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우승이었습니다.
제가 우승을 마지막으로 외쳤던 마지막 국제대회도 역시 아시안 게임 이었습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이었는데 그 때는 우승을 할 때도 왠지 찜찜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타이완에게 첫 경기를 패하고 결승에서 설욕하기를 바랐지만 타이완이 일본에게 패하면서 결승의 상대가 일본이 됐죠. 그래서 찜찜했나 봅니다.
반면에 이번 항저우에서의 우승은 설욕에 성공을 해서 매우 흡족 했습니다. 게다가 향후 KBO리그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이 그들끼리 만들어낸 우승이었으니까요.
제가 야구 중계방송을 했던 SBS는 전 경기를 목동 SBS방송센터에서 중계했습니다. 그래서 첫 경기였던 홍콩 전 3회에 일어났던 주자 역전 상황을 화면만으로는 알아챌 수 없었고, 결승전 1회에 나왔던 주자 3루 전진 수비 상황에서의 실점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중계했고, KBO 레전드인 이순철, 이대호라는 좋은 파트너들을 만나서 매 경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현장에는 없었지만 이번 아시안 게임 야구를 중계방송하면서 아시아 야구에 대해서 느낀 점들을 쭉 한 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시속 160km의 시대
중계방송을 하면서 모든 경기에서 난감했던 점이 화면에 표출되는 구속이었습니다. 홍콩 전 선발투수였던 원태인 선수가 등판해서 투구를 할 때, 경기 초반 컨디션도 좋고 공의 궤적도 국내 리그 등판 때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계속 시속 130km대 중후반의 빠른 공 구속이 기록 됐거든요. 중계방송을 함께 했던 PD는 SBS가 현장에 배치한 LTE 카메라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전광판 구속을 확인했는데 화면에 표시되는 구속과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중계방송을 하면서 중간중간 ‘B조 경기가 열리는 샤오싱 야구장 2구장의 구속은 7~8km 덜 찍히는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등판하는 우리 투수들의 구속도 예선 때는 모두 평균 구속에서 시속 7~8km가량 덜 나왔습니다.
두번째 경기와 결승에서 맞붙었던 타이완은 아시안 게임으로만 한정하면 항상 일본보다 더 큰 숙적이었던 팀입니다. 게다가 이번 대회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젊은 선수들로 선수단을 짜고 나왔기 때문에 타이완과의 대결은 매우 의미 있고 특별 했죠. 특히 마이너리거들이 보여준 기량은 인상깊었습니다.
선발투수였던 린위민은 두 경기 모두 우리를 매우 어렵게 했습니다. 첫 맞대결에서는 아마추어 야구 심판들의 넓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바깥쪽 빠른 공으로 수월하게 볼카운트를 점령해갔습니다. KBO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이 기준으로 맞춰져 있던 우리 타자들에게 처음 만났던 린위민의 바깥쪽 공들은 모두 빠진 공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도 결승에서 다시 만나서는 초반에 그 바깥쪽 빠른 공을 공략한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우리 타자들도 일주일 동안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을 했던 것도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겠죠. 그러지 못했다면 아마도 계속 초조한 흐름으로 끌려가는 양상이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린위민은 애리조나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단계별로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는 선수였는데 타이완은 류현진이 MLB로 진출하기 전, 최고의 메이저리그 아시아 출신 좌투수였던 천웨이인이나 KBO리그에도 몸 담았던 왕웨이중, 국제 대회에서 우리를 몇 차례나 괴롭혔던 천관위 같은 좋은 좌투수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나라인 만큼 린위민도 그 계보를 이을 수 있는 좌투수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성장세로 몇 년이 지나고 만일 WBC나 프리미어12에서 이 선수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이어서 나왔던 류치중과 구린뤠이양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강백호 선수와 어린 시절부터 국제대회에서 우정을 쌓아왔던 류치중은 보스턴의 AA팀에서 선발로 뛰면서 최고구속 160km를 넘나드는 투수라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역시 그랬습니다. 슈퍼라운드부터 결승까지 진행이 됐던 샤오싱 야구장 1구장의 경우는 우리가 알고 있던 구속보다 대략 시속 5~6km가 더 찍혔습니다. 류치중은 두 경기에서 모두 경기장 스피드건 상 문동주와 고우석 선수만큼의 구속이 나왔습니다. 또 조별라운드에서 나왔던 구린뤠이양은 타이완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였는데 구속은 류치중 선수보다 조금 처지는 시속 150중반 정도였지만 우리 타자들이 ‘공 끝이 두 번 살아온다’고 말할 정도로 위력적인 구위를 뽐냈습니다.
고우석, 안우진, 문동주, 김서현 등등. 우리나라도 시속 160km를 기록할 수 있는 투수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타이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의 젊은 투수들 만큼이나 그들도 힘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시아 프로야구도 본격적인 시속 160km의 시대입니다. 한국, 일본, 타이완 모두 마찬가지로 말이죠.

