 가능성을 물었다. 두려움보다 기회를, 대체보다 확장을 말하는 네 전문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삼성서울병원 약제부 이재현 부장 

"막을 수도, 따를 수도 없다. 방향은 약사가 정해야"
삼성서울병원 이재현 부장

병원 현장에서 '항암제 조제시스템'과 '부서간 약물배송시스템'이 도입되어 상용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서울병원 이재현 약제부장은 이를 단순한 효율화 흐름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병원의 약제장비는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보조역할에서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는 단계로 진보하고 있다. 

즉, 장비가 단순 반복노동의 자동화, 인적오류 방지, 위험한 작업의 대체수단에서 방대한 데이터 분석, 복잡한 의사결정 지원, 환자 개인별 특화 서비스 제공 등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흐름은 되돌리기 어렵고, 거부하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병원, 특히 약제현장에서 약사가 집중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이재현 부장은 AI시대에 약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방향설정에 대한 주도권 획득임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설계한 장비와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현장의 요구와 변수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비의 자동화와 소프트웨어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시스템에 맞춘, 시스템을 보조하는 역할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항암제조제시스템'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항암제 노출을 줄이고 인적 오류를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이 장비는 약사의 항암제 노출빈도를 줄였다고 평가되고 있으나, 수행속도가 아직 인간을 능가하지 못할뿐더러, 인간의 물리적 개입을 기대수준보다 자주 요구하고 있어 약사가 이 장비의 보조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다.

약제장비와 소프트웨어는 약사의 업무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하고 그 수단의 형태를 결정하는 주체는 설계전문가가 아닌, 약사가 되어야 한다고 이재현 부장은 강조하고 있다. 즉, 약사가 시스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약사업무를 보조하고, 약제업무를 고도화할 수 있도록 약사 주도하에 설계되어야 한다.

약사가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AI를 약사의 협업파트너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반복업무는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약사는 환자 개인별 특화서비스나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정에 집중해야 한다. 이재현 부장은 "자동화의 흐름을 막거나 거부할 수 없다면 그 흐름의 주도권을 잡는 쪽은 설계자가 아닌, 약제업무의 전문가인 약사여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흥디 약사' 정흥진 약사 

"시작은 AI와 함께, 최종 검증과 책임은 약사의 몫"
흥디약사 정흥진 약사

인스타그램 '흥디 약사' 채널을 운영하며 피부 약사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인 정흥진 약사는 약국에서의 AI 활용도가 아직 낮은 편이라고 답했다. 

개인정보와 민감정보를 다루는 약국 특성상 AI를 업무 전반에 깊이 도입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크고, 현재는 외국인 고객 응대 시 통역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고 했다.

정흥진 약사는 "지금 단계에서는 도입이라기보다, AI를 보조 도구로 활용하는 수준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정 약사는 모든 일을 일단 AI와 함께 시작한다고 밝히며, 특히 복약지도 과정에 사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새로운 성분이나 복약지도 포인트를 접하면 AI로 핵심 구조를 먼저 정리한 뒤, 공식 자료로 확인하고 자신의 언어로 바꿔 고객에게 전달했다. 다만, AI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읽는 게 아니라, 약사가 책임질 수 있는 표현으로 다시 쓰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AI는 약국 약사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까. 정흥진 약사는 조제·재고관리 같은 반복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약사는 '손이 바쁜 사람'이 아니라 최종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시에 AI로 누구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가짜 정보나 근거 없는 루틴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정보를 검증하고 개인 상황에 맞게 맥락화하며 책임 있는 말을 하는 전문가로서의 약사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약사는 AI에 대체되기보다,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약사와 그렇지 않은 약사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직업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노바티스 혁신사업부 김원필 전무 

"AI는 위협이 아니라 공부해야 할 도구"
전원필 전무와 D조 청년기자.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 혁신사업부를 이끄는 김원필 전무는 AI를 두고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할 도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AI의 발전이 곧 약사의 길을 막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약사와 인공지능은 함께 발전해 나가는 관계이며, 중요한 것은 약사가 인공지능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즉 약사가 인공지능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단순히 책을 통해 이론을 습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공지능 플랫폼을 직접 비교·활용해 보고, 동일한 프롬프트를 입력했을 때 각 AI가 어떤 차별화된 결과를 도출하는지 모의실험을 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인공지능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으며, 여러 AI가 제시한 답변 중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보만을 선별·교정해 사용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 나아가 각 AI의 특징을 정리하고, 주제와 상황에 맞는 AI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AI 시대, 약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보다 구체적이다. 김 전무는 AI 시대에 살아남는 길은 "결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꼽은 역량은 세 가지였다. 

AI가 선별한 신약 후보물질을 임상적 판단으로 연결하는 능력, 데이터의 한계와 오류를 짚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비판적 사고, 그리고 AI 결과물에 약사 개인의 경험과 전문성을 더해 의미 있는 산출물로 완성하는 능력이었다. 

김원필 전무는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약사의 역할과 가치는 오히려 더 확장될 수 있다"며, 약학도들이 AI를 두려움이 아닌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선대 약학대학 강동원 교수 

약대생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 아닌 '고민'
조선대학교 강동원 교수

약학교육 역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전국 약학대학에서는 AI 관련 교과목이 신설되고,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 교육이 확대되면서 '미래 약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선대학교 약학대학 강동원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인공지능 시대에 약사의 미래는 앞으로 약사가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막연히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기회를 만들어낼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입니다." 

강 교수는 AI는 약사의 '경쟁 대상'이 아닌 전문성을 확대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강 교수는 AI 시대의 약학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컴퓨터가 발전했다고 해서 작동 원리나 부품을 하나하나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AI 역시 각각의 알고리즘을 깊이 파고들기보다 약학 분야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하고 활용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약대생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강 교수는 탄탄한 전공 지식을 기본으로, '창의성'과 '도전하는 용기'를 꼽았다. 미래에 정해진 답은 없으며,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지는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하며 그 과정에 창의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AI를 잘 활용한다면 약사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약사의 전문성을 더욱 빛나게 할 수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약 상담과 조제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한다면 약사의 역할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을 통해 약물상호작용이나 부작용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등 앞으로는 환자 맞춤형 복약 상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강 교수의 메시지는 하나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를 묻기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질문해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방향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래 약사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일지 모른다.

병원, 약국, 제약산업계, 학계. 자리는 달랐지만 네 전문가가 전한 메시지는 하나로 모였다. AI는 약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약사의 전문성을 더 넓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 도구를 제대로 쥐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함,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약사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나는 어떤 약사가 될 것인가' 그 질문을 오늘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