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산실 창원 원동무역 사옥…시민들 “97년 전 모습 되찾자”
최초의 주식회사…독립운동단체 후원
1928년 4월 16일 건립…97년 역사
당시 최고 번화가 모토마치에 완공

“옛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이면서, 항일 독립운동 유적인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 복원에 창원 시민이 앞장서자.”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91-1번지에 있는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을 지키고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창원(옛 마산) 시민들이 나섰다.
개발 바람에 밀려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이미 많이 사라졌는데, 항일운동 사적지로 지정된 유적까지 잃을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된 덕택이다. 마산기독교청년회(YMCA)·창원시건축사회·마산역사문화유산보전회가 지난 17일 ‘원동무역 사옥 보존과 활용방안 토론회’를 여는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을 보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동무역주식회사는 경남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마산어시장의 객주였던 옥기환·명도석·김철두 등 3명이 1919년 설립한 주식회사이다. 독립을 갈망하는 만세운동의 열기가 한국인들 가슴속에서 이글이글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이들은 마산어시장에서 원동상회를 운영하던 옥기환 객주를 중심으로 모여서, 1919년 9월 자본금 50만엔의 주식회사 설립을 발기하고, 같은 해 11월15일 창립총회를 열어 옥기환을 초대 사장으로 선출했다. 옛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설립 등기는 다음해 5월24일 마무리됐다.
발기인 3명은 모두 마산에서 손꼽히는 부자이면서, 비밀결사조직 조선국권회복단에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단체 후원인들이었다. 특히 옥기환 초대 사장은 1907년 한국 최초의 노동야학인 마산노동야학교를 설립하고, 배달유치원(현 대자유치원)·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창신학교(현 창신중·고)·마산공립상업학교(현 용마고) 설립에 기여하는 등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마산노동야학교는 이름에 ‘노동’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자 마산중앙야학교로 이름을 바꿨고, 훗날 마산중앙중과 마산공고로 발전했다. 마산에 살던 한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옥기환 선생은 해방 이후 초대 마산시장(당시 마산부윤)을 역임했다.
명도석 선생은 1919년 마산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신간회 마산 회장을 지냈으며,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마산위원장을 역임했다. 사망 이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마산 육호광장~자유무역지역 도로는 명도석 선생의 호를 따서 ‘허당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김철두 선생은 마산지역 근대교육의 요람이자 독립운동가의 산실이었던 창신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원동무역㈜과 독립운동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원동무역㈜은 1942년까지 운영됐다.

원동무역㈜은 1928년 마산에서 최고 번화가였던 모토마치(元町)에 436.4㎡의 땅을 마련한 뒤 총공사비 2만3천엔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의 사옥을 세웠다. 1927년 4월 착공해, 1928년 4월16일 완공했다. 16일이 완공 97주년이다.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세련되고 격조 높은 외관을 갖췄다. 이 때문에 원동무역㈜ 사옥은 당시 마산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줬다. 이 건물은 해방 직후 마산교육청으로 사용됐고, 6·25전쟁 동안에는 마산에 주둔한 미 육군 제25사단 인사처로 이용됐다. 독립기념관은 ‘원동무역주식회사 터’를 국내항일운동 사적지로 지정했다.
원동무역㈜ 사옥은 지금도 그대로 서 있다. 지난 17~20일 네차례에 걸쳐 현장을 방문해, 건물 안팎을 꼼꼼히 살펴봤다.
건물 앞에는 “이곳은 1919년 9월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무역회사였던 원동무역주식회사가 있던 자리이다”라고 적힌 ‘원동무역주식회사 터’ 표지석이 서 있었다. 표지석 옆에는 황금색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는데, 설립일자를 ‘1928년 5월’로 틀리게 안내하고 있었다.
건물은 1953년 옥기환 선생 사망 이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학원·식당·술집·노래방 등 다양한 상업시설로 사용된 탓에 심하게 훼손됐다. 또 1970년대 옥상에 3층을 올리고, 건물 뒤쪽을 달아내어서 전체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건물 바깥쪽도 페인트를 칠해서 원래 색깔이 사라진 상태였다.

2층은 건물 입구 옆 바깥쪽에서 올라가게 되어 있었고, 지하 1층은 건물 뒤 바깥쪽에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1층 안에서 지하나 2층으로 갈 방법은 없었다. 따라서 건물은 한채라도, 지하 1층, 지상 1층, 지상 2층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였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이런 형태였는지, 개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아무개(77)씨가 1986년 건물을 사서 40년째 소유하고 있으며, 20여년 전부터 강씨의 동생 부부가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건물을 샀을 때부터 이런 형태였다”고 말했다.
지하 1층은 20여년 전부터 방치됐고, 지상 2·3층은 10년 전 노래방이 나간 이후 계속 비어 있다. 건물 주인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지하 1층과 2층 입구를 막아놓은 상태였다. 2층과 3층에서 영업하던 노래방은 소음이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바깥 벽면 전체에 합판을 붙였는데, 2년 전 건물 주인이 합판을 제거하자 숨어 있던 건물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원동무역㈜ 사옥의 복원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모아서 경남도지사·창원시장 후보들에게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 보존을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행정기관보다 시민이 주도적으로 보존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건물을 인수해서 확보하는 것이다. 건물 주인이 건물을 헐거나 개조해도 막을 방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건물 원형이 많이 훼손됐지만, 전문가들은 “복원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진단한다.
허정도 전 경상남도 총괄건축가는 “원동무역주식회사 사옥은 2022년 경상남도 ‘건축자산진흥시행계획’에서 가장 높은 에이(A) 등급을 받았다. 3층을 포함해 증축된 부분을 철거하고, 바깥쪽 페인트를 지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물 내부에도 외장재를 걷어내면 원래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며 “문화자산 복원은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다. 경남도·경남교육청·창원시·창원상공회의소 등이 함께 복원해서, 창원근대경제사전시관·원동무역기념관·시민문화사랑방 등으로 활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종열 창원시 공공건축가도 “훼손 정도를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 정도면 원형이 잘 보존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증축 부분 철거, 구조 보강, 추가된 외장 제거, 장식등·창문 복원 등 절차를 거치면 원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건물 매입 이후 복원 비용은 10억원가량이면 될 것으로 본다”며 “후손들에게 흐르는 시간 속 공간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원동무역을 설립했던 분들의 마음을 느낄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주용 국립창원대 박물관 학예실장은 “원동무역 사옥은 건축적 가치와 더불어 독립운동, 야학, 민족자본, 산업사, 도시발달사 등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보존·활용을 위해서는 시민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시민과 공유하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단순한 유물이 아닌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지속적 발전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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