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영원히 사는 법 [기자의 추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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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단단히 어긋났다.
추석이 지나고 9월이 한창인데도 여름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서 가을이 오지 못했다.
올해 "여름의 사체"를 빨리 가을이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름이 죽었다"라는 첫 연이야말로 지금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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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하 지음
봄날의책 펴냄
계절이 단단히 어긋났다. 추석이 지나고 9월이 한창인데도 여름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서 가을이 오지 못했다. 뜨거운 햇빛을 몸속 어딘가에 저장해두었다가 겨울에 꺼내 쓰는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지구가 마구 미웠다가 마냥 미안해지곤 했다. 지쳐 집에 돌아와 펼친 차도하 유고시집 〈미래의 손〉에서 ‘부고’를 찾아 읽었다. 올해 “여름의 사체”를 빨리 가을이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름이 죽었다”라는 첫 연이야말로 지금 읽어야 한다.
‘죽어야지’ 혹은 ‘죽어버려야지’라는 말을 못된 입버릇처럼 가진 사람이라서, ‘살고 싶다’라는 말 앞에서는 매번 무릎이 꺾인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는 시인의 말이 자꾸만 비명으로 번역된다. 1999년에 태어나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한 차도하는, 2023년 가을 세상을 떠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시집 〈미래의 손〉과 산문집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위즈덤하우스, 2021)을 남겼다. 그는 “죽은 사람의 글은 더 꼼꼼하게 읽힌다”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죽어도,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내 글을 대충 읽어주면 좋겠다. 다음 작업을 기대해주면 좋겠다”라고.
‘다음’이라는 단어와 죽음이라는 단어 역시 어긋난다. 그래서 대충 읽을 수가 없다. “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지/ 왜 죽은 사람은 죽어야 했는지// 질문이 손에 쥘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추모’) 나는 그 질문이 흘러넘쳐 차도하의 시가 되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하필./ 그런 부사는 쓸모가 없”(‘액체와 이별하기’)다지만, ‘하필’ 같은 단어야말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좋은 무너짐이다. “이리저리 부딪히다 넘어지”(‘쉘 위 댄스’)고 싶다. 그가 남긴 말들을 돌처럼 세상에 던지고 싶다. 무엇도 숨기지 못해서 용감해질 수밖에 없었던 시인이 남긴 시를, 당신도 “아무렇게나 펼쳐진 곳으로부터/ 독서를 시작”(‘못’)하면 좋겠다. 어쩌면 그것이 시인이 기대한 ‘다음’일지도 모르겠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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