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980년대의 컬러 네거티브 필름 개발
1980년대는 일본 주요 감광재료 업체들이 독자 기술을 속속 개발하여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 레벨로 성장하고, ‘컬러 네거티브 필름’이라는 상품으로도 전 세계 사용자에게 신뢰받기 시작한 시대다. 이 무렵 사진은 일상생활의 모든 장면에 등장했고, 사용자가 찍는 컷 수가 해마다 늘어났다. 가정용 카메라 보급률은 1977년 80%를 넘어섰고, 컬러 사진 비율은 1979년 85%, 1983년 88%에 달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 둔화와 함께 1980년대 중반부터 아마추어 사진 시장은 성장세가 주춤해졌고, 출산율·혼인건수 감소나 여행 건수 정체 등으로 사진 수요에도 경계 신호가 켜졌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사진 수요 확대를 목표로 수많은 신제품 개발이 추진되었다.
9.1 후지필름의 감광 재료 개발
9.1.1 ‘후지칼라 HR’ 필름 개발
후지필름은 1958년 내식 커플러 방식 컬러 네거 시장에 진출한 이래 품질 개선에 몰두, 컬러 네거티브 필름은 국내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며 회사의 중추 상품으로 성장했다. 1981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공식 기록 필름으로 채택될 만큼 성능을 인정받은 시점에, 후지필름은 차세대 네거티브 ‘후지칼라 HR100·HR400’을 개발해 1983년 2월 국내외에 동시 출시했다.
HR 시리즈에는 세 가지 혁신 기술이 적용됐다.
• 이중 구조 입자(Dual-Structure Grain)
직경 약 1μm 유제 입자를 ‘내층(Core)+외층(Shell)’으로 분리해, 외층은 빛을 흡수해 높은 감도를 확보하고 내층은 현상 제어로 과현상을 억제해 ‘감도와 입상감의 상충’을 해소했다.
• L-커플러(Latex Coupler)
커플러를 고점도 오일 대신 라텍스 형태로 분산시켜 유제층의 두께를 획기적으로 얇게 하고 빛 산란을 줄여 선예도를 향상시켰다.
• 슈퍼 DIR 커플러(Super DIR Coupler)
기존 DIR 커플러보다 현상 억제제가 확산되는 거리를 대폭 늘려, 색채도·선예도를 극대화했다.
감도 ISO100의 HR100, ISO400의 HR400 두 제품으로 출발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중간 감도 HR200을 추가 출시해 라인업을 완성했다.

9.1.2 슈퍼 DIR 커플러 발명
컬러 네거티브 필름의 화질 향상 연구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뉩니다: 빛 센서 역할을 하는 할로겐화은 유제와, 색소상 형성에 관여하는 기능성 화합물(커플러)입니다.
그중 DIR(Development Inhibitor Releasing) 커플러는 후자, 즉 기능성 화합물 분야에 속합니다. DIR 커플러는 1972년에 코닥 ‘코다컬러Ⅱ’에 최초로 도입되어, 네거티브 필름의 화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핵심 기술입니다.
DIR 커플러의 색 재현성은 3.2.3장에서 간단히 설명했지만, 여기서는 ‘선예도’가 향상되는 메커니즘을 자세히 다룹니다.
DIR 커플러는 현상제(파라페닐렌디아민류) 산화체(QDI)가 입자 내 커플러와 결합할 때, 아래 그림 9.2와 같이 억제제(inhibitor)를 방출합니다. 이 억제제는 필름 내에서 확산하여 미현상 입자의 현상을 억제합니다.
이제, 이 억제제가 어떻게 에지(경계선) 효과를 만드는지 그림 9.3·9.4로 살펴봅니다.

( 설명하자면
1 현상초기 : 커플러와 현상제 산화체(QDI)가 반응해, 색소(노란색)와 함께 억제제 분자가 방출
2 억제제 방출 : ㅏㅂㅇ출된 억제제는 커플러의 지지기(ballast)구조에 따라 필름층 내에 퍼져 미처 현상되지않은 할로겐화은을 추가 현상에서 억제한다.
이 매커니즘으로 컬러 네거티브 필름은 선명도, 색채분리가 동시에 실현됨)

이런식으로 경계를 분리시키는것)
첫째, 그림 9.3: 오른쪽 절반에만 빛(矩形光)이 비친다고 가정합니다. 빛이 닿은 부분의 할로겐화은이 현상제의 촉매로 작용해 현상이 시작되면, 동시(同時) QDI와 커플러가 결합하며 억제제가 방출됩니다. 억제제는 고농도→저농도 방향으로 확산되어, 필름 층 내 억제제 농도 프로파일이 점선처럼 형성됩니다.
둘째, 그림 9.4: 이렇게 층간으로 확산한 억제제가 입자의 후속 현상을 억제하면, 색소상 농도(발색도) 프로파일은 경계 부근에서 경사가 급격해지며, 점선처럼 예리한 에지를 만들어 냅니다. ‘주변을 억제해 경계선을 강조’하는 이 작용은 인간의 눈에서도 ‘마하 효과’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DIR 커플러의 에지 강조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에지 폭’과 ‘시각적 선예도’의 상관관계를 실험으로 집중 탐구했습니다. 그 결과, “선예도 향상을 위해 억제제 확산성이 작아야 한다”는 기존 직관과 달리, 오히려 억제제 확산 거리를 넓히면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강조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억제제가 필름 층간(上下方向)으로 확산되면 타층 억제를 강화해 색채도를 높이는 ‘다층 억제 효과(重層効果)’가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층 억제 효과는 억제제 함량만 늘린다고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억제제는 타층뿐 아니라 ‘자기층’ 현상도 억제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상하려고 현상 입자를 지나치게 늘리면 필름 유제층이 두꺼워져 빛 산란이 급증, 오히려 선예도가 저하됩니다.
