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알고 마시자, 와인 트렌드 코드

뜨거웠던 여름이 저물고, 와인이 더 맛있어지는 계절로 접어든 지금.
와인 애호가라면 꼭 알아야 할 최신 와인 트렌드를 모았다.
ⓒunsplash

와인, 이제 마셔보고 사세요
2021년과 2022년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 와인 시장은 술을 덜 마시는 소‘ 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경향과 불안정한 경제 상황 때문에 현재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하지만 글로벌 주류 리서치 회사 IWSR(International Wine and Spirits Research)은 한국 와인 시장이 아직 발전 초기 단계에 있으며,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2024년 상반기까지 한국 와인 시장에는 재고가 많았다. 수입사와 와인 숍은 재고 물량을 정리하기 위해 적극적인 판촉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올해 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와인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만 진행하던 와인 시음회가 와인 애호가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좋은 와인을 고르기 위해서는 와인을 많이 마셔봐야 한다. 시음회에서는 평소 맛보기 힘든 고가 와인을 직접 맛본 뒤 입맛에 맞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하반기 개최 예정인 와인 시음회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자주 이용하는 와인 매장이나 수입사 SNS를 통해 시음회 안내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수지

와인 업트레이딩을 위한 핫 플레이스
업트레이딩이란 소비자가 기존에 구매하던 제품보다 더 높은 품질이나 가격의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와인과 같은 고급 소비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렌드로, 소비자들이 더 나은 품질이나 브랜드 가치를 추구하면서 나타난다.

이를 반영하듯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하우스 오브 신세계 와인 매장이 문을 열었다. 지난 3~4년 간 준비해 문을 연 이곳에는 와인 교과서에 실리는 유명하고 희귀한 프리미엄 와인 최대 8000여 종을 구비해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와인 목록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늘한 기후에서 생산되는 와인처럼 테마가 있는 와인이나, 루시옹이나 쥐라 와인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와인 산지에서 스타 생산자가 만든 와인, 시음 적기에 들어간 숙성된 와인 등 소비자 편의를 배려한 매장 구성이 흥미롭다.

와인 애호가라면 맞춤형 시음회나 고급 와인 저장, 와인 교육 등 하우스 오브 신세계에서 제공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와인을 구매하고 싶다면 고가 와인 사이에 숨어 있는 하우스 오브 신세계 독점 판매 와인을 찾아볼 것. 엄청난 지식과 시음 경험을 갖춘 바이어가 발품을 팔아 구한 와인을 즐길 수 있다.

© zuccardivalledeuco

새로운 프리미엄 와인의 등장
한국에서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와인은 오랜 세월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에는 한국 와인 애호가의 취향이 빠르게 고급화되면서 상대적으로 프리미엄 와인 이미지가 약한 와인 생산국들이 적극 홍보에 나서고 있다.

칠레는 제임스 서클링 같은 유명 와인 평론가로부터 92점 이상을 받은 와인, 단일 포도밭 와인, 와이너리별 아이콘 와인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말벡으로 유명하다. 보통 말벡은 검은 과실 풍미가 짙은 소박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카테나 자파타’나 ‘주카르디’ 같은 아르헨티나 최정상 와이너리들은 해발고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 부르고뉴식으로 만든 단일 포도밭 말벡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프리미엄 말벡은 진한 과실과 오크 중심이 아니라 부르고뉴 피노 누아나 피에몬테 단일 포도밭 바롤로처럼 지역 특성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와인이 지닌 정교함과 섬세함, 복합성이 대단한 제품이다.

호주 프리미엄 와인은 더욱 흥미롭다. 호주 와인 하면 대부분 바로사 시라즈를 떠올리지만, 지금은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한 샤르도네가 한국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 호평받고 있다. 야라 밸리, 모닝턴 페닌슐라, 애들레이드 힐스 샤르도네는 완성도가 남다르다. 호주는 1832년에 옮겨 심은 고목 포도나무, 올드 바인(Old Vine)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라즈, 그르나슈, 샤르도네 고목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호주다. 올드 바인으로 빚은 와인은 뛰어난 복합성, 장기 숙성력, 균형감을 지녀 점점 더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unsplash

트렌드세터는 샴페인을 마신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인 샴페인. 팬데믹 초기 잠시 주춤했던 샴페인 시장은 성공적으로 반등해 현재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러 제품 중 샴페인 하우스가 내놓는 최고급 라인을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하우스별로 다르지만 보통 전체 생산량 중 2% 정도로 한정 생산된다. 한 번쯤 들어봤을 돔 페리뇽은 모엣샹동, 크리스털은 루이 로드레, 라 그랑 아네는 볼랭저가 만든 프레스티지 퀴베다. 이런 샴페인은 품질이 좋은 밭과 구획의 포도만 썼다거나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숙성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고, 독특한 디자인 병과 패키징을 쓴다.

