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 자유기고가]
늦었지만 공감 나누고 싶은 드라마
세상이 어지러워서 좋은 드라마를 보고도 뭐 하나 감상을 남기기가 쉽지 않았다. 눈물을 철철 흘리다가도 갑자기 분노가 치솟는 순간들이 이어졌으니 모처럼 마음에 포슬포슬 일어난 따뜻함이나 애잔함이 남아날 여력이 있었겠는가. 이제야 겨우 안정이 된 덕분에 글을 쓰게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역시나 주변이 조용해야 뭔 일이든 하는 거다 싶다. <폭싹 속았수다>. 이 드라마에 대해선 수많은 글과 말들이 쏟아져 나와서 내가 이제야 또 하나 보태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꼭 쓰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애순과 관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흘러가는 인생을 따라가며 나도 같이 웃고 울었던 몇 주였다. “맨날 울던 해녀딸에서, 세상 챙피한 것도 그렇게 많던 문학소녀에, 미치고 팔짝 뛰게 좋던 선장 마누라에, 오계장에, 시장통 생선 아줌마에다 나이 일흔에 선생님 소리를 다 듣고 이제 오애순 시인까지, 인생 진짜 고 해봐야 아는 거지.” 70대가 되어버린 애순이 이렇게 나직이 읊조릴 때는 그동안 그들이 살아왔던 인생의 굽이굽이가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사람 사는 게 뭔가 싶은 마음에 어느새 주책없이 눈물이 고였다.

다음 세상에도 내게 넘어올래?
애순의 인생에서 관식은 남편이고 친구고, 천애고아에 의지할 곳 없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준 사람이다. 무쇠처럼 튼튼히 무슨 일이 있어도 애순 곁을 지키던 관식이 결국 병을 얻어 먼저 일찍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도 그저 애순을 염려하는 마음뿐이었다. “오애순이가 울면 난 그렇게 죽을 맛이데. 너무 울지마. 그럼 나 너울너울 못가. 내가 막판에 정말로 보고 가고 싶은 거는 당신 웃는 거. 당신 그 웃는 통에 내가 얼마나 한평생 신이 났는데.. 다음 세상엔 다섯 개 열 개 들어줄게. 다음에도 넘어올래?” 같이 다정히 누워 서로를 도닥이는 모습은 십대 때 부산 어느 여관방에서와 다를 바가 없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리 가버렸는지.
“다음에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복은 내리 안 와. 어떻게 나만 꽃동산에 살아. 나 당신 덕에 하루도 안 외로왔어. 하루도. 그런 인생 또 어딨어.” 애순이가 엄마를 잃었을 때도 삼촌 집에서 구박을 받을 때도, 재취로 팔려가듯 시집가려고 할 때도, 그리고 같이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별별 산전수전 다 겪는 와중에도, 관식은 애순을 ‘다 좋아했다’. 그런 인생 또 어디 있겠는가. 나의 모든 모습을 한없이 아껴주는 사람이 평생 함께 하는, 그런 인생이.
넌 나의 천국을 받아가는 거야
큰 딸 금명은 똑부러지게 커서 서울대를 갔고 애순과 관식의 자랑이 되어 줬지만 가난에 힘들어 겨우 학교를 다녔고 10년 가까이 사귄 남자친구 집에서도 천대를 받다가 급기야는 파혼을 하게 된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딸이 제주도 고향집에 내려오자 엄마와 아빠는 늘어져 있는 딸에게 계속 먹을 걸 해댄다. “어려서 넘어져 울면 사탕을 주고 볼거리를 앓고 나서는 돈가스를 사줬었다. 속이 다쳐 온 딸을 위해 그들은 또 하나만 해댔다. 그들은 나를 기어코 또 키웠다. 내가 세상에서 백 그램도 사라지지 않게 했다.”
부모는 자식이 늘 아이이고 못해준 것만 기억하며 미안해한다. 관식이 여행간 천안에서 서울까지 금명을 만나러 가자, 금명이 짜증을 낸다. 육지면 다 육지인 줄 아냐고. 그렇게 밤늦게 와서 얼굴만 보고 가는 딸에게 버스에 탄 관식은 창문에 바짝 붙어 손을 흔들고 딸은 뚱한 얼굴이지만 속엔 미안함만 가득한 채 겨우 손을 들어 흔든다. 손 흔들어주는 딸을 반가와 하며 관식은 생각한다. “아이고 조거만 두고 가네, 내가.”
