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습지에서 무리를 지어 자라는 '쉽싸리'

우리나라 들과 산에는 각양각색의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자생한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갸웃해지는 풀도 적지 않다. '깽깽이풀', '속썩은풀', '아주까리'처럼 특이한 이름을 가진 식물들은 오랜 세월 민간에서 전해진 토박이 식물들이다.
그중 일부는 그 이름이 낯설다 못해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떤 건 비속어로 오해받기도 한다. 생김새나 효능에서 따온 것이라지만, 실제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조금 민망할 정도인 것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풀 역시 그렇다. '쉽싸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나물은 발음부터가 어딘가 거칠고 익숙하지 않지만, 먹어보면 살짝 쌉싸름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진다.
이름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여름철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쉽싸리에 대해 알아본다.
습지에 무리지어 자라는 '쉽싸리'

굼비나물, 지삼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쉽싸리는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아시아 동부나 북아메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식물은 산 속 습지에서 무리를 지어 자란다. 바로 선 줄기는 높이 약 1m까지 자라며, 흰털이 나있고, 단면은 사각형이다.
잎은 마주 보며 나고, 잎자루는 없다. 잎몸은 좁고 긴 모양을 하고 있으며, 길이는 4~15cm, 폭은 1.5~4cm다. 양쪽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톱니가 있으며, 양면에 털이 없거나 잎맥 위에 약간 있다.
7~8월에는 흰색 꽃이 핀다. 잎겨드랑이에 모여 달리는 이 꽃은 꽃받침은 길이 3mm쯤으로 가운데까지 5갈래로 갈라지고, 샘털이 있다. 꽃부리는 통 형태의 입술 모양이며, 아랫입술은 3개로 갈라진다. 타원형의 열매는 8월쯤에 익는다. 끝 부분이 부푼 땅속줄기는 굵고 흰색이며, 이것이 옆으로 뻗으며 끝부분에서 새순이 돋는다.
친척뻘의 식물로는 개쉽싸리와 애기쉽싸리가 있다. 개쉽싸리는 잎 가장자리가 둔한 톱니 모양이며, 높이는 30cm 정도로 쉽싸리에 훨씬 작다. 애기쉽싸리는 개쉽싸리보다는 큰 70cm 정도지만 줄기가 지름 3mm 정도로 매우 가늘다.
쉽싸리라는 이름의 어원은 두 가지로 추측된다. 하나는 쉽싸리가 잘 자라는 환경이 습지라는 것에서 연못을 뜻하는 한자 '소(沼)'와 순우리말 '사리'가 합쳐져 소사리가 됐고, 이것이 쇡살이, 쇡싸리라는 발음을 거쳐 쉽싸리가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쉽싸리가 잘 자라는 환경이 소에게 꼴을 먹이는 방목 공간과 겹친다는 것에서 따왔다는 설이다. 소가 많은 곳에 사리 모양으로 무리지어 자란다고 해서 소사리라고 이름 붙은 것이, 위와 같은 발음 변화를 통해 쉽싸리가 됐다는 가설이다.
여름철 입맛을 되찾아 주는 쉽싸리 먹는 법

쉽싸리는 간단한 손질을 거치면 훌륭한 식재료가 된다. 끓는 물에 30초~1분 정도 데친 뒤 찬물에 헹궈주면 식감과 색은 그대로인데 아린 맛만 빠져 먹기 좋아진다.
맛은 살짝 매우면서도 쌉싸름하며, 은은한 단맛이 돌아 입안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더해 쉽싸리의 향긋한 내음은 여름철 잃어버리기 쉬운 입맛을 되찾아 주는 역할을 한다.
쉽싸리는 다른 나물과 섞어 무치면 맛있는 반찬이 된다. 특히 쉽싸리 무침을 만들 때 양념으로 된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으면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일품이다. 또한 데친 쉽싸리를 밥 위에 얹은 뒤, 고추장과 함께 비벼주면 매콤하면서도 향긋한 나물 비빔밥이 된다.
오래도록 두고 먹고 싶다면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간장, 식초, 설탕으로 만든 양념에 살짝 데친 쉽싸리를 절여주면 고기와 함께 먹기도 좋고, 입맛 없을 때 꺼내 먹기도 좋은 장아찌로 즐길 수 있다.
잎과 줄기 뿐만 아니라 뿌리도 먹을 수 있는데, 1945년 발간된 '조선의 구황식물과 식용법'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땅속줄기의 흰 뿌리는 절여서 김치를 담가 먹었다"고 한다.
멍이 든 부분을 진정시키는 데 좋은 쉽싸리

한방에서는 쉽싸리의 지상부를 택란이라고 부르며, 타박상 등 외상 치료에 쓴다. 실제로 쉽싸리는 상처 부위의 염증이나 종기, 타박상으로 인한 붓기를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다. 멍든 부위는 물론, 외부 충격으로 손상된 조직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작용은 쉽싸리에 들어 있는 토르멘틱산, β-시토스테롤, 리나린 같은 생리활성 물질 때문이다. 이 성분들은 항염, 상처 회복, 혈류 개선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싸리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인 플라보노이드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플라보노이드는 항산화 성분으로, 혈류 흐름을 개선하고 혈소판과 적혈구 응집을 막는다. 근육의 긴장도를 높이며, 통증을 완화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단, 쉽싸리는 섭취 시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으므로 임산부는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쉽싸리는 따뜻한 성질을 지녀,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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