한국은 전체 샴페인 시장은 작지만, 프레스티지 샴페인 소비 비율이 높아 샴페인 협회를 놀라게 하는 나라다. 폭발적인 샴페인 인기에 힘입어 각 생산지에서 주목받는 생산자의 샴페인을 소개하는 이벤트도 점차 늘고 있다. 하반기는 특히 연말연시를 겨냥해 신규 샴페인 소개가 조금 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와인 애호가는 와인에 붙는 세금이 적은 일본에서 샴페인이나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거나 구매해 오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한동안 지속된 일본 여행 유행 여파로 가격 조건이 좋은 제품은 물량 부족 사태를 빚고 있다고 한다. 하반기 모임에 근사하게 와인을 곁들이고 싶다면, 다가오는 와인 행사에서 샴페인만큼은 가능한 한 확보해 둘 것을 권한다.

© cava.do

버블 버블 팝 팝, 스파클링 와인 강세
한국은 물론 다른 국가에서도 1년 내내 인기있는 와인이 있다. 바로 스파클링와인이다. 스파클링와인은 최근 수요 증가로 가격이 오른 샴페인을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맛이 훌륭하다.

요즘 와인 애호가들이 주목하는 스파클링와인으로는 크레망, 카바, 프로세코, 프란치아코르타 등이 있다. 크레망은 프랑스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와인을 일컫는다. 이전까지는 보르도, 부르고뉴에서 만든 크레망이 주를 이뤘는데 최근에는 알자스, 쥐라, 사부아 지역 크레망도 소개되고 있다. 크레망 뒤 쥐라와 크레망 드 사부아는 다른 크레망에 비해 가격이 살짝 높지만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스페인에서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카바는 뛰어난 가성비가 매력이다. 스페인 와인 법에 속한 카바는 대부분 카탈루냐에 있는 페네데스에서 생산되며, 그 외 스페인 9개 와인 산지에서도 생산한다. 효모와 함께 얼마나 숙성했는지가 중요한데 최소 9개월, 18개월, 30개월, 36개월로 종류를 나눈다. 최고급 제품은 강렬한 풍미에 탁월한 질감을 갖춰 모임이나 선물용으로 적합하다.

프란치아코르타는 4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샴페인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스파클링와인이다. 이탈리아 북동부에서 생산되는 프로세코도 그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프로세코는 2023년 기준 연간 6억 병을 생산하는 프로세코 DOC와 1억 병을 생산하는 프로세코 DOCG로 나누는데, 샴페인과 달리 기압이 3기압으로 낮아 즐기기 편안하다.

ⓒ정수지

와인 춘추전국시대
이제 한국에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뿐 아니라 그리스, 조지아, 헝가리, 몰도바,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와인 등 이색적인 와인도 찾아 즐길 수 있다. 일부 국가는 한국에서 자국 와인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와인 애호가가 직접 와인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스 와인은 수많은 토착 품종을 자랑하며, 국제 품종 와인도 아주 높은 수준으로 만든다. 그리스 음식엔 우리 음식과 비슷한 것이 많아 와인 페어링도 수월하다.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리스 와인은 대부분 프리미엄급으로 실패 확률이 적다. 다가오는 11월에는 세계적인 디저트 와인 빈산토를 비롯해 맛 좋은 신상품 소개가 예정돼 있다.

체코 와인도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체코는 마치 우리가 김장을 하듯 집집마다 와인을 담글 정도로 와인 문화의 뿌리가 깊어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체코 와인은 산도가 높아 청량한 맛을 즐기는 소비자에게 인기다.

이 외에도 8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 요람’ 조지아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국 몰도바의 와인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와인을 한자리에서 맛보고 싶다면 11월에 열리는 대전국제와인엑스포를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앞서 언급한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와인을 즐길 수 있다.

© unsplash

도수 있는 와인이 부담스러울 땐, 제로 와인
몸 만들기, 육각형 인간, 혈당 스파이크 등 건강, 웰빙, 저속 노화에 관심 있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저도수 와인과 무알코올 와인이 또 다른 와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일반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12~15%인 반면, 저도수 와인은 5~11%다. 저도수 와인은 발효 과정을 조절하거나 알코올 발효 후 알코올을 제거하는 기술로 만든다. 무알코올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0.5% 이하인 와인을 말한다. 알코올을 제거할수록 풍미가 줄긴 하지만 기술 발전 덕분에 요즘엔 와인의 풍미가 잘 유지된다. 이런 와인은 다양한 이유로 알코올 소비를 피하고자 하는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인데, 소비량이 늘면서 저도수·무알코올 와인 수입량도 부쩍 늘었다.

올해 하반기 와인 시장은 전통적인 선택지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가 소개되며 더욱 다채로워질 전망이다. 와인 애호가라면 이런 변화에 주목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와인 경험을 기대해 보길 바란다. 특히 와인 시음회나 할인 행사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탐구하며 새로운 와인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 하반기에는 더 많은 와인과 만나보길 희망한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9월호
글 정수지 (와인21닷컴 와인 전문 기자·WSA와인아카데미 대표 강사)


Copyright © 저작권자 © 덴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