그런 딸이 자신처럼 우직한 충섭을 만나 결혼을 한다고 고향에 내려오자 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있던 관식이 말한다. “너는 니가 뭐를 받아가는 지를 아냐. 내가 너에게 나의 천국을 준다.” 금명처럼 장녀로 커서 그런지 나는 금명이가 꼭 나 같았다. 못된 딸이라고 어떻게 고생만 하는 부모에게 저렇게 짜증을 내냐고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딸은, 그런 게 있다. 나에게 든든한 태산이었던 엄마 아빠가 어느 새 노인이 되어 하나둘 챙겨야 하는 게 늘어나고 그게 미안해서 자식의 기색을 조심스레 살피는 게 속상하고 또 속상해서 미운 말이 툭툭 나가지만 돌아오는 길엔 죄책감에 가슴이 쓰리고 마음에 울음이 맺힌다.
“금명이도 지금 철철 울어.” 엄마에게 마구 퍼붓는 딸에게 화를 냈던 아빠는, 하지만 딸의 마음을 알고 있다. 결혼식장에서 딸의 손을 맞잡고 들어가면서 관식은 언제나처럼 얘기한다. “금명아, 잘할 수 있지? 수틀리면 빠꾸. 아빠한테 냅따 뛰어와. 알지?” 늘 뒤에서 말없이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고향 같은 존재가 아빠고 엄마라는 걸, 때때로 잊고 지내는 자식이란. “나는 언제나 그들의 일번이었다.”
내 잘못에 자식을 먼저 보내는가
그런 자식이 죽는다는 건 어떤 걸까. “개소리들 말라 그래. 너는 효도도 했어. 부모 잃은 마음은 알아도 자식 잃은 마음은 나는 모른다. 살아 주는 게 효도였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이리 말하던 관식 엄마도 관식이 병원에 있다가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오자 베란다에서 먼저 갈 자식 생각에 눈물을 훔친다. 애순 아빠 한규를 일찍 보내고 평생을 살아온 애순의 할머니는 연세가 많이 들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애순만은 알아본다. “고달프지 왜 안 고달파. 이름이나 한번 크게 부르면서 엉엉 울고 싶은데 참고 살았더니 이제 한규 이름이 입밖으로 잘 안 나와. 그래 더 미안하지. 자식은 죽으면 요기서 살린다. 니속 내가 다 안다” 가슴을 치며 말하는 할머니 그 말씀에 애순은 할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울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가슴에 든 채 잊지 못하는 게 자식인가. 애순과 관식은 막내의 무덤에 같이 가지도 못한다. 미안함보다 죄책감이 커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관식은 내시경 때문에 수면상태가 되자 속내를 보인다. 내가 축대 쌓는 데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마음 한켠에 뭉쳐두고 또 뭉쳐둔 후회가 신음처럼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사랑으로 고달픔을 메우는 이들
어쩌면 외롭고 고달픈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애순과 관식에겐 따뜻한 주변이 있었다. 엄마 광례는 죽음을 앞두고 시어머니에게 애순을 당부한다. “어망은 더 있다가, 더 있다 오소. 그 아까운 아들 내가 찾을게요... 살다가 살다가 지 할머니 찾아오거든 한 번만 도와주소. 할머니 나 고달프다고 한마디 하거든 딱 한번만 살려줘요.” 할머니는 뱃일이 없어 살 길이 막막해진 애순이 찾아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힘들어 하자 몰래 쌈지돈을 건네주며 배를 사라고 한다.
세 해녀 이모들은 엄마 광례 대신이었다. 금명에게 해녀 일을 시키려는 시댁을 막고, 은명을 낳은 애순 산후조리를 시켜주고, 막내 동명이가 죽자 부엌에 음식을 그득그득 채워주고, 은명이가 사기를 당하자 같이 가서 분노해주고. 삶의 고비고비마다 애순을 병풍처럼 에워싼 채 애정을 쏟았다.