이처럼 ‘과다 억제·과다 현상→후속 빛 산란’의 악순환을 해결할 수 있는, 보다 이상적인 억제제 확산 특성을 갖춘 신규 분자는 무엇일지. 이를 가늠하기 위해 대표적 두 종류의 현상 억제제를 모델 필름으로 테스트했습니다. 실험 구성(그림 9.5)은 아래와 같습니다:

• 상층: 감도 없는 할로겐화은층(0감도), 억제제 흡착체
• 하층: 고감도 할로겐화은층 + 커플러층
노광 후, 억제제 농도가 정해진 처리액에 담갔다가 화학 현상→발색도를 측정해, 억제제가 상층 입자를 뚫고 하층에 도달해 억제 작용을 발휘하는 정도를 평가합니다.

그 결과를 그림 9.6에 나타냈습니다. 위쪽 곡선(△표)은 현상 억제제가 ‘메르캅토테트라졸’인 경우입니다. 상층 할로겐화은 양(A)을 0.7 g/m² 이상으로 늘리면 D/D₀ 값이 거의 1에 근접해, 하층에 거의 억제 효과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반면 하층 곡선(🌕표)은 ‘5-브로모벤조트리아졸’인 경우로, 할로겐화은 양을 무려 6 g/m²까지 올려도 D/D₀이 0.5 수준에 머무르며, 상층을 통과해 하층까지 억제제가 충분히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5-브로모벤조트리아졸은 억제제의 확산성이 본질적으로 우수함을 시사합니다.
이에 확산성을 수치화할 지표 Df를
Df = {(D₀ – D₀.₇) / D₀} × 10
로 정의했습니다.
– D₀: 억제제 무첨가 시 발색도
– D₀.₇: 상층 할로겐화은 양 A= 0.7 g/m²일 때 발색도
또한 억제 능력 자체를 나타내는 지표 In을
In = {(D₀ – D) / D₀} × 100
로 정의하여, 상층 A= 0일 때의 하층 발색도 D와 비교했습니다. 이들 Df·In 값의 관계를, 치환기 X·Y를 다르게 한 다양한 억제제에 대해 그려본 결과를 그림 9.7에 보여줍니다. 그림 9.7에서 🌕로 표시된 벤조트리아졸류가, △로 표시된 기존 메르캅토테트라졸류보다 층간 확산성이 현저히 높아, 이 구조를 억제제의 기본 뼈대로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억제제 확산성을 지나치게 높이면 일부가 현상액으로 빠져나가 누적되어, 대량 필름 현상 시 전면 현상 억제로 이어지는 치명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그림 9.8). 이는 억제제 확산성과 상충하는, 근본적 난제로 남았습니다.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것이 ‘가수분해형 DIR 커플러’입니다. 이 커플러는 현상액으로 배출된 억제제가 현상 후점차 가수분해되어 무억제 물질(카르복실산)로 전환되도록 분자 구조를 설계했습니다(그림 9.9 참조). 필름 속에서 노광 입자는 억제 작용을 발휘하지만, 용출된 억제제는 현상액 중에서 서서히 가수분해되어 억제 능력을 잃기 때문에, 현상액 오염을 막으면서 층간 억제 효과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수분해 속도가 너무 빠르면 현상 중에도 분해가 진행되어 억제 효과가 약해지고, 너무 느리면 현상액 과오염 문제가 있으므로, 에스터기의 치환기 R를 최적화해 반발적 균형을 달성했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슈퍼 DIR 커플러’를 쓴 필름의 에지 효과와 컬러 감도 비교를 그림 9.10·9.11에 나타냈습니다. 그림 9.10의 왼쪽(슈퍼 DIR)은 오른쪽(従来 DIR)보다 경계선 강조 효과가 뚜렷하고, 그림 9.11에서는 점선으로 표시한 ‘160S(슈퍼 DIR)’가, 일점쇄선 ‘100S(従来 DIR)’보다 색재현 영역이 크게 확장됨을 알 수 있습니다.

슈퍼 DIR 커플러란,
– 억제제 기본 뼈대로 벤조트리아졸을 채택
– 치환기로 수용성 에스터를 도입해 층간 확산성을 증대
– 현상액에 유출된 억제제는 서서히 가수분해해 억제능은 상실
이 세 가지 콘셉트를 결합한 차세대 DIR 커플러입니다. 이 기술은 HR100·400뿐 아니라 HG 시리즈·REALA 등에도 이어 적용되어, 네거티브 필름의 선예도·색재현을 계속해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 벤조트리아졸 구조로 최적 뼈대를 삼은 경위는 제12.7장에 후술.
9.1.3 후지칼라 HR1600 개발
“촛불 하나의 빛으로도 컬러 사진이 완벽하게 찍힌다”고 보도된 시점에, 세계 최고 감도를 자랑하는 컬러 네거티브 필름 ‘후지칼라 HR1600’이 1984년 출시되었습니다. 이 HR1600은 전년도인 1983년에 선보인 후지칼라 HR 시리즈의 기술을 토대로, 여기에 두 가지 혁신 기술을 추가·발전시켜 완성한 제품입니다.
- 신형 이중구조 입자(Advanced Double Structure Grains)
– 이 기술로, 빛 흡수 효율을 높이는 구조와 고감도에 필수적인 전자 트랩·정공 처리 기능을 할로겐화은 입자 내부에 정밀하게 내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기존 감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감도가 실현되었습니다(발명의 경위는 제12.8장 후술).
– 또, 입자 크기를 미세하게 제어한 할로겐화은 미립자를 이용해 ‘광반사층’을 도입함으로써, 감광층을 통과한 빛을 재활용해 추가로 감도를 끌어올렸습니다. - A-커플러(Image Amplifier Releasing Coupler)
– A-커플러는 컬러 현상 시 할로겐화은의 감광 핵(잠상)이 소실되는 것을 억제하는 신개념 커플러입니다.
– 이를 통해 노광된 유제 입자를 현상 단계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색소상으로 전환할 수 있어, 미약한 빛에서도 충분한 색발현과 선예도를 유지합니다.
