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상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흔한 말이라 간과하기 쉽지만,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중요한 말이다.
당장 올 시즌은 물론 앞으로의 야구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진리 같은 말이다. 부상은 실력이 된다.
기록의 사나이로 통하는 삼성 최형우는 ‘부상=실력’이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선수 중 하나다.
매 시즌 최형우는 이런저런 기록을 만들었다. 기록이 완성된 현장에서 그 비결을 물을 때마다 최형우의 답변은 똑같았다.
“하다 보니까 됐다”가 최형우의 이야기였다.
특별할 것 없는 비결이지만 사실은 특별하다.
기록을 만들고 싶고, 뛰고 싶어도 못 뛰는 선수가 많다.
최형우는 일단 1군에서 버틸 수 있는 실력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강함이 있다는 것이다.
“어디가 부러지지 않는 한 뛴다”가 최형우의 이야기였다.
금강불괴로 통하던 그가 정말 부러져서 경기를 쉬어간 적은 있다.
쇄골 골절상을 당해서 선수가 아닌 관람자가 된 최형우는 6시 30분을 기다리면서 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물론 최형우가 완벽하게 건강한 선수는 아니었다. 망막 이상으로 혼란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고, 허리 통증을 참으면서 타석에 서기도 한다.
어찌 됐든 뛸 수 있을 만큼 아팠던, 최형우는 무심하게 기록들을 만들었고,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진행형이다.
김규성도 그런 최형우를 보면서 배웠다.
지난해 김규성은 최형우와 함께 개막전부터 최종전까지 자리를 지킨 KIA 야수 2인 중 한 명이었다.
일단 버티고 봐야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김규성은 버텼다.
물론 모든 프로야구 선수가 그렇듯 김규성도 아프기도 했다. 뛸 수 있는 만큼 아팠다.
김호령이 개인적으로 타격 훈련을 하다가 내복사근 부상으로 2024 한국시리즈 출전이 불발됐을 때 김규성은 생존자가 됐다.
사실 김규성의 부상투혼이었다.
그는 9월 27일 한화와의 원정경기에서 수비 도중 공에 맞아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타격을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수비수로 역할을 할 수 있었기에 김규성은 한국시리즈 소집 훈련 기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전천후 수비수라는 강점을 앞세워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올랐다.
“야구선수라면 한국시리즈를 뛰고 싶어 한다. 좋은 기회이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기에 아프더라도 참고 해야 한다. 이빨로 막고 몸으로 막아서라도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김규성은 타석에는 서지 못했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힘을 보태면서 우승 반지를 품에 안았다.
주전과 백업의 경계에 선 일단 뛰고 봐야 하는 선수라서 과부하가 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김규성은 뛸 수 있으니까 뛰고 있다.
생존을 위한 버티기이기도 했다.
2024년의 가을 그리고 2025시즌이 모여 김규성은 2026시즌에도 개막전부터 스타트를 끊었다.
시즌을 앞두고 긴장감은 있었다.
아시아쿼터로 제리드 데일이 내야에 합류했고, 건강한 김선빈과 김도영 사이 빈 틈을 파고들어야 하는 신예 내야수들의 경쟁이 뜨거웠다.
버티기의 힘을 알고 있는 그는 잘 버텼고 스타팅 멤버로 6월을 열었다.
2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9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장한 그는 1-0으로 앞선 7회말 점수로 연결되는 희생번트를 기록했고, 4-4로 맞선 9회에는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으로 출루한 뒤 번트와 패스트볼로 3루로 향했다.
그리고 한준수의 중견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아 팀의 끝내기 승리를 완성하는 득점을 완성했다.
5월 마지막날에는 하다 보니 인생 첫 4안타 경기도 펼쳤다.
내가 아니라 알아서 공이 타이밍을 맞히는 느낌이었다고 5월 31일 LG전을 회상한 김규성.
그는 그날 치고 또 치고 4타석에서 안타를 만들었다.
부지런히 달려서 2개의 도루도 성공시켰다.
혼신의 질주에도 팀의 승리를 부르지는 못했지만 김규성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김규성처럼 그라운드에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면서 ‘부상은 실력’이라는 것을 느끼는 이도 있지만, 반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쓴 교훈을 곱씹는 이도 있다.

5월 23일 SSG전에 앞서 이범호 감독은 “2번 타자를 잃었다”며 탄식했다.
이날 KIA는 앞선 경기에서 복사근 부상을 입은 내야수 박상준을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박상준은 지난 마무리캠프에서부터 이범호 감독이 공을 들이면서 강하게 조련했던 선수다.
4월 4일 NC와의 경기에서 기다렸던 프로데뷔전을 치른 그는 등장과 함께 첫 안타공을 챙겼다.
심상치 않은 출발 뒤 프로의 벽을 느끼면서 퓨처스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던 그는 5월 8일 다시 1군에 합류한 뒤 10경기에서 36타수 14안타, 타율 0.389를 기록했다.
LG를 상대로 두 경기 연속 홈런을 날리기도 하는 등 타선에 새바람을 불어넣었고, 팀은 처음 4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무엇보다 ‘2번 타자’ 고민을 해결해 주면서 KIA 라인업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런 만큼 이범호 감독의 아쉬움은 컸다.
고민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이범호 감독은 2일에는 2번 한준수 카드를 쓰기도 했다.
개인은 물론 팀 입장에서도 큰 아쉬움이 된 부상.
탄식을 했던 이범호 감독은 “잘 치는 것만 실력이 아니라 매 경기 몸관리 잘하는 것도 실력 중 하나다. 본인도 이걸 느끼면 선수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배움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부상 없이 공백 없이 ‘부상은 실력’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이 험난하고 치열한 그라운드에서 부상은 피할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누구나 아프다.
그런데 아프기만 하다면 그건 실패다.
아픔을 통해서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다.
부상을 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 부상 이후의 노력. 프로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중요한 노력이다.
<광주일보 김여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