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원칙과
능력에 따라 부담한다는 '조세공평주의'
그럼에도 정치이슈화 되어버린 금투세 도입
서민들 피폐해져 논란 없어져야 도입하려나
공공서비스 재원을 위한 세금
세금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는다. 세무업무를 하다 보면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다고 이렇게나 많이 빼앗아가나?’하는 고객들의 매우 진지하고도 강력한 심리적 조세저항에 놀랄 때가 많다. 속으로 ‘그 정도 벌면 이 정도는 세금으로 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필자 자신도 당사자가 되면 비슷한 불평이 모르는 사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필자의 첫째 애가 중학생이었을 때, 일일 교사로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직업의 부모님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 공인회계사 겸 세무사로서 초청이 되었던 것이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회계나 감사 같은 것 보다는 세금이야기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정리해 설명했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국가는 개개인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데, 이를 '공공 서비스'라고 부른다. 국방과 치안은 기본이고, 사회간접자본 건설이나 일자리 창출 등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거나, 교육이나 공공의료를 제공하고, 빈부 격차가 심해지지 않도록 생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회복지 지출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해 예산을 어디 썼는지를 설명하는 그래픽이다.
이런 일들을 국가가 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한데, 바로 세금을 통해서 마련하게 된다. 세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법에 따라 걷는 돈이다. 대표적인 세금으로 근로소득세를 포함하는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 법인세 같은 것들이 있고, 헌법 제59조에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문에 따라 국회에서 세법을 만들고, 이 법에 근거해서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조세공평주의' 라는 자명한 원칙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세금은 국민의 능력이나 편익을 누리는 정도에 따라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조세공평주의’라고 부른다. 조세공평주의는 간단히 말해, 모든 국민이 자신의 능력-소득이나 재산 등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많은 세금을, 적게 버는 사람은 적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득세의 경우 소득이 증가할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율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부동산, 자동차 등 보유하고 있는 재산에 따라 재산세를 부과하고 있다. '조세공평주의'는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세금을 부담하면 사회적 형평성을 이룰 수 있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세금을 공정하게 나누는 문제를 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가치이므로 우리 모두 이 원칙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금을 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세금이 없으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못한다. 그래서 국민의 조세의무는 필수불가결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조세의무는 공평하게 즉, 납세자의 담세능력에 따라 부담되어야 한다.
그야말로 아주 평이하고 기본적인 세금과 재정에 관한 이야기다.

중산층이하 세부담 증가시킨 감세정책
최근 몇 년 간 이어지고 있는 여러 감세정책과 대규모 세수결손은 이런 상식과 너무 배치된다. 좋지 않은 경제상황 탓에 가만히 있어도 법인과 개인의 소득이 감소하여 세금이 줄어들 판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감세기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결국 담세능력에 따른 '조세공평주의'의 훼손과 세수부족에 기인한 국가가 제공해야 할, 국가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의 축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국가의 역할도 축소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정책방향성이라는 걸 알아차리긴 어렵지 않지만, 중산층 이하의 세금이 낮아지는 것 같진 않은데도 국가 공공서비스를 축소하는 것은 중산층 이하 계층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며칠 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6월 누계기준 국세수입 자료를 보자. 소득세는 전년 동기 대비 유지(+0.2조원)되고, 부가가치세도 소비증가 및 환급 감소로 납부실적 증가추세가 유지(+5.6조원)된 반면, 법인세는 지난해 기업실적 저조로 납부실적이 감소(-16.1조원)하고, 종합부동산세 등도 감소했다. 이로서 2024년 6월 누계 국세수입은 168.6조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0.0조원 감소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실적도 실적이지만 세율인하와 세액공제·감면 확대로 인해 법인세, 종합부동산세와 증권거래세의 세수는 감소한 반면, 고물가에 따라 부가가치세 매출세액은 증대했고, 실질소득은 하락했어도 명목근로소득이나 이자소득은 늘어나 이에 대한 세수는 유지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결국 부자 아닌 중산층 이하의 세부담은 증대했다는 말이다.

금투세 폐지의 황당한 주장들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 논쟁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조세공평주의나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공평과세의 원칙 뿐만 아니라, 재정건전성의 시각에서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상반기 2조 7천억 원이 걷힌 증권거래세는 낮아진 세율로 전년 동기보다 3천억 원 줄어든 상태이며, 내년엔 세율이 더욱 낮아진다. 또한 금투세가 폐지나 유지된다고 해서 증권거래세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럼 세수결손은 더욱 심화된다는 말 아닌가!
최근에는 금투세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로 ‘사모펀드에 대한 감세효과’가 등장했다. 금투세가 그동안 비과세였던 상장주식의 매매차익에 과세를 하는 ‘부자들에 대한 증세’가 아니라, 사실은 사모펀드의 환매와 양도시 세율을 종합소득세 최고세율인 49.5%가 아닌 금투세 최고세율(주민세 포함) 27.5%로 낮추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금투세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점입가경이다. 아니 그럼 세법 규정을 고쳐서 사모펀드의 환매와 양도차익도 배당소득으로 본다고 하면 될 것 아닌가? 이게 왜 금투세를 폐지해야 할 이유가 되는지 당황스럽다. 그냥, 큰손들이 금투세가 무서워 주식시장을 떠나면 가뜩이나 저평가된 한국증시가 더욱 타격을 입는다. 그러므로 폐지나 유예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솔직(?)해 보인다.