중국의 발전
9회까지 진행되는 긴 호흡의 야구경기에서 승리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A조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 대회 최대 이변이 이었고 그 결과는 당연히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이 일본을 잡는 파란이 펼쳐진 거죠.
어차피 슈퍼라운드에서 만날 팀이기 때문에 두 팀의 경기를 화면을 통해서나마 지켜봤는데 중국이 제가 알던 중국 야구 대표팀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들은 발전했습니다. 그 경기를 통해서 지켜본 바로는 일단 투수들은 시속 140km에 가까운 공을 던졌고, 야수들도 매우 매끄러운 수비를 보여줬다는 겁니다. 지난 봄 WBC때와 거의 비슷한 멤버였음에도 훨씬 더 짜임새가 느껴지는 팀이 되어있었습니다.
사실 중국과의 마지막 경기 중계방송을 앞두고 이순철, 이대호 위원에게 중국의 주요선수들에 대해서 잠시 브리핑을 했는데 그 때 제가 몇몇 선수를 조심해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두 해설위원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영아. 불안하냐? 걱정하지마. 우리가 이겨.” (이순철 위원)
“중국이 아무리 늘었다고 그래도 우리가 질 것 같아요? 나랑 내기 할래요?” (이대호 위원)
네. 솔직히 저 좀 불안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의 홈이었잖아요.
게다가 경기가 시작되고 중국의 선발투수로 왕웨이이라는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는데 경기 초반에 빠른 공이 시속 151km까지 나오는 겁니다. 아무리 1구장 스피드 건이 높게 찍힌다고 해도 저 정도면 시속 140km대 후반은 나온다는 의미인데요. 잠깐 우리 타자들이 잘 공략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잘못 생각을 했더라고요.
우리가 선발투수 왕웨이이를 여유 있게 공략을 하고, 중국은 점점 더 약한 투수로 투수를 교체하면서 우리가 무난하게 점수차를 벌여갔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번 대회에 출전한 중국 야구팀에 대한 놀라움은 남아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 정도의 발전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서요. 분명 올 초 WBC에서 우리에게 22:2로 대패했던 그 팀과 큰 차이가 없는 팀이었거든요.
만일 70년대 말에 세계무대에 등장해서 우리나라 야구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던 고 최동원 투수 같은 기린아가 현재의 중국에서 한 명이라도 나타난다면? 그 13억 인구 중, 선동렬, 박찬호 같은 선구자가 한 명이라도 나타난다면?
예전의 중국이 야구의 흉내만 내는 팀이었다면 이제는 야구 다운 야구를 하고 있는 팀인데 여기에 괴물 같은 투수가 한 명만 나오더라도 우리는 쉽지않은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중국 야구의 발전은 우리 리그에도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야구가 뻗어갈 수 있는 방향이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 지도자들이 중국 축구에서 많은 성과를 냈던 것처럼 향후 지도자 진출 혹은 선수생활 막판에 플레잉 코치 진출 등의 방안과 국내 드래프트 미지명 선수의 중국 리그 진출 등등 다양한 활로가 열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막혀있는 상태지만 분명 그들도 발전을 위해서 문을 열어야 할 시점이 도래할 겁니다. 이후 상호교류와 성장이 이뤄지게 된다면 KBO리그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죠.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부분만 나열한 겁니다.