이 두 기술의 결합으로 후지칼라 HR1600은
• 촛불 같은 극히 낮은 조도 환경에서도 자연스러운 컬러 사진 촬영
• 스포츠 같은 빠른 움직임의 피사체를 순간 포착하는 고속 셔터 촬영
• 심도가 깊어 앞뒤 피사체를 선명하게 담는 촬영 등
사진 표현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넓히며, 프로·아마추어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9.1.4 A-커플러(Image Amplifier Releasing Coupler) 발명
컬러 현상은, 잠상을 형성한 할로겐화은만을 선택적으로 환원해 색도상(色像)으로 증폭 변환하는 과정으로, 그 증폭율은 약 10^9에 이릅니다. 컬러 네거티브 필름의 감도는 이 색도상 변환 효율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고감도를 실현하려면 할로겐화은 입자의 광감도를 높이는 과제와 함께 ‘색도상 변환 효율’을 향상시키는 작업도 필수적입니다.
색도상 변환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 현상 중 QDI(키논디이미드) 산화체의 손실을 억제하거나
• 색소 형성 반응 속도를 높여 QDI의 비활성화를 방지하거나
• 부반응을 억제해 색소 전환을 극대화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더 심층 연구를 통해, 색도상 변환 효율에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이 숨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현상 과정 중 발생한 QDI가 주변의 잠상을 산화표백(oxidation–bleach)해 버리기 때문에, 현상 억제와 표백이 상충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감도를 높이기 위해 입자 크기를 키우거나 요오드 이온 함량을 늘리면 현상 속도가 극도로 저하되어 QDI 자체의 생성량이 줄어드는 부작용까지 확인된 것입니다.
이런 ‘컬러 현상 과정의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설계된 기능성 커플러가 바로 A-커플러입니다. 그림 9.12와 같이, A-커플러는 먼저 현상제 산화체(QDI)와 결합 반응을 마친 뒤, 즉시 Amplifier라는 활성을 방출해 현상 반응을 강력히 촉진합니다. 그 결과, QDI에 의한 잠상 산화표백 현상을 상쇄하면서도 색소 전환 효율은 더욱 높여, 고감도·고화질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A-커플러의 산화표백 방지 작용 모식도는 그림 9.13에 나타내었습니다.
- 왼쪽: 일반 컬러 필름의 경우, 감광된 할로겐화은이 QDI(키논디이미드) 산화체에 의해 산화되어 색소상의 수가 줄어듭니다.
- 오른쪽: A-커플러를 쓴 필름에서는 이 산화가 억제되어, 감광된 할로겐화은이 모두 색소상으로 전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 Amplifier(증폭제)의 확산성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긴 사슬 알킬기의 도입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헷테로고리 메르캅토 유도체나 아졸류(azol) 등, 할로겐화은 입자에 강력하게 흡착하는 작용기를 커플러 분자에 도입해야만 했습니다. 덕분에, 현상 억제제 반응 후 방출된 Amplifier가 인접한 할로겐화은 입자에만 국소적으로 작용하도록 제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림 9.14 참조).
또한 A-커플러는 QDI와의 커플링 반응으로 Amplifier를 방출하지만, ‘일반적인 레독스 핵(變성핵)’에 Amplifier를 결합시키고, 산화 후 이어지는 친핵성 첨가–이탈 반응을 통해 증폭제를 방출하도록 설계된 화합물입니다. 이러한 메커니즘 덕분에 즉석 컬러 필름 등 다른 분야에도 A-커플러 기술이 확장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9.1.5 컴팩트 카메라 고기능화와 후지칼라 슈퍼 HG400 개발
1960년대부터 35mm 컴팩트 카메라는 자동 노출, 내장 스트로보, 자동 초점(AF), 촬영 일자 기록, 자동 필름 장전·필름 감기·필름 되감기, 줌 렌즈 탑재 등 다기능화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이와 동시에 필름에 대한 고감도 요구도 커졌다. 예를 들어 렌즈를 고배율 줌화하면서도 카메라 본체를 소형화하려면 렌즈 조리개를 조여야 하는데, 이로 인해 촬영 시 유효 광량이 부족해지기 쉬웠다.
당시 카메라 사용자의 80%가 ISO100 컬러 네거티브 필름을 썼다. 실제 일반 사용자 프린트 2,000장을 무작위 추출해 분석한 결과, 프린트 불량률이 20%에 달했으며, 이 중 약 12%가 초점 불량, 약 7%가 손떨림에 의한 블러였다. 이에 ISO100 필름과 ISO400 필름을 사용해 동일 피사체를 250컷 촬영·비교한 결과, ISO100 필름의 불량률이 약 16%였던 반면 ISO400 필름은 8% 미만으로 절반 수준 이하로 감소했다. 감도 상승으로 조리개를 조여 심도(피사계 심도)를 넓혀 핀셋 포커스를 억제하고, 셔터 속도를 빠르게 해 손떨림 및 피사체 움직임 블러를 줄인 덕분으로 풀이되었다.
하지만 당시 ISO400 필름은 입상성(graininess), 선예도(sharpness), 색 재현력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에 후지필름은 ‘시그마 크리스탈(Sigma Crystal) 입자 기술’과 신규 DIRR 커플러(Development Inhibitor Releasing & Reactivating coupler) 등을 개발, 이들 기술을 집약한 ‘후지칼라 슈퍼 HG400(Fujicolor Super HG400)’로 ISO400 필름의 일상 사용 품질을 실현했다.
― Sigma Crystal 입자 기술
Sigma Crystal 입자는 요오드 함량이 높은 코어(core)와 낮은 셸(shell)로 이루어진 이중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후지필름은 이 내부 구조를 한층 강화해,
• 입자 내부에서 광전자(photoelectron)를 효율적으로 유도하여 표면의 잠상(latent image) 형성을 극대화
• 이온화된 전자와 정공(hole) 간 재결합을 억제
• 현상 시 고요오드층이 자가 억제(self-inhibition) 작용을 해 과도한 색소 ‘포그(color fog)’ 확산을 방지
• 입자 표면을 개질해 증감 색소(sensitizing dye) 흡착을 강화, 잠상 분산(latent image dispersion)을 억제해 빛 활용 효율 극대화
이 덕분에 종전 동등 감도를 유지하면서도 할로겐화은 은 입자 부피를 약 1/3 수준으로 대폭 축소할 수 있었다. 또한 발색 소재를 개량해 유제층(emulsion layer) 두께를 줄이고, 빛 산란을 최소화해 선예도를 한층 향상시켰다. 그림 9.15의 전자현미경(EM) 단면 사진에서, 슈퍼 HG400(우측)이 구형 ISO400 필름(좌측)에 비해 규칙적인 미립자 구조와 얇아진 유제층을 명확히 보여 준다.