새아버지가 데려온 여자는 애순에게 “너 존경해. 네 심성이 식모더라.” 말하며 애순과 관식의 몇 개월치 월세비를 조용히 치러주고 떠난다. 세 주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또 어땠나. 어린 부부가 미안해 할까봐 살금살금 밤에 찾아가 쌀 떨어진 독에 매일 조금씩 쌀을 부어주기도 하고 좋은 음식 있으면 나누어주기도 하며 그들을 살렸다. “같이 안 속상해야 더 좋지.”
여관방에서 사기 당하지 말라고 면식도 없는 여자를 도와주던 애순과 관식의 고운 마음이, 원적외선 장판 팔러온 시누이에게 “어머니도 허리 아프시다며, 또 아가씨가 사주는 거라고 뻥치지 말구, 내가 사드리는 걸로 해요.” 말하던 애순의 착한 심성이 그런 인연들을 불러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나 잘 살았지? 그래 장해, 너무 장해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을 만치 내게는 좋은 대사, 좋은 내용이 가득한 드라마였다. 4.3 항쟁의 피해자 얘기는 왜 없느냐, 배 있으면 가난하다고 저렇게 궁색해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냐, 금명이가 서울대씩이나 나왔다면서 저리 주체적인 모습이 없는 건 이상한 거 아니냐, 게다가 학원을 차리다니 무슨 흐름이 그 모양이냐.. 흠 잡으려면 또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리고 흠이 아예 없을 수도 없겠지만 드라마 한 편에 모든 내용과 서사가 다 들어가긴 힘들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요즘처럼 팍팍하고 일상이 비일상이 되는 세상에 착하게 묵묵하게 서로 위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보면서 마음에 촉촉한 물기라도 머금을 수 있었다면 되었다 싶고.
화사하게 핀 노란 유채꽃밭에서 십대의 애순과 관식이 손을 꼭 잡고 뛰어다니며 신나서 얘길 한다. “나는 지프차 탈거야. 라이방도 낄거야... 너랑 그거 타고 천지사방 다 놀러 다닐 거야. 미국도 갈거야. ”도란도란 가면서 다 하면 되지. 우리 사는 내내 진짜 별거별거 다하자. 하고 싶은 거 막 다하자.” “좋아, 나도 좋아.”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산 인생은 아니었을 지라도 봄날처럼 따뜻하게 잘 살았노라 엄마에게 조근조근 다 얘기하고 싶었을 애순의 글을, 마치 광례가 환생한 듯 나타난 편집자 클로이가 다 읽은 후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작가에게 고마움마저 느꼈다. “아니 나 왜 이래. 왜 막 눈물이 나지?” “그렇게 좋아요?” “그냥 너무.. 너무.. 이걸 뭐라 그래야 하지. 장해. 너무 장해.” 나중에 광례가 딸 애순을 하늘에서 만난다면 쓰다듬으며 했을 법한 말. 장해. 너무 장해.
새벽에 투덜대는 딸을 깨워 배에 태운 채 일출을 바라보던 관식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너른 바다에 오롯이 띄워진 한 척의 작은 배 위에 앉아 있던 아빠와 딸. 이른 아침, 조금씩 떠오르며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해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아빠의 마음이 찡하게 전해졌다. “아빠, 너 있어서 하나 안 힘들었어.”
하루도 빠짐없이 망망대해에 나가 뱃머리에 홀로 앉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지냈을 관식의 인생이, 세상의 바다에서 자식과 가족을 위해 외롭게 애썼을 나의 부모의 인생과 겹쳐 아릿하게 다가왔다. 하루하루 쉽지 않은 인생을 버텨온 나의, 우리의 고향들, 그 인생에, 그 따뜻함에, 그 외로움에, 그들에게도 있었을 청춘에, 고마움과 미안함과 사랑을 보내며, “폭싹 속았수다.(무척 수고했습니다)”
※ 변혜정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일해 왔다. 사회경제적 요인과 주거환경과의 연관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연구소 및 기업체에서 EHS 컨설팅 및 전략수립, 안전보건관리 업무 등을 수행했다. 사람이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든 존재양식에 관심이 많다. 책과 영화와 음악과 공연 등에 대한 경험은 언제든지 마다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서 받은 영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을 통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할 수 있기를 늘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