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먹었던 10가지 국수
안녕. 디에디트 객원필자 조서형이다. 한국의 겨울을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두 달 전 따뜻한 나라로 뛰쳐나왔다. 어느덧 한국에 돌아왔고 5월이 되었지만,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말레이시아의 해변에 텐트를 쳐 놓고 모기를 쫓으며 글을 쓰고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다. 말레이, 인도, 중국계 사람들이 함께 산다. 문화권별 고유 음식이 있고 그 교집합에서 새로 생긴 음식도 있다. 같은 국수를 주문해도 국물 여부, 소스 추가 여부, 면의 종류, 토핑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무슬림인 말레이인과 돼지고기 사용이 많은 중국계 식당,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인도 음식과 말레이시아 전통 삼발 소스가 한 나라에서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자전거에 짐을 묶어 여행하며 국수를 자주 먹었다. 자전거를 타면 열량 소모가 커 하루에도 너덧 번씩 배가 고프고, 면 요리는 가격과 맛 변동성이 적어 여행자에게 안전하며, 이 나라는 먹어도 먹어도 새로운 국수가 나타나니까. 북쪽으로 움직이는 동안 매일 두어 번의 말레이시아 면 요리를 먹으며 알게 된 열 가지 국수를 소개한다. 언젠가 말레이시아로 떠날 당신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차꿰띠아오
Char Kuay Teow
이 국수를 시킬 때마다 내 발음을 들은 요리사는 웃었다. 오타처럼 쓰인 알파벳은 읽기 어렵지만, 중국어 발음을 생각하고 말하면 좀 낫다. 음식명이 애초에 외래어라 스펠링도 조금씩 다르게 쓰여 있다. 꿰띠아오는 납작하고 부드러운 쌀국수다. 앞에 붙은 ‘차’는 볶는다는 중국어 차오(炒)에서 왔으니 납작한 쌀국수를 중국식으로 볶은 요리쯤 된다. 커다란 웍에 숙주, 새우, 조개, 고추, 계란, 부추, 고기 같은 재료와 간장과 굴 소스를 넣고 숯불에 볶는다. 쿠알라룸푸르의 핸드백 매장에서 일하는 파틴(Fartin)에게 이 음식이 태국의 팟타이와 비슷하지 않냐고 물었다. “아니지. 차꿰띠아오 쪽이 맛이 훨씬 진하지. 팟타이보단 덜 달고 훈연한 향이 더 나고.”
길에서 매우 흔하게 보이는 볶음면인 만큼 매장마다 재료와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맛있게 먹었던 차꿰디아오는 주립공원 ‘타만 네기리(Taman Negeri)’의 식당에서 먹은 것. 소스가 넉넉하고 면이 부드러워 수저로 마구 퍼먹었다.
[2]
락사 Laksa
태국의 똠얌과 한국의 추어탕 사이쯤 되는 음식이다. 오래 삶은 생선에 과일 타마린드를 넣고 끓여 맛을 내는데 CNN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50가지 음식’에 속한다고. 새콤한 국물 맛은 먹다 보면 익숙해진다. 한국의 고등어 김치찌개랑 비슷하다. 다양한 면을 넣어 먹는데 노란 둥근 면이 가장 일반적이다.
딜라(Dylah)는 말레이시아 북부 사람이다. 그의 일곱 자매는 성격과 생김새가 모두 다르고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모두 락사를 꼽았다. 말레이시아 북부의 락사를 ‘아삼 락사(Asam Laksa)’라 부른다. 생선, 레몬그라스, 강황을 우린 국물에 타마린드즙과 새우를 매콤하게 발효한 소스를 넣어 만든다. 남부 지방에서는 타마린드 대신 코코넛 밀크를 넣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락사를 만들어 먹는다.
[3]
호켄미
Hokkien Mee
쿠알라룸푸르 옆 클랑(Klang)에 살며 일주일에 두어 번 쿠알라룸푸르로 출근하는 지유(Jiyew)와 토요일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이른 시간부터 분주한 식당이었다. 계란후라이와 고춧가루 얹은 짜장면 같은 걸 포장해 가는 앞사람을 보고 얼른 따라 주문했다. 기름진 소스가 면 전체에 잘 스며들어 있다. 따뜻하고 달콤하고 짭짤하다. 매운 소스를 더해줄 건지 묻는다. 나는 가장자리에 놓고 두 가지 버전을 먹었다. 단짠단짠 축제다. 호켄미가 아침으로 먹기엔 자극적이지 않냐고 지유에게 물었다.
“차랑 같이 먹으면 균형이 더 맞을 거야. 네가 곁들여 마신 차는 ‘凉茶’, 영어로 Cooling Tea. 각종 약재를 넣고 끓인 다음 차갑게 한 거야. 호켄미는 하루 언제든 먹는 음식이야. 아침에 먹기 부담스럽다면 점심으로 먹으면 되지.”
위에는 아침 식사 버전이라 단순한 재료가 쓰였지만, 주로 양배추와 돼지고기, 새우 등을 같이 볶는다. 쿠알라룸푸르와 그 주변 지역에서만 이렇게 진한 간장 소스를 넣어 볶아 먹는다. 싱가포르에서 호켄미를 주문하면 아마 전혀 다른 접시를 받게 될 거다. 호켄 미는 중국 푸젠성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요리라 하여 이름 붙었다. 푸젠성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 기준이 없어 지역별로, 가게별로 다양한 모습을 한 호켄미를 판다.