― 후지칼라 슈퍼 HG400의 특장점
• ISO400 고감도로 조리개를 조여도 충분한 심도를 확보해 핀셋 포커스 실패를 대폭 감소
• 빠른 셔터 속도로 손떨림 및 피사체 움직임 블러를 억제
• 미세 입자·얇은 유제층 구조로 입상성 저감 및 선예도 향상
• 개선된 증감 색소 및 발색 재료로 뛰어난 색 재현성
이처럼 슈퍼 HG400은 고배율 줌 컴팩트 카메라 환경에서 필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화질·고품질을 실현하며, 35mm 컴팩트 카메라의 고기능화를 완성하는 핵심 필름으로 자리매김했다。

DIRR 커플러(Development Inhibitor Releaser Releasing coupler)란
DIR 커플러가 한 단계 반응으로 현상 억제제를 곧바로 방출하는 것과 달리, DIRR 커플러는
- 첫 단계 반응에서 전구체를 방출해 필름 내부를 확산시킨 뒤
- 억제를 원하는 특정 감광층에 도달해서야 현상 주제 산화체(QDI)와 결합하며 최종적으로 억제제를 방출합니다.
이 이단계 방출 메커니즘 덕분에, 서로 떨어진 감광층 사이에도 효율적으로 억제 효과(층간 효과)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그림 9.16 참조).
또한 슈퍼 DIR 커플러와 마찬가지로, 현상 탱크 안으로 유출된 억제제는 현상액 내에서 비활성화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저보충(低補充) 방식의 현상 처리 시에도 현상액의 피로(피로도 상승)를 최소화합니다.

이러한 기술로 고화질화를 실현함에 따라 ISO400 감도 컬러 네거티브 필름의 일상 사용이 한층 가속화되었고, ‘우츠룬데스’에도 적용되어 렌즈 일체형 필름의 보급이 더욱 촉진되었다.
9.1.6 영화용 컬러 네거티브 필름 개발
후지칼라 네거티브 필름 A는 1977년 출시 이후 국내외 영화 제작에 널리 채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영화용 네거티브 필름도 일반 사진용 필름과 마찬가지로 고감도에 대한 요구가 계속 고조되었습니다. 1958년 일본에서 처음 극영화에 컬러 네거티브 필름이 도입되었을 때는 노광 지수(Exposure Index) 25의 저감도 제품이었지만, 1980년 9월에는 세계 최초로 노광 지수 250의 고감도 ‘후지칼라 네거티브 필름 A250(EI250)’을 선보였습니다. 영화용 필름은 극장의 대형 스크린 확대 시에도 입상감이 억제되어야 하므로 고감도 개발에 수많은 난관이 있었으나, 신형 커플러 등 신소재·신기술을 도입해 감도를 대폭 끌어올렸고, 입상감·선예도 역시 실용 수준으로 확보했습니다. A250은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 처방으로 현상 가능한 ‘월드 타입’ 필름이며, 더욱 감도를 우선할 때는 증감 현상(push processing)을 통해 초고감도 필름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고감도 필름의 등장은 현장에 있는 빛만으로도 자연스러운 다큐멘터리 터치의 리얼한 영상을 얻을 수 있게 했습니다. 세트 촬영에서는 조리개를 조여 샤프한 묘사가 가능해졌고, 빠른 액션 장면도 손쉽게 포착할 수 있어 영상 표현 범위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1982년 3월,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1981년도 미국 아카데미 과학기술 부문 시상식에서 ‘후지칼라 네거티브 필름 A250’은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을 수상하며 오스카 상패를 받았습니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미국 텔레비전 예술과학 아카데미로부터 기술 부문 에미상(Emmy Award)을 수여받았습니다.
1983년 4월에는 무공해 과황산염(과퍼설페이트) 표백 처리가 가능한 ‘후지칼라 네거티브 필름 A (Type 8511)’와, 감도를 노광 지수 320으로 올린 고감도 네거티브 ‘AX (Type 8512)’를 연이어 출시했습니다. 고감도 네거티브 AX는 대폭 향상된 감도로 촬영 영역과 영상 표현의 자유도를 한층 더 넓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9.1.7 세계 최초로 제4의 감색층을 도입한 후지칼라 REALA 개발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컬러 네거티브 필름의 화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ISO100 필름의 입상감(graininess)·선예도(sharpness)·색채도(chroma) 등이 상당수 사용자에게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색채도가 높아짐에 따라 새로운 문제, ‘색 변이(color shift)’가 대두되었습니다. 보라색 옷감이 붉게 변하거나, 꽃의 색이 실제와 다르게 보이거나, 형광등 아래 풍경이 초록빛으로 왜곡되는 현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네거티브/포지티브 방식에서는 컬러 네거티브 필름을 인화지에 프린트할 때 색 균형을 조정해 특정 피사체의 색을 보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물 사진의 경우 얼굴 피부까지 함께 보정되어 원치 않는 톤으로 바뀌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네거티브 필름 자체의 색채도를 낮추면 프린트 시 색 변이는 덜 도드라지지만, 전체 풍경이 묽어져 생동감이 사라집니다. 이에 “인화 후에도 선명한 색채도는 유지하되, 실제 색에 대한 충실도(fidelity)는 높인 네거티브 필름”을 개발하자는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림 9.17과 같이 망막 위에 ‘콘(cone)’이라 부르는 시세포(視細胞)가 배열되어 있으며, 이들 중 빨강(red), 녹색(green), 청색(blue)을 감지하는 세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림 9.18에는 이 세 종류의 콘이 지닌 차(差)흡수 스펙트럼(감응 곡선)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림 9.18에서 보듯, 인간의 눈을 구성하는 세 가지 콘(시세포)의 스펙트럼이 왜 파장 영역에서 크게 겹치는지 살펴보자.
