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의 계절…봄과 초여름 잇는 ‘알리움’의 향연 [황금비의 수목원 가드닝 다이어리]


황금비 | 천리포수목원 나무의사
“파 가격이 많이 내려가서 걱정이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왜?” “꽃이 피면 맛이 없어지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래 파 농사를 지으셨다. 몇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아빠가 틈틈이 시간을 내 계절에 맞춰 농사를 짓는다. 대파는 원래 이른 겨울부터 초봄까지가 제철이다. 추위를 견디면서 파가 가진 단맛이 응축되고 부드러운 식감을 갖는다. 그러나 햇살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꽃대가 올라오면서 잎이 질겨져 상품성이 떨어진다.
채소의 꽃대가 올라오는 ‘추대 현상’은 농부에겐 걱정거리지만, 수목원 가드너에겐 그렇지 않다. 부추속 식물을 통칭하는 ‘알리움’은 이 시기 꽃대 끝에서 피는 독특한 구형의 꽃을 내세우며 정원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부추속에는 1천여종 가까운 식물이 포함되어 있어 여러 식물군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속 중 하나로 꼽힌다. 처음 들어보는 알리움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면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상차림을 생각해 보자. 마늘, 달래, 양파, 명이나물(산마늘), 부추처럼 식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 중 다수가 부추속에 속한다.

천리포수목원 산책로를 들어서면 알리움의 독특한 형태에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긴다. 마치 땅에서 솟아난 1m 남짓한 꼬챙이 끝에 장난감 공이 꽂혀있는 모양새다. 보랏빛 꽃차례를 선보이는 알리움 ‘글래디에이터’, ‘글로브마스터’, ‘기간티움’은 차례대로 피고 진다. 알리움 ‘파티 벌룬스’는 그 이름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두세개의 짧은 꽃대가 동시에 올라와 지금 당장에라도 하늘로 두둥실 날아오를 풍선 같다. 수목원의 추모정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알리움 스티피타툼 ‘마운트 에베레스트’는 투명한 흰색 꽃을 피워내는데,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튕겨내며 반짝반짝 빛난다. 어린이정원에는 짙은 자줏빛 꽃송이가 인상적인 알리움 아트로푸르푸레움이 한창이다. 수직으로 솟은 알리움의 강렬한 형태는 시선을 지표면에서 위로 끌어올려 정원에 풍성함과 입체감을 더해준다.

10~15㎝ 안팎의 직경을 가진 알리움의 둥글둥글한 꽃차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으면 50개, 많으면 200개에 이르는 작은 별 모양의 꽃을 감상할 수 있다. 6개의 가느다란 꽃잎이 지고 나면 꽃송이마다 씨앗이 맺힌다.
알리움은 비교적 관리가 쉬운 구근 식물로 꼽힌다. 초봄부터 알뿌리에서 새싹이 올라오는데, 꽃대가 올라오면 영양분이 꽃대 쪽으로 몰려 잎은 끝에서부터 누렇게 말라버린다. 마른 부분을 잘라줘도 되지만 대개는 끝까지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잎 전체를 남겨두는 편이다. 꽃이 지고 난 뒤에도 갈색으로 마른 독특한 꽃차례를 오래 감상할 수 있도록 줄기는 가능한 늦게 잘라준다. 장마가 오기 전 구근을 캐내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하고, 첫서리가 내리기 전 늦가을에 다시 심는다.

알리움은 해충이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 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 심어 주면 어렵지 않게 예쁜 꽃을 만날 수 있는데, 개화 시기가 다른 다양한 품종을 섞어 심으면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꽤 오랜 기간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초여름 벌과 나비 등 수분 매개 곤충을 이끌어 훌륭한 밀원 식물이 되어준다.

언제부터 6월이 완연한 여름으로 분류되었을까? 올해 서울의 기온이 처음으로 30도를 넘은 날은 5월14일로 지난해보다 일주일 더 빨랐다. 6월의 첫날에는 최고기온이 33도를 기록했다고 하니 해가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봄이 짧아지는 느낌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바다와 바로 맞닿아있어 한여름에도 비교적 서늘한 날씨가 이어진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 화려한 꽃을 피워낸 알리움을 보고 있자면 마지막 남은 봄의 조각들이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초조한 마음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조지 오웰은 1946년 발표한 에세이 ‘두꺼비 단상’에서 봄을 맞은 영국 런던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봄을 흔히들 ‘기적’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 닳고 닳은 비유는 지난 5~6년 동안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봄을 기적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풍경만으로도 생명력이 가득 느껴지는 수목원 산책로를 걷고 있으면 온갖 나무들이 당장에라도 전쟁을 멈추라고 회초리 들고 쫓아오는 느낌마저 든다. 떠나가는 봄이 아쉬운 것도 간절하게 기적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민주, 완승 꿈꾸다 ‘절반만 승리’...민심 경고 전당대회서 답할까
- 이 대통령 “신뢰 잃은 선관위, 존재 의미 없다”…검·경 합동수사 지시
- ‘사법리스크’ 오세훈·추경호, 10일 재판 재개…이르면 12월 시장직 판가름
- 한성숙 총리 후보자 ‘파격 발탁’…“이 대통령, 정치색 확 빼려 한 듯”
- 오세훈 “투표용지 부족은 대통령 책임” 공세…‘재선거 요구’는 거리두기
- 전국 흐리고 일부 지역 소나기…낮 최고 27도
- ‘재선거’ 연막 치는 장동혁…“패배 책임 물으니 ‘선관위 잘못’ 동문서답”
- 김민석 ‘출사표’, 송영길 ‘정청래 연임 견제’…민주 전당대회 국면 본격화
- [단독] 윤석열 관저에 행안부 예산 전용 확인…이상민 “그게 좋겠다”
- 개표소 집회 ‘갈라선 목소리’…성조기 막으며 “태극기만 오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