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월드컵의 ‘4쿼터 축구’

어수웅 논설위원 2026. 6. 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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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린 월드컵 한국 대 체코전. 전반 22분이 지났을 때 체코의 거친 반칙으로 우리가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골을 기다리며 숨죽이는데 주심이 갑자기 휘슬을 불며 경기를 중단시켰다. 어리둥절하는 사이 TV 화면에서는 느닷없이 맥주 광고가 시작됐다. 화면 구석에 작은 글씨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라고 적혀 있다. 이번 월드컵부터 의무 도입됐다는, 선수들의 ‘수분 보충 휴식’이었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가 본 것은 선수들 갈증 해소가 아니라 광고의 물결이었다. 맥주를 시작으로 에어컨·자동차·바디샴푸, 그리고 노릇한 피자 광고가 이어졌다. 휴식 시간은 전후반 각각 3분. 후반 황인범의 극적인 동점골 이후 “이제 역전 가자”를 외칠 때도 22분이 지나자 주심의 휘슬이 다시 울리며 흥이 깨졌다. 중계창엔 “이런 축구 처음 본다”는 댓글이 보였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수분 휴식’을 전 경기 의무 도입했다.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자는 취지다. 기온이 32도를 넘을 때만 심판 재량으로 주던 ‘쿨링 브레이크’와 달리, 지붕이 닫힌 실내 경기장에서도 예외 없다. 하지만 저녁 8시에 시작한 이날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기온은 영상 21도. 낮에 내린 소나기 덕분인지 선수들은 선선함까지 느꼈다고 했다.

▶축구는 원래 전·후반 45분씩 90분을 쉼 없이 뛰는 스포츠다. 그 무모할 정도의 스피드와 체력적 한계마저도 축구의 일부이자 매력이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일종의 ‘4쿼터 축구’다. 미국 스타일 스포츠의 특징일까. 미국 프로농구 NBA는 탄생했을 때부터 4쿼터제였고, 시작할 때는 전·후반제였던 미식축구도 1910년부터 쿼터제로 전환했다. 쿼터 사이에는 광고가 들어간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명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맨체스터 시티)은 “FIFA가 선수 건강을 핑계로 돈벌이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여러모로 새로운 제도가 많다. 사실상의 4쿼터제 도입 말고도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대폭 늘어났다. 경기 수도 늘어나 기존에는 조별리그가 끝나면 바로 16강이었지만, 이번 대회부터는 32강부터 토너먼트가 시작된다. 대회 전체 기간도 그래서 일주일 늘어난 39일이다. 2차전은 일주일 뒤다. 모든 것이 ‘더 많이’ ‘더 길게’ 그리고 ‘더 상업적으로’ 변했다. 1차전 승리로 기쁘지만, 우리가 알던 월드컵은 아닌 것 같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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