예를 들어, 빨강(R), 녹색(G), 파랑(B) 감도가 전혀 겹치지 않는 ‘블록형 감도’를 가진 필름을 가정해 보면(그림 9.19). 이 필름에 450nm부터 650nm까지 1nm 간격의 단색광을 차례로 노광한 뒤 현상하여, 출력된 프린트 색상의 주파장을 세로축에, 입사 단색광의 파장을 가로축에 놓고 그린 것이 그림 9.20이다.
이상적으로는 어떤 파장의 단색광을 노광해도 그 파장과 동일한 색이 재현되려면, 그래프가 기울기 1의 직선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블록형 감도의 필름은 예컨대 500 nm~600 nm 구간에서는 오직 녹색 감광층만 반응하기 때문에, 이 범위의 모든 단색광은 동일한 녹색으로만 재현된다. 즉, 파장이 조금씩 다른 녹색광도 한 가지 녹색으로만 출력된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 세 가지 콘 감도가 서로 넓게 겹쳐 있을 때에만, 미묘하게 다른 색조를 구별하여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인간의 시세포는 빛 신호를 받아 뇌로 전달하기 전 과정에서 여러 단계의 신호 처리를 수행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중 하나가 ‘측억제(lateral inhibition)’라 불리는 기구로, 모델 도식을 그림 9.21에 나타내었다.
예컨대 녹색광이 이 세 종류의 시세포(적색·녹색·청색 감도를 가진 콘)에 내려쬐면, 이들 시세포는 각기 스펙트럼 감도의 중첩 영역에서 빛을 감지한다. 이어 신호 전달 과정에서, 각 시세포는 감지한 빛 신호량에 비례하여 억제 물질을 이웃한 시세포로 방출한다. 녹색광에 의해 가장 강한 신호를 받은 녹색 시세포는 많은 억제 물질을 분비하고, 그 결과 이웃한 적색·청색 시세포의 신호가 더욱 억제된다. 이렇게 녹색 신호만이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뇌에 전달되는 것이다.
즉, 인간의 눈은
- 콘의 스펙트럼 감도 중첩으로 미묘한 색 차이를 포착하고
- 신호 전달 중 ‘측억제’ 메커니즘을 통해 특정 색의 채도를 강화함으로써
더 선명한 색 구분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색 충실도를 높이기 위해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서도 적·청·녹 세 분광 감도를 단순히 겹치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면 색채도가 극도로 저하됩니다. 그리고 이를 보상하기 위한 색채도 증폭은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또한 컬러 네거티브 필름은 설계상 상단부터 청(Blue), 녹(Green), 적(Red) 감광층이 순차적으로 다층 코팅되어 있어 분광 감도를 단순히 중첩하기가 원리적으로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 9.22에 보인 것처럼, 녹색 감도를 장파장 쪽으로 확장하면 그 영역의 입사광은 녹색 감광층에서 거의 모두 흡수되고, 아래의 적색 감광층에는 오히려 도달하지 못해 감도가 떨어져, 분광 감도의 중첩이 의도한 대로 증가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흰색 용지의 왼쪽 부분에 다양한 파장의 단색광을 비추고, 오른쪽 부분에는 일정 파장의 청광·녹광·적광을 섞어 비춤으로써, 어떤 광량 조합으로 왼쪽 입사광과 같은 색을 오른쪽에서 재현할 수 있는지를 조사해 사람의 눈의 등색함수(color matching function)를 구하는 실험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청광을 435.8nm, 녹광을 546.1nm, 적광을 700nm 단색광으로 정해 실험해 보니, 어떤 파장 영역에서는 아무리 세 빛을 조합해도 동일한 색을 재현할 수 없는 구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빛에는, 같은 색상으로 보이는 두 색광에 똑같은 색광을 같은 양만큼 더해도 여전히 같은 색으로 보인다는 ‘가산 정리(additive law)’가 있습니다. 따라서 왼쪽에 500nm 부근의, 세 빛(R·G·B)만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단색광을 쏘고, 여기에 적광을 더한 뒤, 오른쪽의 빛을 청광+녹광 조합으로 조절하면 좌우가 시각적으로 같은 색으로 재현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를 식으로 쓰면
단색광(실험광)+적광=청광+녹광
이고, 이를 다시 정리하면
단색광(실험광)=청광+녹광-적광
이 됩니다.
이 실험에서 얻은 사람 눈의 등색함수를, 색상판에 블록형 색소를 가정해 나타낸 것이 그림 9.23입니다. 여기서 음수 값은 위 식으로부터 유도된 결과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서도 이 등색함수에 근접한, 색 충실성이 뛰어난 분광감도를 재현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는 타(他)층 현상을 억제하는 DIR 커플러가 사용되지만, 단순히 녹색 감광층에서 적색 감광층으로만 억제를 걸면, 원치 않는 음(負) 영역인 480nm ~ 600nm의 장파장 영역에서도 지나치게 강한 억제가 걸려, 등색함수에 가까운 분광감도를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 차례 실험을 반복했으나 유효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 이는 빛 정보를 기록할 때 단파장 측 녹색과 장파장 측 녹색을 구분하지 못한 채 억제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그림 9.24에 보인 것처럼 ‘CL층(Color-Correction Layer)’이라 불리는 제4의 감광층을 새로 도입했습니다. 이 CL층에서 적색 감광층으로만 선택적으로 강한 억제를 걸어 줌으로써, 인간의 눈 등색함수에 잘 맞는 충실한 색 재현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도표들은 각 파장별 색 재현성 개선 효과를 보여줍니다.
그림 9.25는 기존 3층 구조의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서 관찰된 색 재현성 프로파일을 나타냅니다. 계단 형태로 매끄럽지 못한 색 재현 구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림 9.26은 제4의 감광층(CL층)을 도입한 새로운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서 측정한 결과입니다. 기존 필름과 비교했을 때, 모든 파장에서 색 충실도가 크게 향상되어 부드러운 연속 스펙트럼 재현이 가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CL층의 추가로 색 재현의 단절 구간(step)이 해소되고, 인간의 눈 등색함수에 근접한 연속적이고 충실한 컬러 이미징이 달성됩니다.

