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낭만 있잖아요” 그녀들이 야구를 하는 이유는

심진용 기자 2025. 12. 3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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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야구팀 후라 선수들이 지난 28일 경기도 고양 한 야구 아카데미에서 훈련하고 있다.

한국 야구의 ‘주도권’은 여성으로 넘어갔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여성이 야구 관중 절반 이상이다. 남성 관중이 절대다수이던 과거와 비교하면 야구장 풍경부터 완전히 달라졌다고 프로야구 현장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야구 인기를 이끈 여성 팬들이 이제 ‘보는 야구’에서 ‘하는 야구’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에 등록된 팀만 49개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스포츠가 한데 섞여 있고, 아직 한계도 작지 않지만 부쩍부쩍 성장하고 있다. 직접 야구를 하려는 여성들이 크게 늘었고, 이들 중에서 가려 뽑은 국가대표팀 실력도 크게 늘었다. 지난 10월 여자 야구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대만과 6-8 접전을 벌였다. 2년 전 아시안컵 때는 5-15 콜드게임으로 패했던 상대다.

지난 28일, 경기도 고양의 한 야구 아카데미를 찾았다. 여자 야구 국내 최강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후라’ 선수들을 만났다. 그저 야구가 재미있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후라 막내 선수 박민교양이 웃고 있다.

■ 고교 대신 미국행 결심, 막내 민교의 당찬 결심

‘후라’의 막내 선수 박민교(15)는 내년 봄 중학교를 졸업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계획은 없다. 검정고시를 치르기로 했다. 여자 야구 선수로 목표를 정했다. 미국여자프로야구리그(WPBL) 팀에 입단해 선수로 뛰는 것이 목표다. 2~3년 안으로 미국에 건너가 그곳 학교에 들어갈 계획이다. 내년 출범하는 WPBL은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국 선수 4명을 지명했다. 민교의 꿈이 더 커졌다.

민교는 100m를 13초 대로 달릴 만큼 운동신경을 타고났다. 운동선수로 장래희망을 정했다. 많은 종목 중에서도 야구를 택했다. 그저 야구가 제일 재미있어서다. 아버지 박찬민씨는 “쇼트트랙이나 태권도 같은 종목을 생각했는데 민교가 워낙 야구를 좋아한다. 고민 끝에 어려운 결심을 했다”고 했다. 박씨는 일요일 훈련이 있을 때마다 민교를 차로 태워다 주며 응원 중이다. 최근에는 여자 야구에도 관심이 큰 이만수 전 감독에게도 ‘꼭 야구를 시키면 좋겠다’는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민교는 우익수와 포수, 투수로 주로 나선다. 여자 야구는 한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맡는 게 보통이다. 어깨가 가장 자신 있다. 우전 땅볼, 당연히 안타가 되어야 할 타구를 강한 송구로 아웃으로 만들 때가 가장 짜릿하다. 좀 더 힘 있는 타격을 하는 게 지금 목표다.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힘을 키우고 있다.

■ “한국 여자 야구는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죠” 더 강한 내일 꿈꾸는 국가대표들

후라 유격수 이유진씨(19)와 정다은(17)은 지난 10월 아시안컵 대표로 중국 항저우를 다녀왔다. 슈퍼라운드 두 번째 경기에서 대만에 6-8로 지고, 3·4위전에서 홍콩에 패하며 메달을 놓쳤다.

유진씨는 대만전 역전 적시타를 쳤다. 리드를 지키지 못한게 지금도 아쉽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유진씨는 “여자 야구는 더 떨어질 곳이 없다. 올라갈 일만 남았다”며 “배구, 농구, 축구보다 더 상장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웃었다.

유진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한국에 초·중·고 야구부는 한 곳도 없지만 공을 놓지 않았다. 야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어떻게든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로 버텼다. 야구를 계속해도 된다는 당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경희대 체육대학에 합격했다. 유진씨는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다른 종목을 하니까 많이들 신기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한 번도 다른 종목을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후라 2루수 정다은은 대학 야구 선수인 오빠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주 야구장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자기도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처음에는 딱딱한 야구공이 무섭기도 했지만, 이제는 몸에 맞는 것도 그냥 익숙해졌다. 장래 희망은 아직 막연하지만 지금은 그저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 제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후라 이유진씨(왼쪽)와 정다은양은 지난 10월 여자 야구 대표로 아시안컵을 다녀왔다.

장채원씨(23)는 상비군 멤버다. 대학생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남학생들과 같은 팀으로 사회인야구 4부 리그를 뛰었다. 야구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어릴 때부터 야구가 좋았지만, 막상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마음속 쌓인 아쉬움을 풀기 위해 대학생이 되지 말자 야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계속 야구를 하고 있다. 일주일 한 번 훈련만으로 부족하니 따로 레슨을 받는다. 후라 선수 대부분이 그렇다.

최드레(18)는 2023년 아시안컵을 다녀왔다. 올해는 대표팀에 들지 못했다. 2027년 대회가 목표다. 티볼로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맨손 야구’인 베이스볼5를 같이 한다.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 남자아이들과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하며 놀았다. 수비 하나를 해도 동료 선수들과 함께 뛰며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는 게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야구, 낭만이잖아요” 대학생 지숙씨의 소원

후라 이유진씨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지숙씨(24)는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 공을 잡았다. 아빠가 워낙 야구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 높아뛰기와 창던지기를 하다 그만둔 뒤에도 아빠가 먼저 나서 후라에 가입시켰다.. 야구팬 아빠는 딸이 야구 하는 걸 가장 좋아했다.

지숙씨도 야구가 좋다. 개인종목에서는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소속감을 느낀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운동에 들어가는 돈을 벌었다. 대학 친구들은 그런 지숙씨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취직에 도움도 안되는 걸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숙씨는 “야구는 낭만이잖아요”라고 했다. 낭만은 사라지고, 옛날보다 훨씬 더 퍽퍽해졌다는 한국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야구라면 더 좋다. 이제 지숙씨도 취직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지만, 어떻게든 야구는 계속하고 싶다. 지숙 씨는 “일본 실업 선수들처럼 직장 생활과 야구를 병행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웃었다.

‘스포츠 7330’은 대한체육회가 진행 중인 스포츠 참여 범국민 캠페인이다. 일주일(7일)에 3번 이상, 하루 30분 운동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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