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류승완은 왜 '상업영화'라는 용어에 반기를 들까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음악을 두고 상업 음악, 오락 음악이라고 안 하잖아요. 왜 영화만 상업 영화, 오락 영화라는 말을 쓸까요?"
류승완 감독에게 이런 요지의 말은 들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9월 영화 '밀수'의 400만 흥행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으로 이 말을 꺼냈고, 최근 열린 신작 '베테랑2'의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또 한 번, 그리고 영화 개봉을 앞둔 인터뷰 자리에서 다시 한번 언급했다. 이 정도면 공론화를 원하는 의중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류승완 감독이 자신이 만들어온 영화의 속성을 부정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저 '상업 영화', '오락 영화'라는 표현에 반감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 제 전작인 '밀수'는 어업 영화이고,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오펜하이머'는 공업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농업 영화인가요?"
그 용어의 어떤 점이 그렇게도 불편한 것일까. '상업', '오락'이라는 말 자체가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해 만남에서 류승완 감독은 "오락영화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대중 영화가 영화가 만드는 사람의 품위나 관객에 대한 인본주의를 담는 적합한 말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관객과 영화로 기쁨과 슬픔, 긴장감 등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지 박스오피스 스코어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오락 영화라는 말을 대중 영화라는 용어로만 바꿔도 힘이 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상업적 부와 성공, 즉 돈을 좇아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그의 소신은 존중한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선 '상업 영화'라는 말이 그렇게 불편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재미나 가치가 명칭에 의해 규정되는 건 아니다.
또한 매 작품 제작비 100억~200억 대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관객 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도 어폐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에 대해 지적하자 류승완 감독은 "물론 자본에 대한 책임은 중요하죠. 남의 돈으로 영화는 만드니까요.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투자해 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혀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마다 최소한의 목표를 손익분기점 돌파로 잡는 거고요"라고 강조했다.
"제작비 120억짜리 영화의 경우 시나리오 한 장당 약 1억의 돈을 쓰는 셈이에요. 저는 12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를 볼 때 가장 먼저 본문에 오타와 비문이 없는가부터 체크해요. 이것도 못 하면 현장을 어떻게 통제하겠어요? 저희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주머니에서 1만 5천 원을 지불하게 하는 사람들이에요. 사람마다 실력이나 재능에 대한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누구나 자본에 대한 무게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산업적으로 늘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목표고요"
'베테랑2'의 천만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도 그는 "저는 상업 영화를 만든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대중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제 대상은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이에요. 돈을 벌려고 했다면 '베테랑2'는 훨씬 더 일찍 만들었겠죠"라고 말했다. 제작비 130억 원을 투입한 '베테랑2'는 개봉 6일 만에 손익분기점(400만 명)을 넘었고, 24일 만에 전국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누구도 류승완 감독을,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얕잡아 보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그의 영화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쌓아놓은 커리어와 명성으로 인해 관객의 높은 기대감과 평단의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관객의 높은 기대감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이름의 무게'다. 류승완이라서, 류승완의 영화라서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더 혹독한 비판과 악플을 받는다.
대중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매 작품 맞닥뜨리는 대중의 반응과 평가에 느끼는 막중함 부담감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 규모와 유통 방식에 따른 분류, 업계와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 대중의 언어습관에까지 불편함을 드러내는 건 지나친 예민함으로 보이며 과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베테랑2'은 예상대로 흥행 질주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와 올 상반기까지 부진에 시달리던 투자배급사 CJ ENM에 숨통을 트여주고 있다. 그러나 개봉 첫날부터 전체의 50%가 넘는 2,000여 개의 스크린을 독점하고, 좌판율의 등락과 관계없이 이 수치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잖다.
이는 경쟁사들이 '베테랑2'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신작을 개봉하지 않은 탓도 크다. 무주공산의 흥행은 업계가 판을 깔았고 극장이 불을 붙였다. 본의 아니게 '베테랑2'와 동 시기에 개봉한 중,소 영화 및 독립 영화들이 "극장에 영화가 없냐, 스크린이 없지"라고 성토하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인터뷰 때마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예술가의 심장과 장사꾼의 머리와 노동자의 손발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그가 추구하는 '대중영화'의 의미는 '예술영화'의 반대말이 아니다. 대중 한 명 한 명을 박스오피스 스코어로 생각하지 않으며 그들을 겨냥한 상품이 아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는 소신도 누누이 밝혀왔다. 그러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대기업 자본과 배급망의 수혜를 본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의 발언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타이밍이 적절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영화는 결국 산업의 영역 안에 있다. 노래 한 곡을 만드는 데는 100억이 들지 않는다. 시청각 요소를 종합하는 콘텐츠인 영화를 만드는 데는 100억이 들기도 한다. 당연히도 천문학적인 자본을 태우는 산업에서 '상업성'을 배재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윤 추구가 우선인 투자자와 작품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창작자는 '동상이몽' 일지라도 훌륭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 최상의 결과는 '웰메이드 상업영화(혹은 웰메이드 대중영화)'라는 수식어 얻는다. 류승완은 한국 영화계에서 대중성(작품성 포함)과 상업성을 모두 성취한 몇 안 되는 감독이다. 도대체 '상업 영화'라는 표현이 무엇이 그리 문제일까.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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