이 기술을 세계 최초로 탑재한 컬러 네거티브 필름으로 1989년에 후지칼라 REALA 필름을 출시했다. 예를 들어, 꽃꽂이 전시회에서의 클레마티스 꽃 색채나 패션쇼 의상의 미묘한 색 차이가 훌륭하게 재현되어, 특히 색 재현에 엄격한 프로·아마추어 계층으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널리 사용되었다.
이 기술은 ‘음(負)의 분광감도’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쉽게 이해받지 못했으나, 색 충실도를 반드시 개선하고자 한 연구자들의 집념, 색 재현성 기초 연구를 차근차근 쌓아 온 이론적 토대, 컴퓨터를 통한 논리 전개 및 시뮬레이션 기법이 결합되어 비로소 빛을 보았다. 일본에서 탄생한 이 혁신 기술은 점차 그 탁월함이 세계 사진 재료 분야에서 크게 인정받았다.
9.1.8 렌즈 일체형 필름 ‘우츠룬데스’의 개발
‘写ルンです’는 1986년 후지필름에서 출시된, 카메라가 아니라 렌즈가 부착된 컬러 네거티브 필름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프로젝트로 검토되다 보류된 바 있었다. 이전에는 전용 카메라 박스와 새로운 사이즈의 필름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필름제작·가공 비용이 크게 상승했고, 현상소에서도 전용 처리 라인을 추가해야 하는 문제로 “저렴한 가격의 촬영 시스템”이라는 콘셉트를 실현하기 어려웠다.
전환점은 1972년 코닥의 ‘포켓 카메라 시스템(110 사이즈 필름)’ 붐이 한풀 꺾이면서 찾아왔다. 110 필름을 쓰기로 전제하자, 전용 필름 개발이나 현상 라인 추가 없이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110 필름 카트리지는 빛샘을 방지하는 차광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한편 컬러 네거티브 필름은 1983년 HR 시리즈를 통해 고화질화가 크게 진전되어, ISO100의 ‘HR100’으로도 110 사이즈에서 일반 사용자가 만족할 만한 화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개발 중이던 ‘슈퍼 HR100’까지 출시되면 화질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었다.
남은 과제는 얼마나 저렴하게 ‘카메라 부품’을 제작하느냐였다. 당시 렌즈는 유리 소재에 연마·UV 차단 코팅을 해야 했지만, 플라스틱 렌즈는 소재 자체가 자외선을 차단하고 원가도 매우 저렴했다. 다만 표면을 광학 품질로 매끄럽게 가공할 기술이 없었기에, 전국을 찾아다니며 해당 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물색했다. 최종적으로 렌즈 형상 설계를 후지필름이 자체 수행하고, 표면 가공이 가능한 외주 업체에 플라스틱 렌즈 성형을 맡겨 단숨에 원가를 대폭 절감했다.
파인더(viewfinder)는 렌즈 없이 투시만 가능한 단순 구조로 채택했는데, 오히려 밝고 시인성이 좋다는 호평을 얻었다. 조리개 값은 F11로 고정해 1m에서 무한대까지 피사계심도가 확보되도록 설계했고, 셔터 스피드는 손떨림 방지를 위해 1/100초로 고정한 ‘발딱(킥) 셔터’ 방식을 채택했다.
이렇게 가볍고 작은 카메라 박스 형태의 필름 카트리지가 완성되자, 사용자는 필름을 감고 찍을 대상을 향해 셔터 버튼만 누르면 되었다. 시제품을 본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걸로 정말 찍힐까?”라는 의문이 나오기도 했으나, 담당자의 “写るんですヨ(찍힌다구요)”라는 답변을 그대로 네이밍에 반영해, ‘写ルンです’라는 이름을 붙였다.
발표 직후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일회용 시대”라는 트렌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写ルンです’는 초도 기획 100만개를 훌쩍 넘어, 출시 첫해 말까지 300만개가 팔리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
출시와 동시에 사용자 설문지를 동봉해 피드백을 받은 결과, 가장 큰 불만은 “흐린 날씨나 실내 촬영 시 밝기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에 1986년 6월 출시 후 불과 두 달 만인 8월부터 개량에 들어갔다.
기존 110 필름이 아닌, 인프라가 완비된 35mm 롤필름을 차세대에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감도를 ISO100에서 ISO400으로 높이면 어두운 환경 촬영 성능이 개선되고, 화면 크기를 35mm로 키우면 인화 화질도 함께 향상된다. 또한, 후지필름 컴팩트 카메라에 도입된 ‘역장전(逆装填) 방식’—필름을 한 번 모두 꺼낸 뒤 촬영을 마치면 다시 카트리지에 말아 넣는 방식—의 실적이 있었기에, ‘写ルンです’에도 동일한 방식을 적용해 촬영 후 카트리지 그대로 현상소에 제출하는, 사진관 작업도 간편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기본 특허로 확보함으로써 전 세계에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형성했다.
이런 일련의 개량을 거쳐, 1987년에는 35mm 롤필름·ISO400·고화질을 실현한 ‘写ルンですHi’를 출시했다. 이후에도 스트로보 내장 등 고기능화 모델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지속적으로 판매량을 늘려갔고, 35mm 필름 시장에서 15%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연간 수천만 개가 팔리는 규모로 스토로보 유닛 원가도 대폭 낮출 수 있었으며, 망원·방수 기능을 갖춘 일회용 필름 등 제품 다양화로 사진 산업의 견고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렌즈 일체형 필름 수요가 “초고감도 필름” 개발 요청으로 이어져 ISO800·1600 전용 컬러 네거티브 필름이 파생되기도 했다.
‘写ルンです’는 전성기 시절 롤 컬러 필름 판매량의 거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고(그림 9.27 참조), 매출액도 롤 필름 전체 매출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 개발에는 특별히 획기적인 신기술이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대신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시대 감각 등이 뒷받침된 다음과 같은 성공 요인이 있었다.
- 단순화
– 110 필름 활성화 전략에서 출발하면서 화면 크기가 고정됐다. 덕분에 크기 선택에 대한 고민이나 불필요한 가능성 검토가 사라졌다.
