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프리우스 배터리가 신형 캠리에 다시 쓰인다

전기차 생산 업체들이 배터리 재활용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지금, 토요타가 배터리 순환 가치 사슬을 위한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업체들이 갖고 있는 고민 중 가장 큰 고민에 해당된다. 우선 당면 과제만 해도 효율을 높이는 것과 성능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자동차 회사만 고민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차전지 제조사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배터리 재활용 문제다. 현재 다양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배터리 재활용 솔루션 개발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가령 ESS로 전환해 전기 공급 그리드에 폐배터리를 스토리지로 포함시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완전히 파쇄한 후 화학적 방법으로 니켈, 코발트, 망간, 리튬 등 희귀 원소들만 별도로 추출하는 방법이다.

물론 경제적 분석으로 따지면 새로 채굴하는 편이 더 저렴하지만 100% 채굴된 원료로만 제작할 경우  탄소 중립이라는 허들을 넘을 수 없다. 그래서 후자를 선택하는 회사들이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아직까지 본격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현세대 전기차 배터리들이 폐기 시점을 맞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전기차 배터리는 관리하기에 따라 놀라울 정도의 수명을 보여주기도 한다. 국내에도 이런 사례들이 종종 보고 되는데 가령 르노삼성이 제작한 SM3 ZE이 경우 거의 300,000km를 주행하고도 배터리 SOH가 80% 이상을 보였다는 조사 보고도 있다. (SM3 ZE는 택시로 운행되는 사례가 많았다.) 따라서 배터리 재활용이 본격적인 사업화 궤도에 올라서려면 적어도 충분한 배터리 공급량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과제를 누구보다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토요타다. 살짝 의아할 수도 있다. 토요타의 수장,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전기차에 회의적인 입장을 자주 내비쳤고, 따라서 지금도 토요타의 전기차 라인업은 빈약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는 걸까?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토요타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배터리 구동식 자동차를 공급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하이브리드를 통해서 말이다. 토요타가 본격적으로 하이브리드를 공급한 것은 2001년으로 22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백만 대 이상은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토요타 하이브리드 왕국의 시작을 알린 건 프리우스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22년 전 판매된 프리우스 중 꽤 많은 숫자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몇 가지 재미있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현재까지 가장 많은 마일리지를 기록한 프리우스는 오스트리아에서 택시로 운행되고 있는 프리우스 2세대로 무려 1,000,000km를 주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놀라운 건 지금도 이 택시는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배터리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극강의 내구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을 완전히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자동차의 운명. 현재 상당수의 1~2세대 프리우스와 더불어 캠리 하이브리드, RAV4 하이브리드도 함께 폐차장으로 향하고 있다. 달리 이야기하면 토요타 입장에서는 본격적인 사업화가 가능한 수준의 원료들이 본격적으로 폐차장에 쏟아진다는 뜻이다. 비록 BEV에 탑재되는 배터리보다 크기는 작지만 숫자만 놓고 본다면 압도적인 물량이 재활용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도요타는 미국 네바다에 위치한 배터리 재활용 업체와 협력 관계를 체결했다. 이들은 1~2세대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전문적으로 분해하고 거기서 쓸모 있는 원료를 채굴한다. 이미 본격적인 공장 가동에 들어간 이들은 향후 몇 년 동안 거의 500만 개의 배터리를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배터리 원료는 거의 100GWh 급에 달하며 음극재를 시작으로, 니켈, 리튬, 코발트와 함께 구리와 같은 양극재 등이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원료들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토요타의 다른 하이브리드 혹은 전기차 배터리 원료로 쓰일 전망이다. 이점은 향후 토요타가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을 때 굉장히 큰 이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제조사들이 아프리카부터 중국,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오지를 돌아다니며 배터리 원료 공급 계약을 맺는 동안 토요타는 자신들이 이미 판매한 하이브리드들이 수명이 다해 폐차장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이 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배터리 원료를 대량으로 수급 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탄소세까지 함께 적용할 경우 하이브리드로 인해 도요타가 얻게 되는 가치는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전기차 강세가 한풀 꺾여도 상관없다. 어차피 토요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하이브리드를 판매했고 지금도 생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으나) 전기차에 미래가 없다면 지금처럼 하이브리드용 배터리 제조로 원료 사용처를 전환하면 그만이다. 현시점에서 어쩌면 그간 전기차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던 토요타가 22년 전 첫 번째 프리우스의 성공 덕분에 전기차 시대를 가장 풍요롭게 준비한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토뷰 | 박종제 에디터 (news@autovie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