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와 함께 사상 첫 민간 우주 유영 도전하는 억만장자

미국의 억만장자 재러드 아이잭먼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을 타고 우주로 향했다.

‘폴라리스 던’이라는 이름의 이 미션은 미국 전자결제업체 ‘시프트4’의 설립자인 아이잭먼 CEO가 자금을 지원하는 3가지 미션 중 첫 번째 미션으로, 최초로 민간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우주 유영이 될 전망이다.

아이잭먼 CEO는 사령관으로서 은퇴한 공군 조종사이자 절친한 친구인 스콧 ‘키드’ 포티, 스페이스X 엔지니어인 안나 메논과 사라 길리스와 함께 우주로 향한다.

이들이 탄 ‘레질리언스’라는 이름의 우주선은 최종적으로 고도 1400km까지 올라가는 궤도에 진입할 예정이다. 197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프로그램이 종료된 이후 지구에서 이보다 더 멀리 간 인간은 없었다.

고도 비교: 국제우주정거장(고도 400km), 허블 우주 망원경(515km), ‘폴라리스 던’의 우주 유영(700km), 밴앨런 방사선대(1000km), ‘폴라리스 던’의 최종 목표 고도(1400km)

이들 우주비행사는 방사능 수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밴 앨런대’도 통과하게 되지만 이때 우주선 안에 있으며, 새롭게 개선된 우주복을 입고 있을 예정이다.

밴 앨런대를 몇 차례 통과할 경우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3개월간 지낼 때와 비슷한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지만, 이는 허용 가능한 한도 이내이다. 우주비행사들은 비교적 짧지만 안전한 범위에서의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자 한다.

둘째 날, 우주비행사들은 최대 고도인 고도 1400km까지 끌어올린 뒤 드래곤 우주선과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들 간의 레이저 통신 시스템 테스트 등 실험 최대 40개를 수행하게 된다.

모든 게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면 임무 3일째, 아이잭먼 CEO와 길리스는 사상 최초의 민간 자금 지원 우주 유영을 시도할 예정이다.

우주 유영은 상공 700km로 내려온 이후 2시간 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우주비행사들은 사용자가 우주선 내부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스페이스X의 ‘선내활동(IVA)’ 우주복을 업그레이드해 우주선 외부 활동도 가능하게 한 ‘선외활동(EVA)’ 우주복을 입고 그 성능을 테스트하게 된다.

EVA 우주복에는 헬멧에 알림판 디스플레이가 장착돼 있어 착용자에게 우주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울러 EVA 우주복은 우주선 발사 및 착륙 시에도 착용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고 유연해서 별도의 IVA 슈트가 필요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우주유영을 위한 훈련 중 길리스는 이 우주복은 사람들을 다른 세계로 보내겠다는 스페이스X의 계획에서 매우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오직 국가만이 우주유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이스X는 화성 거주에 성공해 다행성 거주의 야망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딘가 시작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주유영과 미래의 우주복 디자인을 더욱 개선할 수 있도록 EVA를 테스트하는 것이 그 첫 번째 단계입니다.”

아이잭먼 CEO도 같은 생각이다. “스페이스X는 언젠가 다른 행성에서의 거주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EVA 우주복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우주복을 맞춤 제작 의복이 아닌, 다양한 체형의 상업 우주비행사들에게 적용되도록 해 유인 우주 비행이 더욱더 보편화되는 시대에서 비용 절감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목표다.

(왼쪽부터) ‘폴라리스 던’에 참여하는 안나 메논, 스콧 포티, 억만장자 재러드 아이잭먼, 사라 길리스

이번 우주 유영의 독특한 점은 레질리언스호에는 진공 상태인 외부와 우주선 내부 사이 밀폐된 공간을 뜻하는 ‘에어록’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에어록이 있어 우주비행사가 들어오고 나올 때 압력을 낮추지만, 레질리언스호의 경우 우주선 전체가 압력을 낮추는 방식이기에 우주 유영을 하지 않는 우주 비행사는 내부에서도 우주복을 완전히 갖춰 입고 있어야 한다.

해당 우주선은 진공 상태를 견딜 수 있도록 개조됐다. 질소 및 산소 탱크가 추가로 설치됐으며, 우주 유영에 나가는 건 2명뿐이지만 우주비행사 4명 모두 EVA 우주복을 착용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임무를 통해 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이 우주의 진공 상태에서 비행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아울러 우주비행사들은 감압증 및 우주 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현상인 ‘우주비행 관련 신경안구증후군’ 관련 테스트를 수행할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렇듯 밴 앨런대의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실험 및 우주 유영 시도는 앞으로 민간 차원에서 달이나 화성으로 향하는 고고도 임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우주비행사들은 새로운 ‘선외활동(EVA)’ 우주복을 테스트할 예정이다

한편 폴라리스 던의 우주비행사들은 초보 비행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잭먼 CEO만 단 한 차례 우주에 다녀왔을 뿐, 나머지 3명은 한 번도 우주로 나가본 적 없다.

영국 크랜필드 대학교의 로켓 추진 전문가인 아담 베이커 박사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들은 야심 찬 목표를 많이 세웠고, 이들의 우주비행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들은 이번 임무를 위해 수천 시간 동안 시뮬레이션 훈련을 거쳤습니다. 즉 위험성을 완화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임무가 성공하면 국가 주도의 우주 기관보다 민간 분야에서 더 많은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등, 더 대규모로 저렴한 민간 부문 우주 임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베이커 박사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이다.

“지금까지 기록을 살펴보면, 민간 부문에서 엄청난 자금을 지출하고, 약간씩 홍보도 하기는 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주로 갔다가 돌아온 500여 명 외에 추가로 우주에 다녀온 사람은 10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우주에서 아주 짧게 머문 이들이 다수입니다.”

“우주 비행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기에 정말 엄청난 부자가 아닌 그럭저럭 부유한 일반인들도 곧 우주로 날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여러분도 곧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다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레질리언스호에는 에어록이 없어 우주의 진공 상태를 견딜 수 있도록 개조됐다

일각에서는 억만장자들이 돈을 내고 우주 비행에 나서는 것에 대해 달갑지 않게 바라보기도 하며, 여행비를 지불하는 사람이 사령관인 것에 대해 눈썹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영국 더 오픈 대학의 우주과학자이자 주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우주선 프로젝트에 탑재하는 과학 장비를 개발해온 시메온 바버 박사는 이 같은 임무를 그저 부자들의 허영심을 충족하는 프로젝트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바버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잭먼은 실제로 승무원 중 가장 경험이 많은 우주비행사로, 스페이스X의 또 다른 자체 자금 지원 임무를 통해 우주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에도 사령관직을 맡았다”면서 “임무의 맥락을 살펴보면 그가 사령관인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더 넓게 보면, 이 우주선 탑승권 판매 수익금은 지구에 남아 있게 됩니다. 이 돈으로 자재와 서비스를 구입하고, 급여를 지급하고, 이는 결국 세금으로도 흘러가죠. 이번 임무가 모금할 자선기금은 말할 것도 없고요.”

바버 박사는 우주 업계에 일하는 많은 이들이 부유층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그들이 행성 밖, 언젠가 달이나 화성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한다면 그 과정에서 과학 실험의 기회도 생겨날 것입니다. 아울러 우주를 탐험할 이유가 다양해질수록 우주 비행 프로그램 또한 더욱 탄력적으로 운영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