– 한편으로 컬러 네거티브 필름 자체 성능도 향상되어, 110 사이즈라도 사용자들이 받아들일 만한 화질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 시대 선취
–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콘셉트가 ‘쓰고 버리는 시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사용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사용 편의성 덕분에 곧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 간편성
– ‘오로지 찍는 기능 하나에 올인’함으로써 시스템을徹底簡素化했다.
– 촬영자는 물론, 판매점도 카트리지를 분해해 필름만 꺼내면 되었고, 현상소도 기존 라인 그대로 필름을 투입하기만 하면 되었다. - 발전성
– ISO100에서 ISO400으로, 110 사이즈에서 35mm 사이즈로 단계별 진화를 통해 곧바로 촬영 가능 영역을 확장하고 화질을 개선할 수 있었다.
– 필름 감기 방식 문제도 ‘역장전(逆装填) 방식’이 이미 검증돼 있었기에 불필요한 논란이나 우려가 없었다. - 실행력
– 플라스틱 렌즈 도입 등 ‘좋겠다’ 싶은 아이디어는 지체 없이 즉각 실행에 옮기고, 빠른 개발·개량을 실현했다.
– 이러한 실행 문화가 다양한 신제품 개발로 이어지며 조직 전반에 긍정적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9.2 고니시로쿠(코니카)의 감광 재료 개발
코닥이 1982년 디스크 시스템을 발표해 성능을 향상시킨 VR 필름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은 이후, 고니시로쿠(小西六)도 잇따라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
• 1983–1985년: 할로겐화은에 ‘큐빅 크리스탈(Cubic Crystal)’ 기술을 적용한 사쿠라칼라 Disc 필름과 SR 시리즈(SR100, SR 200, SR400, SR1600)를 선보임
• 1987년: 사명을 고니시로쿠에서 ‘코니카(Konica)’로 변경
• 1987–1989년: 코니카칼라 GX100, GX400, GX3200, GXⅡ100, GX200 Professional 등 GX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시장 도입
또한, ‘감도’만으로 제품을 구분하면 일반 사용자가 필름 선택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 1988년: GX100M ‘마마 찍어(ママ撮って)’
• 1989년: GX400 ‘줌합니까 전문과(ズームしま専科)’
처럼 ‘용도 제안형’ 네이밍을 도입해 사용 편의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들 제품에는 할로겐화은 입자 형성 기술, 고속·고발색 커플러, 타이밍 DIR 커플러 등 다양한 신기술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특징적인 주요 제품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9.2.1 GX100 개발(1987년)
컬러 네거티브·포지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컬러 필름이 지닌 방대한 정보량을 휴대성·간편성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이스트만 코닥이 1982년 ‘디스크 시스템’으로 상품화한 바 있다. 소형 카메라와 사용 편의성 측면에서는 획기적이었으나, 화상 크기가 35mm의 1/10로 줄어들면서 인화 품질, 특히 선예도가 크게 저하되어,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사용자 요구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이런 배경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예도를 목표로 개발된 것이 GX100이다. 이 필름이 지닌 ‘고선예도’를 실현하기 위해 코니카는 다음 세 가지 핵심 기술을 도입했다.

① 타이밍 DIR 화합물
1972년 코닥이 DIR 커플러를 실용화하며 입상감과 에지 효과가 대폭 개선됐지만, 더욱 강력한 에지 강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코닥이 제안한 ‘타이밍 DIR 커플러’는 분자 내 친핵치환 반응으로 억제제를 원거리 방출하는 구조다. 이에 대응해 코니카는 그림 9.28과 같이 분자 내 전자이동 반응으로 동등·이상 효과를 내는 타이밍 DIR 화합물을 자체 개발했다.
② 감광층 박막화에 최적화된 커플러
감재의 선예도는 상층 유제층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커플러+용매의 총 부피’와 ‘발색 농도’의 관계를 분석, 최소 부피에서 최대 발색 농도를 나타내는 신규 노란색 커플러를 발굴했다. 덕분에 유제층 두께를 약 20% 얇게 줄일 수 있었다.
③ 광산란을 최소화한 할로겐화은 입자
할로겐화은은 굴절률이 바인더인 젤라틴과 크게 달라 가시광(0.3~0.6μm)에서 심각한 광산란을 일으켜 선예도를 저하시킨다. 종전 ISO100 필름이 이 크기대를 사용했으나, 뒤에서 다룰 MSC 입자를 도입함으로써 이 구간의 입자 크기를 회피하는 설계가 가능해졌다.
이 세 기술의 융합으로 GX100은 디스크 시스템이 안고 있던 ‘극단적 소형화 vs. 화질 저하’의 난제를 극복하고,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예도를 갖춘 컬러 필름으로 탄생했다.
9.2.2 GX3200 개발 (1987년)
ISO1000 이상의 초고감도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는 ‘빛 흡수→잠상 형성→현상’ 각 단계를 최적화하기 위한 새로운 할로겐화은 결정 기술, 다층 구조 설계, 소재 기술이 도입되었다. 코니카는 이 중 할로겐화은 유제를 혁신적으로 개량해, 당시 세계 최고 감도인 ISO3200을 실현할 수 있었다.
① 다중 구조 AgX 결정(Multi Structure Crystal, MSC)
– 코니카가 채택한 ‘고요오드 코어–셸’ 유제의 광전도 신호를 마이크로파 측정으로 정밀 분석한 결과, 코어 내부와 코어/셸 경계에 다수의 얕은 전자 트랩이 존재함이 확인되었다.
– 광으로 생성된 전자와 정공(hole)이 재결합하면 감도가 떨어지므로, 이 재결합을 억제하는 결정 구조가 고감도화의 핵심이 됐다.
– 단순한 코어–셸 대신 코어와 셸 사이에 적절한 요오드화은 함유층을 추가해, 증감색소(sensitizing dye) 흡착으로 인한 광전도 신호 감쇠를 줄이고 감도를 크게 높일 수 있음을 입증했다.
– 이 유제를 ‘Multi Structure Crystal(MSC)’이라 명명했다.
