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점진적 계엄령 [세계의 창]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회를 배제하고, 헌법을 위반했으며,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파괴했다. 행정명령을 통해 전례 없는 대통령 권한도 휘두르고 있다. 법원은 그의 여러 정책을 차단했지만, 현재 상원에 계류 중인 예산 법안에는 법원 판결 집행을 훨씬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 수천쪽 분량 속에 숨어 있다. 이미 대법원은 대통령의 거의 모든 행위가 형사 면책 대상이라는 트럼프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권한의 한계를 계속해서 시험 중인 트럼프는 이제 군대에 대한 권한도 시험 중이다. 1792년 제정된 반란법을 이용해 주방위군과 해병대를 로스앤젤레스로 파견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다. 트럼프의 이런 행동은 위헌이다. 대통령은 군대를 치안 활동에 동원할 수 없다.
트럼프는 미국 전역 도시에 주방위군을 파견해 시위를 진압하겠다고 공언했다. 폭력·비폭력 시위 구분도 하지 않는다. 이민 문제를 구실 삼아 공공 기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억압하려 한다. 느리게, 점진적으로 실행에 옮겨지는 계엄령인 셈이다.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독재적 움직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 워싱턴디시(D.C.)에서 벌어진 군사 퍼레이드에 맞춰 전국 곳곳에서 수천건의 ‘노 킹스’(트럼프는 왕이 아니다) 시위가 열렸다. 이 시위는 특정 정당 지지자들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많은 무당파 유권자들과 몇몇 공화당원들조차 트럼프의 계엄령 시도에 경악하고 있다.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이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한 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비판자로 떠올랐다. 그는 대통령이 자신의 승인 없이 주방위군을 파견한 것을 단순한 헌법 위반이 아닌, 트럼프가 절대 권력을 장악하려는 순간으로 정확히 진단했다. “법의 지배는 점점 ‘트럼프의 지배’로 대체되고 있다”고 뉴섬 주지사는 최근 연설에서 말했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즉각 저항했다. 그들은 몇시간 만에 계엄령을 철회시켰고, 윤 대통령은 이후 탄핵당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인용했고, 새 선거가 치러졌다. 계엄령에 맞서 용기 있게 싸운 국회의원 중 한명인 이재명은 큰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 상황은 정반대다. 트럼프는 100만명을 추방하고 정부 서비스를 삭감하려는 자신의 조치들이 대규모 시위를 촉발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억누를 수 없다면 비장의 카드를 꺼낼 것이다. 계엄령이다.
지금 트럼프 저항 운동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시위에 나서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위를 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권력을 계속 확대해나갈 것이다.
트럼프는 강인함을 내세운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권력에 확신이 있는 독재자라면, 자신의 생일에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진 않는다. 트럼프도 알고 있다. 미국인 대다수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며, 법원은 계속해서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며, 대학교·언론·할리우드 같은 주요 사회 제도들은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사실상 자신이 가진 (몇 안 되는) 신념조차 실천할 용기도 없는, 약한 사람이다. 그의 최신 별명은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권력 과시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강함의 표현이 아니라 불안의 방증이다. 계엄령 선포의 위험이 있더라도 트럼프의 행동에 대한 해답은 오직 시위뿐이다. 시위는 그를 압박해 결국 그가 지금껏 암묵적으로 해온 말을 공개적으로 하게 만들 것이다. 자신이 미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독재자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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