그리고, 도입을 추진하는 야당 쪽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과 한국경제와 증시의 성숙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부자감세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하는 정부나 여당의 ‘좌고우면’하지 않는 소신도 좀 배웠으면 한다. 자신이 없으면 물러나든지.
팔 십 노모가 새 세금 걱정하는 세상이라니
그런데, 어제 저녁 필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저녁을 먹고, 만 여든 한 살 되신 노모와 TV를 보며 이야기를 하는 데, 문득 물으셨다.
“금투세가 뭐냐?”
“네?”
“다음 달에 정기예금 만기가 돌아오는 데, 세금 떼는 거야? 자꾸 테레비에 나오던데.”
“아, 그건 주식투자해서 돈 벌면 내는 세금이에요. 정기예금하고 상관없어요.”
“이자받는 거는 세금내는 거 아니야?”
“아 그게… 실은 이자소득은 이미 세금을 떼고 있어요. 만기에 이자 주잖아. 세금을 떼고 줘요.”
“세금을 떼고 줘? 나한테 은행에선 안뗀다고 했는데?”
“그건 어머니께서 65세 이상 노인이라서 비과세종합저축을 가입해 준 탓에 안떼는 걸 거에요. 5천만원까지일 껄?
“그래, 5천만원은 세금 안떼고 3.4%구, 나머지 4천만원은 3.45%인가 그랬어.”
“그 나머지 4천만원은 이자 줄 때 세금 떼고 줄 거에요. 15.4% 떼면 받는 건 비과세보다 적지.”
“그래서 금투세는 안떼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구. 이자소득에 대해선 종합소득세를 떼는 데, 어머니는 별 소득이 없으니까 은행에서 원천징수 15.4%를 떼고 나면 땡이고, 금투세는 주식투자 안하니까 상관없어요.”
“하여간, 세금 안내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구. 이자소득은 이미 떼고 있지. 주식투자로 번 돈은 지금까지 세금 안냈는데, 이제 내라고 하고 있구. 근데 정부가 앞장서서 없애겠다고 하고..”
“…”
어머니께선 ‘뭔 소리를 하는지 원..’ 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역력했다. 어쨌거나, 이 대화 이후 금투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바뀌었다.
금투세와 대부분의 개미투자자는 별 상관이 없다. 또 어머니와의 대화에도 언급되었지만 이자소득에 대해선 과세를 하고 있다. 그러니 금융투자소득에 대해서 과세를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게다가 세수도 모자라다면서 왜 부자, 그것도 초부자에 대한 감세에 집착하나 궁금하지만, 이런 논의는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투세는 이미 너무 정치적인 이슈가 되고 말았다. 얼마나 TV에서 떠들어댔으면, 팔순 노모께서 어떤 이상한 세금이 도입되어서 당신의 재산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고 느끼셨을까?
합리적인 논의와 설득의 영역을 넘어서 여당 쪽이면 금투세 반대 즉 폐지, 야당 쪽이면 찬성이라는 기본적인 구도에 더해서, 금투세가 도입되면 국장이 무너지고 코리아디스카운트는 더욱 심화된다는 프레임까지 이미 형성이 되었다. 주식투자로 어찌어찌 모자란 생활비라도 벌어보려는 데, 쓸데없는 세금으로 큰손 투자자들을 다 쫓아내고 개미들에겐 삥이나 뜯으려 한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이를 단시간내 바꿀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선 화끈하게 폐지를–도입이 된 것은 아니니까, 폐지는 아니고, 도입의 취소겠다–하는 게 맞다.(다만, 은근 슬쩍 증권거래세는 기존대로 계속 걷고..)
시간이 지나,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줄어든 세수 탓에 복지예산 등이 줄어들어 서민들이 못 견딜 상황에 다다른 후, 새로운 세원의 발굴이 절실해지면 지금의 찬반논란은 잊은 채 다시 논의를 시작하면 된다. 그때까지 코리아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밸류업도 충분히 되어 개미투자자들이 부자가 되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임방진 대주회계법인 회계사 겸 세무사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감사, 세무조정 업무뿐 아니라 실사, 경영진단, 가치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미국 교환 근무후 귀국해 SOX 404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 및 내부통제 관련 컨설팅 업무를 했다. 2008년부터는 IFRS (국제회계기준) 도입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했으며, 2010년이후 KDB생명보험, ING생명에서 기획관리실장과 재무부문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축적해 온 회계와 세무, 기업구조조정, 경영기획 및 관리, 금융·보험상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무지침서를 출간하고 강의로도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