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8년 차인 며느리는 명절마다 오후가 되어서야 시댁에 왔다. 시어머니는 서운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각자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어머니, 저 왔어요."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일찍 온 며느리를 보며 시어머니는 조금 의아했다.

며느리가 혼자 부엌으로 들어갔다
며느리는 오자마자 앞치마부터 둘렀다. 시어머니가 "아직 할 것도 없는데 좀 쉬어."라고 말했지만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하나씩 꺼냈다. 평소 명절이면 시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고 며느리는 옆에서 조금씩 돕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날은 며느리가 먼저 "어머니는 앉아 계세요. 제가 할게요."라며 시어머니를 거실로 보냈다.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잠시 뒤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간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휴대전화를 세워놓고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 화면에는 몇 년 전 시어머니가 보내준 메시지가 떠 있었다. '갈비찜은 간장 너무 많이 넣으면 짜다.
배 조금 갈아 넣으면 부드러워져.' 그 아래에는 전 부치는 순서와 잡채 만드는 법까지 시어머니가 알려준 내용이 차곡차곡 저장돼 있었다. 며느리는 그 메시지를 하나씩 넘겨보며 서툰 손으로 명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며느리가 일찍 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어머니가 뒤에서 "그걸 왜 혼자 하고 있어?"라고 묻자 며느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어머니 작년 명절 끝나고 손목 아파서 병원 다녀오신 거, 저 나중에 알았어요." 그러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다 해놓으시니까 명절이 원래 이렇게 쉬운 건 줄 알았어요. 이번에는 제가 한번 해보려고요."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며느리 옆에 서서 엉성하게 썰린 채소를 바라봤다. 며느리가 일찍 온 것은 예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이 시어머니의 고생을 조금 덜어주고 싶어서였다.

가족 사이에서는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정작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명절처럼 오랫동안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날에는 작은 행동 하나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수십 마디의 고맙다는 말보다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날 시어머니가 가장 기뻤던 것은 며느리가 음식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힘들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뒤늦게라도 알아봐 줬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족에게 가장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Copyright © 성장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