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의 초록빛 그늘
몇 달 전,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이 서울 은평구에서 성동구로 이사했다. 회사 가까이에 살다가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면서 새롭게 관찰하게 된 대상이 있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 출구에서 5분 정도 거리에 회사가 있는데, 평일에는 출퇴근 인파가 오가고, 주말에는 성수동이나 서울숲에 놀러 온 시민들로 붐빈다. 많은 이들이 오가는 지하철역이 갑자기 흥미로운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5월에 접어들면서 뚝섬역은 창밖 풍경과 역 안의 인테리어가 톤온톤의 조화를 이루게 됐다. 연초록 분필 색깔의 매끈한 벽면이 창문 밖의 푸릇하고 진한 초록 잎과 어우러진다. 사람이 덜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사진을 찍어두고 문득 생각이 날 때 한 장씩 넘겨보면 재미있다. 게다가 밤에 지하철 플랫폼에서 카메라를 켜면 그 분위기가 낮과는 사뭇 다르다. 평범한 지하철역이 빛바랜 초록빛과 노란 조명 덕분에 환상적으로 보인다.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와 <중경삼림> 필름 속으로 들어온 듯 들뜨기까지 한다.




성수동에 도착한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인증 사진을 찍듯 뚝섬역 플랫폼에도 꽤 좋은 포토 스폿이 있다. 7, 8번 출구 방면의 플랫폼 맨 끝으로 이동하면 오래된 창문 사이로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신호등에 맞춰 멈추고 움직이는 사람들과 성수역, 한양대역으로 이어지는 지상 철로가 보이고, 길을 걸을 땐 몰랐던 가로수의 꼭대기 부분도 보인다. 스크린도어 위쪽을 보면 지붕(?)에 매달린 역 안내 표지판도 볼 수 있다. 유서 깊은 ‘지하철체’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세련되게 느껴진다.
얼마 전 긴 장마로 뚝섬역 플랫폼 곳곳에는 수건과 양동이가 놓였다.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눈이 오는 겨울엔 또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지하철을 기다리는 3⁓5분 정도의 시간을 풍성하게 해주는 여름철 뚝섬역의 초록빛 그늘이 구경할수록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