[4]
매기고렝
Magie goreng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숙소에 누워 있다가 말레이시아 친구들에게 불려 나갔다. 다 같이 식당에 갔지만 거하게 야식을 먹을 자신은 없었다. 친구들은 매기고렝을 주문해줬다. 사진을 이렇게 찍은 것도 맞지만, 실제로 저렇게 간단하게 나온다. 나시고렝, 미고렝 등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시’가 밥, ‘미’가 면, ‘고렝’은 볶은 음식을 말한다. 매기(Maggie)는 말레이시아 라면 회사로 인스턴트 면을 아예 매기라 부른다. 인스턴트 면과 양념을 볶아 만든 음식이 매기고렝이다. 채소와 고기, 해산물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날 주문한 기본 매기고렝은 맛이 슴슴해 어린이용 라면 같았다. ‘뿌셔뿌셔’같은 중독성이 있어 한 그릇을 비우는 일은 순식간이다.
[5]
비훈
Bee Hoon
얇은 쌀국수다. 투명할 정도로 얇고 곱다. 조금씩 건져 먹으면 씹지 않아도 될 만큼 부드럽고,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오히려 잘 씹히지 않는다. 대체로 맑은 국물과 잘 어울린다. 말레이시아는 해산물이 풍부한 나라로, 생선과 함께 먹는 비훈이 유명하다. 커다란 물고기를 머리째 넣고 시원하게 끓인 ‘피시 헤드 수프 비훈(Fish head soup bee hoon)’이 유명하다. 나는 오리고기 비훈을 선택했다.
[6]
호우펀
Hor Fun
넓적한 쌀국수 위에 녹말을 끓여 만든 걸쭉한 소스를 얹어 먹는다. 해산물 베이스와 간장 베이스가 대표적이다. 이날은 간장 베이스를 골랐다. 짠맛보다 참기름 같은 고소한 맛이 많이 난다. 해산물 베이스는 유산슬에 쌀국수를 넣어 먹는 느낌이다. 오래 끓여 맛을 내는 다른 국물과 달리, 소스가 비교적 만들기 쉬워서 말레이시아에서는 집에서 많이 해 먹는 음식이라고.
[7]
꿰띠아오탕
Koay Teow Th’ng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찬 식당을 보았다. 홀린 것처럼 빨려 들어갔다. 돼지 뼈로 우린 맑은 국물에 동그란 어묵, 얇게 찢은 닭고기, 튀긴 유부, 숙주, 파가 얹어져 나오는 국수가 있었다. 굵기와 색깔이 다른 면을 고를 수 있었다. 면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국물이 걸쭉해지기도 한다. 에그 누들과 쌀국수 면을 골랐다. 간을 맞춰 먹을 수 있도록 쥐똥고추를 넣은 간장도 함께 줬다. 국물이 생각한 것보다 달다. 간장을 넣어 먹으면 달고 짠 맛의 균형이 맞아 맛있다.
[8]
박초미
Bak chor mee
스파게티처럼 생긴 가느다란 에그 누들에 다진 돼지고기와 버섯이 올라간다. 고명으로 채소, 삶은 계란, 어묵, 완자 등을 더할 수 있다. 고기와 버섯은 간장, 식초, 참기름, 고추, 후추 등 양념을 넉넉하게 해 볶는다. 그 양념으로 삶은 국수를 비벼 먹는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간장 비빔 국수에 가깝다. 달고 매운 맛을 강조하기 위해 고추를 넣어 먹었다.
[9]
카레미
Curry Mee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역시 향신료 문화가 발달했다. 여기에 인도계 사람이 섞이면서 말레이시아에는 향신료를 다양하게 사용해 잘 만든 여러 카레 요리가 생겼다. 향신료와 토핑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카레 특성상 카레미 역시 종류가 많다. 대체로 노랗고 걸쭉한 카레 국물에 둥글고 중간 굵기의 옐로 미를 삶아 넣어준다. 맵고 칼칼한 카레미를 먹을 때는 신라면을 떠올리며 반숙 계란과 어묵 등 토핑을 다양하게 주문한다. 나는 시원하고 달콤한 밀크티 ‘떼 따릭(Teh Tarik)’을 함께 주문해 혀를 식혀가며 먹었다.
[10]
완탄미
Wantan Mee
완탄이나 훈툰으로 불리는 중국식 물만두가 들어간 국수. 얇고 흐물거리는 만두피와 새우나 다진 고기로 가득 채운 소가 특징이다. 크게 국물이 있는 만둣국 형태와 볶음면 위에 만두를 토핑으로 얹은 형태가 있다. 주로 얇은 면을 사용하며 삶거나 구운 고기와 데친 잎채소를 곁들여 먹는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한 달간 매일 자전거를 탔다. 까맣게 그을리고 바짝 말라 누가 봐도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몸무게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대신 아직 건강하고 즐겁게 페달을 굴리고 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베트남과 태국, 인도네시아의 명성에 밀려 말레이시아 음식은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여러 곳의 요리법을 흡수해 각지의 가장 맛있는 국수들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라지지 않는 입맛과 필요할 때 충전되는 체력에는 위 말레이시아의 국수 요리가 있었다.
*편집자 주: 많지는 않아도 한국에서도 말레이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연남동의 아각아각, 방이동의 더 마칸에서 차꿰띠아오, 락사, 비훈, 완탄미 등을 판매한다. 망원동 장화신은고양이 락사만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음식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