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학자가 추천하는 '자존감' 높이는 방법 5

1. ‘나'를 마주할 용기 갖기

상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내담자가 자기 자신의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을 마주할 때다.

가난한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너무 창피해서 자신은 반듯한 모범생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한 내담자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집에 가다가 만취해서 갈지자로 걷고 있는 아버지를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열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그 꼬마의 마음처럼 우리는 초라하고 수치스럽고 비도덕적이고 분노하는 자기 자신을 카펫 밑에 쑤셔 넣고 없는 척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내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전에 부정부터 한다.

‘이게 왜 나야? 내가 이런 모습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데 이게 나라니…’

그러나 기억하자! 이제까지 자동 반사적으로 회피하거나, 억압했던 나를 마주하려는 용기를 내지 않으면 근사한 ‘나'가 되려는 모든 노력은 쉽게 찢어지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감춰둔 나 자신을 만나지 않으면 나답지 않은 느낌, 광대로 사는 것 같은 공허한 슬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2.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마음의 지하실에 가둬둔 나를 마주할 용기는 나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대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알아채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를 비춰주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말을 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내 상태를 알아차리기도 하고, 내가 복잡한 마음을 속속들이 털어놓아서 내 상태를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정서적으로 공감해주는 대상이 필요한 내담자에게 내주는 숙제가 있다. 왠지 마음이 끌리는 인형을 하나 사서 그 인형에게 아침저녁으로 기분은 어땠는지 물어보라는 숙제다. 그 물음에 답하면서 자기의 생각, 감정, 욕구를 점점 알게 되고 나를 선명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혼자서는 자기 자신의 정서적 과제에 손대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첫발을 뗄 수 있도록 곁에서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전문 상담실의 문을 두드려보자.


3. 감정은 훌륭한 데이터다

‘나는 _____이다'

위 문장의 빈칸에 들어갈 형용사 세 가지를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라. 당신은 어떤 형용사를 적었는가? 그 단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그리고 이는 크게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면 긍정적 감정으로 대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을 정도로 부정적 감정을 매우 부정적으로 대한다.

부정적 정서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긍정적 정서로 바꾸려는 시도는 자기 자신을 향한 기만일 수 있다. 감정은 중요한 데이터기 때문이다.

감정이 생겼다는 것은 이를 통해 뭔가 알려주려는 데이터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데이터는 해석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카카오톡 메시지에 답을 바로 하지 않아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해보자. 이러한 당신의 상태에 담긴 감정은 무엇인가?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일 가능성이 높다. 친구의 카톡으로 생긴 불안이라는 데이터는 친구와의 관계, 기질, 친구의 특성 등 맥락을 고려해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감정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자기 자신과 상대, 세상을 폭넓게 이해할 기회를 갖게 된다.


4. 자기수용의 최고 단계,
유머를 발휘하라

유머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나도 이러한 유머의 힘을 경험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왔을 때 나에게는 이미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나는 아이를 두 명까지만 낳고 싶었으나 아직 정식 교수로 자리 잡기도 전인 30대 중반에 셋째를 낳게 되었다.

축하할 일이었지만 적어도 당시의 나에게는 진심으로 기뻐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제 내 경력을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우울했다.

그때 연세가 지긋하던 미국 지도교수가 나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극단적 처방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아들을 좋아하는데 너는 아들 셋 낳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중에 한 녀석을 팔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 교수 특유의 유머 감각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아들 하나를 팔라니, 말도 안 되는 난센스 제안을 받고 한참 킥킥 웃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우울함이 사라진 것 같았다.

이렇듯 자기 자신의 실수나 약한 부분을 유머로 승화시키면 그 허점이 그렇게 심각하고 대단한 치명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머가 있으면 못난 자기를 탓하거나 숨기려고 노력하는 대신, 웃어넘기면서 ‘그래, 어쩌겠어' 하며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생긴다.

“그래, 나는 아들 셋이다. 어쩔래!!! 그래도 일하고 싶은걸!”

5. 때로는 자기 자신과의 거리가 필요하다

증상과 문제에 매몰되어 있으면 문제가 없는 나 자신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면 우울한 사람은 ‘우울증=나'라는 등식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우울하지 않은 나'는 자기 자신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울하지 않은 경험은 나의 경험에서 모두 지워지고 오로지 우울한 경험만이 마음에 입력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을 모두 이 명제로 걸러서 우울하지 않은 경험은 머릿속에서 다 빠져나가게 된다.

이럴 때에는 ‘경험하는 자기'와 분리된 ‘관찰하는 자기'가 목소리를 내면 된다. 예를 들어 우울한 사람은 “나는 우울해”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울해하는 자신을 관찰하는 나는 “내가 우울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감정에 압도되어 일어나는 과장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해석함으로써 보다 통합적으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인생이 힘들다면,
<나를 읽는 인문학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