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삼성전자만 홀로 춥다 할까…‘어닝 쇼크’에 뒤따르는 질문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올 3분기 잠정실적으로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천억원을 발표했다. 매출은 전 분기보다 7%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13% 줄었는데,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부회장)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라며 “송구하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3년 반도체 부문에서만 14조9천억원의 ‘역대급’ 적자를 냈을 때도 내지 않았던 사과문을, 왜 2024년 10월 삼성전자는 내놓았을까.
삼성전자만 반도체 겨울…아킬레스건 ‘황금알’ HBM
전영현 부회장이 내놓은 사과문에 답이 있다. ‘고객과 투자자,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께 말씀드린다’로 시작하는 글은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내부 진단이 드러난다. 전 부회장이 위기 극복을 위한 첫번째 해법으로 말한 것은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제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 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이치비엠) 분야에서 뒤쳐졌다는 뼈아픈 자책으로 보인다.
에이치비엠은 지난해 인공지능 열풍이 불면서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초만 해도 수요 급감으로 인해 감산까지 강요받는 ‘혹한’과 마주했던 반도체 업계는 에이치비엠 수요 급증과 이로 인한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해 올해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동안 엔비디아와 협업하며 에이치비엠 기술을 개발해온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이에 힘입어 흑자로 돌아섰고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반도체 초호황기였던 2018년 이후 6년 만에 5조원대에 진입하는 등 가파른 실적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이닉스는 7세대 그래픽 디램(GDDR7) 양산 소식도 삼성 보다 앞서 알렸다.
반면 삼성전자는 뒤떨어진 에이치비엠 기술력을 끌어올리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기술력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올 3분기에 후퇴한 영업이익 실적을 내놓은 것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8일 “반도체의 겨울은 아니지만 삼성전자의 겨울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면서 5세대 에이치비엠(HBM3E)의 엔비디아 승인 지연을 삼성전자 주가 부진의 주요한 이유로 들었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가 에이치비엠 기술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도 따라잡지 못하는 것에 있다. 앞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삼성전자 에이치비엠에 대해 “(아직 검증 절차가) 끝나지 않았을 뿐”이라며 “빨리 끝났으면 좋겠지만 아직 안 끝났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역시 인공지능 칩의 수요 보다 공급이 달리는 상황에서 삼성 에이치비엠이 공급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후 넉달이 지났지만 엔비디아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인공지능 칩에만 삼성 에이치비엠이 탑재된다는 보도가 나올 뿐이다. 미국 정부는 첨단 반도체 제품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막고 있다.
노근창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가 반전을 일으키려면 2026년 후반부터 생성된 하이브리드 본딩 기반의 에이치비엠4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2010년대 후반 ‘초격차’를 달성했다고 한 삼성전자가 이제 빠른 추격(패스트 팔로우)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파운드리 열세…결국 분사할까?
30년 가까이 메모리반도체 분야 1위인 삼성전자의 다음 목표는 이른바 ‘비메모리’로 불리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엘에스아이(LSI) 분야로 진군하는 것이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전방 산업인 전자제품의 수요 등에 따라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데, 삼성전자는 불황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안정적인 비메모리 분야로 진출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의 중요성이 커지는 등 고성능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삼성전자로서는 이전과 크게 다른 시장에 진입한 셈이었다. 대규모 투자와 공정 혁신으로 메모리반도체 분야를 휩쓸었던 삼성이 이제 개별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의 주문을 수행해야 하는 협업이 중요해진 것이다. 게다가 위탁 생산을 맡기면 자신의 기술이 삼성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팹리스의 의구심도 해소해야 했다. 삼성은 지난 6월 연 파운드리포럼에서 기술력을 강조하기 보다 고객친화적인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에는 큰 물량을 맡기는 고객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시설투자와 장비반입을 미루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반면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는 애플과 엔비디아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웨이저자 티에스엠시 회장은 올 2분기에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뒤 “수요가 너무 많아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분사하는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초미세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노광장비의 가격이 한대당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대규모 투자를 필요한 파운드리를 살리기 위해선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티에스엠시처럼 보여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7일 필리핀을 방문하던 중 실적 부진을 겪는 파운드리와 시스템엘에스아이 사업과 관련해 질문을 받자 “(이들 사업을) 분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전영현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 마인드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 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고 했고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을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큰 폭의 인사 등 관료화되었다고 비판받는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를 바꾸려는 조처가 예고됐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사업부와 사업지원 티에프(TF)간 관계 등 눈에 보이는 삼성 내 ‘복잡한 구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대통령실 명태균과 선 긋지만…꼬여가는 해명 속 커져가는 의구심
- [단독] 박완수 경남지사 쪽 “2021년 윤 자택 방문…명태균이 제안”
- 폐쇄 앞둔 옛 포항역 ‘빨간집’…성매매 탈출해도 불안한 미래
- 왜 삼성전자만 홀로 춥다 할까…‘어닝 쇼크’에 뒤따르는 질문들
- 고향 어려움에 쏟아진 3억…야구단도 100살 극장도 지켰다
- 동행명령장에 숨바꼭질…국회 무시하는 ‘김건희 국감’ 증인들
- 한동훈 “김건희, 자제 필요” 용산과 전면전 치닫나
- 서울의대 비대위-대통령실 10일 토론회…‘숫자 논쟁’ 반복 우려도
- 이준석 “윤 취임 뒤 명태균-김건희 메시지 봤다”…대통령실 반박
- [단독] 김종인 “명태균, 윤과 첫만남 자리에 있었다…김건희 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