타이완 청충체의 번트의 이유는?
타이완의 투수들만큼 위협적이었던 타자가 한 명이 있습니다. 타이완의 1번타자 청충체 선수였는데 이 선수에게는 솔직히 놀랐습니다. 대회 전 조사했던 자료에 따르면 이 선수는 피츠버그 A+와 AA를 오갔던 선수였습니다. 올시즌 기록을 봐도 상위A에서는 좋은 기록을 냈는데, AA에서는 기록이 많이 뒤쳐졌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예선라운드에서 문동주 선수를 상대했던 첫 타석부터 심상치 않은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볼카운트가 몰린 상태에서 2루타를 때려냈고 결국 타이완의 선취득점으로 이어졌죠. 그 이후에도 타석에 나올 때마다 위협적이었습니다. 특히 빠른 공에 대한 대처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죠.
결승의 청충체는 더 놀라웠습니다. 타이완 전 대한민국의 선발투수였던 문동주 선수는 6회까지 투구를 하면서 안타를 딱 세 개 허용을 했습니다. 그 세 개의 안타는 모두 타이완의 1번타자 청충체가 때려낸 안타였습니다. 그 날 청충체가 때려낸 3개의 안타 중 두 개는 2루타였죠. 펜스 위 노란 선을 때리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왔던 우리에게 행운이 겹쳤던 그 타구도 청충체가 때려낸 안타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갑자기 번트를 댔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아웃이었습니다. 저와 이대호 위원은 중계를 하면서
“고맙습니다. 청충체 선수!”
진심으로 외쳤습니다. 우리 팀에 유일하게 위협이 됐던 타자가 자신 없는 모습으로 스스로 아웃이 되어 주다니요. 나중에 타사의 하이라이트를 확인해봤는데 다 이와 비슷한 멘트더라고요. 확실히 사람이 어떤 사안을 놓고 뭔가를 떠울리는 것은 비슷한가 봅니다.
그 당시에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대회가 종료된 후 대회 전체의 기록지를 천천히 살펴보니 알겠더라고요. 청충체는 예선라운드 7회 본인의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으로 돌아섰습니다. 상대투수는 박영현 선수였습니다. 8회 2사 1루에서 마운드 위에는 박영현 선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시안 게임에서 본 박영현 투수의 공은 놀라웠습니다.. 메인 구장의 구속이 조금 더 나왔다고 해도 시속 150km를 상회하는 구속의 공이었고, 화면을 통해서 느껴지는 공의 무브먼트는 마치 주변의 공기를 꾸기면서 포수의 미트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죠. 특히 예선 맞대결에서 박영현 선수는 그냥 가운데로 던졌습니다. 그렇게 한복판으로 공이 들어와도 타이완 타자들의 배트는 공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청충체는 그렇게 첫 대결에서 박영현의 한복판 빠른 공을 건드려보지 못하고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자신을 압도했던 투수를 그 중요한 순간 다시 만나니 본인이 공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번트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겠죠. 청충체가 번트를 위해 배트를 내렸던 바로 그 순간이 우리나라가 금메달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일본 사회인 야구를 계속 사회인 야구라고 불러야 할까?
이는 일본과의 슈퍼 라운드 중계방송 중에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은 일본 사회인 야구에서 선발한 선수들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패했던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우리 대표팀에 온갖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생각한 취미 수준의 ‘사회인 야구’팀에 패했다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회인’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지배력은 여전합니다. 제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일본은 사회인 야구라면서요? 우리는 프로인데 그럼 그냥 쉽게 이기는 거 아닌가요?”
어지간한 커뮤니티만 가도 제가 항상 받는 질문과 같은 질문이 있습니다.
“일본은 사회인 야구라면서요? 우리는 프로인데 그럼 그냥 쉽게 이기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태동하기 전에 실질적으로 프로야구의 역할을 했던 실업야구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면 되는가에 대해서도 굉장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사회인 야구는 우리나라의 예전 실업야구처럼 기업이 운영하는 야구단들도 있지만 순수한 클럽 사회인 야구단도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참 난감한 거죠. 실업 야구의 성격도 있고, 클럽 야구의 성격도 있는데 이름은 사회인이니까요.
심지어 야구 실력도 뛰어납니다. 이대호 위원은 한일전 일본의 선발투수였던 가요 슈이치로 선수를 이닝 사이 광고가 나가는 중에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저 정도면 NPB에 가도 3~4선발은 충분합니다.”
항저우 현지 취재를 했던 이성훈 기자에 따르면 2021년 구속이 대폭 상승한 가요 선수에게 프로 스카우트 들이 접근을 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회인 야구를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프로 입단을 해서 잘하면 앞으로 3~4년 연봉 높게 받을 수 있겠죠. 그런데 못 하면요? 금방 잘리겠죠. 토요타 자동차(소속팀)는 정년까지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내 커플입니다. 그냥 여기 있겠습니다. “
네. 그렇다고 합니다.

보람
제가 중계 중에 강백호 선수가 오른손에 배트를 쥐고 지면과 평행선을 이루는 그 세리모니를 꼭 보고 싶다고 말이죠. 어딘가 모르게 주눅든 강백호 선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순철 위원은
“이야기하세요.”
네. 그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날 밤 강백호 선수에게 인스타DM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강백호 선수는 그 글을 읽고 답을 해줬습니다.

루틴을 취한 강백호 선수는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났고 루틴 이후 홈런까지 때려냈습니다.
대회를 마치고 강백호 선수가 DM을 보냈더라고요.
“고맙습니다.”
아주 짧은 이 한마디 안에 그간의 마음고생이 다 담겨있었습니다.
저를 고마워해줘서 고맙습니다. 강백호 선수.

과정의 아쉬움은 어떻게 달래야 하나?
좋은 결과는 물론 즐겁고 또 축하를 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났던 아쉬운 점들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엔트리의 구성과 제출, 또 마지막 선수 교체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분명히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던 상황이라 더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약 이 작은 우승에 취해 과정에서 나타난 아쉬움을 파묻고 지나간다면 더 큰 대회에서 똑같이 과정의 아쉬움이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결국 또 우리나라는 아시안 게임에서만 야구 강자로 남게 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로 아시안 게임이 1년 뒤로 밀리면서 다음 아시안 게임은 3년 후인 2026년 입니다. 스포츠 시계에서 3년은 짧습니다. 도쿄 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파리 올림픽이 내년이잖아요?
이번 대회에 출전했던 모든 선수들이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기량 이상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아쉽게 고배를 마셨던 선수들도 꼭 3년 후를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