② MSC의 결정 구조 및 제조
– MSC는 지름 0.3~2μm 크기의 미세 결정 내부에 서로 다른 할로겐 조성을 지닌 3개 이상의 층을 갖춘 다중 구조를 이룬다.
– 각 층의 성장은 수 nm 단위 정밀도로 제어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할로겐화은 결정화 반응을 극도로 정밀하게 관리하는 신기술과, 높은 단분산성을 확보하는 대량 생산 기술을 동시에 개발·도입했다.
③ 감도 및 부가 효과
– 기존 AgX 입자는 입자 직경이 1μm를 넘으면 감도 상승이 둔화되었지만, MSC는 1μm를 초과해도 감도 성능을 유지·향상시켰다.
– 작은 입자(同크기)끼리 비교해도 약 1.5배 높은 감도를 보였다.
– 부수적으로 ‘저조도 불균일(uneven low-light response)’ 현상이 개선되어, 천체사진 등 극저조도 촬영에서 특히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이처럼 MSC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GX3200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ISO3200 감도를 달성하며, 어두운 실내나 야간 촬영에서도 놀랄 만큼 선명하고 세밀한 이미지를 제공했다.
9.2.3 GX200 프로페셔널 개발(1988년)
ISO100과 400 사이 중간 감도의 필름이 아니라, “포트레이트 등 인물 촬영을 목적으로 한” 명확한 콘셉트를 가진 컬러 필름으로,
• 선명하고 생동감 있는 컬러 표현
• 풍부한 계조 표현력
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계조 표현을 강화하면서도 ISO100 급 화질을 유지”라는 모순된 요구를 풀기 위해, 이미지 설계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기술적 요소들을 면밀히 검토·최적화했다. 그 결과 아래 네 가지 핵심 기술을 결집해 초기 목표를 완수했다.
① 다중 구조 AgX 결정(Multi Structure Crystal)
앞서 GX3200에서 구현한 것과 같은,
• 코어–중간층–셸의 3중 이상 할로겐 조성층 구조로 설계
• 광전도로 생성된 전자(photoelectron)를 감광 핵에 효율적으로 포획→ 고감도를 확보
② 고속·고발색 커플러
GX100과 마찬가지로 “최소 부피에서 최대 발색 농도”를 내는 노란색 커플러를 채택하여,
• 청감층 두께를 얇게(박막화)
• 입상 억제와 선예도 향상
③ 인터이미지 컨트롤 기술(Inter–Image Effect, IIE)
층간 상호작용을 최적화하기 위해,
• 타이밍 DIR 화합물의 반응성
• 억제기(抑制基)의 억제 강도 및 확산성
• AgX 결정의 현상성·억제성
• 발색 커플러의 반응성
• 젤라틴 코팅의 물리화학적 특성
등을 일일이 조율·제어하여,
→ 이상적인 ‘층간 대비(contrast)’와 ‘계조 전이(gradation)’를 달성
④ 고반응성 타이밍 DIR 화합물
• 고반응성 커플러 모체(Core)에 ‘타이밍 반응 기구’를 결합
• 현상 억제를 원하는 감광층에 도달할 만큼의 확산 시간을 갖고 억제제를 방출
• 방출된 억제제는 AgX 현상 속도와 억제성에 맞춰 선택 가능
→ 필요한 시점·영역에서만 층간 억제 효과를 정밀하게 발휘
이 네 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탄생한 GX200 프로페셔널은,
“인물 피부 표현에 최적화된 부드럽고 풍부한 계조”와
“필름 본연의 깨끗한 화질”을 고루 갖춘 전문 포트레이트 필름으로 자리매김했다.
1) 「富士フイルム50年のあゆみ」、富士写真フイル ム㈱編、341、昭和59年10月20日発行
2) 「アニオン離脱ピラゾロンカプラー」、古舘信生、 フジフイルム研究報告、34、1(1989)
3) 「DIRカプラーの最近の進歩」、市嶋靖司、 フジフ イルム研究報告、35、27(1990)
4) 「Development-Inhibitor-Releasing(DIR) Couplers in Color Photograpy」、C. R. Barr, J. R. Thirtle, P. W. Vittum, Photogr. Sci. Eng., 13, 74, 214(1969)
5) 「Pursuing Better Color Reproduction Quality(Ⅱ) (Molecular Design of the Novel DIR Coupler)」、 坂上恵、安達慶一、市嶋靖司、小林英俊、日本写 真学会年次大会、A-23(昭和60年)
6) 「カラー写真画像の形成方法」、横田幸夫、青野俊 明、広瀬武司、特公昭59. 43736(昭和59年)
7) 「カラー写真感光材料用高機能ケミカルス」、 新井 厚明 ら、シーエムシー出版、175(2002)
8) 「常用カラーネガフィルムスーパーHG400 その設 計思想と技術」、芝原嘉彦、井駒秀人、池上真平、 フジフイルム研究報告、36、1(1991)
9) 「ハロゲン化銀写真材料調製技術の最近の進歩」、 宮坂信章、日本写真学会誌、54、156(1991)
10) 「フジカラーリアラの色再現」、佐々木登、高橋公 治、井駒秀人、 日本写真学会誌、52、41(1989)
11) 「感覚の生理学」生命科学シリーズ、高木雅行、 裳華房(1989)
12) 「色再現光学の基礎 2.色の表示方法」、大田登、 コロナ社、8(1997)
13) 「フジカラー写ルンです、写ルンですHi」、持田 光義、大村紘、武井尚司、 フジフイルム研究報告、 33、15(1988)
14) 「高感度・高画質を訴求した導入促進」、フォト マーケット7月号、26、6(2005)
15) 「コニカに於けるカラー感材・処理の開発動向」、 小板橋光夫、 Konica Tec. Rep., 1, 5(1988)
16) 「カラー銀塩感光材料の技術革新史 第2部 発色 現像(その5)」、大石恭史、日本写真学会誌、 72、95(2009)
17) 「GX200プロフェッショナルの開発」、榛葉悟、 山田良隆、 Konica Tec. Rep., 2, 132(1989)
이사람 후지 연구원이었어서 그런가 코니카는 거의 스킵수준이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