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깊은 어둠으로 칠한 그림
산재 사망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그린 적이 있어요. <monter>, <monster dancing> 같은 그림들이요. 분절된 인체가 양방향으로 이어진 기괴한 형상이에요. 이 이미지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어요. 밥벌이를 하러 가서 죽은 사람과 사람이 죽은 곳으로 계속 밥벌이를 하러 나가야 하는 사람들. 우리 몸은 계속 먹어야 하고, 또 누구를 먹여야 하고, 일을 하러 나가야 하고, 그러다 죽기도 하고, 죽음을 무릅쓰며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태, 풀기 어려운 문제예요. 정말 긴 시간 동안 이런 상황을 개선하자고 해 왔지만, 어쩌면 이 사회는 할 수 있는데도 안 해 왔어요.

사람의 근육이 최대한 긴장돼 있고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서로가 힘을 주고받지 못하게 설계했어요. 오도 가도 못하는 몸들이 서로 엉켜서 그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는, 계속 당겨지거나 밀리고 있는. 출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카드값이 있고 생활비가 있고. 악조건에서 일하더라도 생계를 버릴 수는 없잖아요. 양쪽의 힘이 팽팽하게 서로 당겨지고 있어요. 그러다 찢어지면 죽는 거고요.
그게 노동 현장의 현실과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긍정과 사랑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덮을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저에게는 가장 긍정적인 삶의 태도예요. 우리 잘할 수 있어 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실상이 이렇다는 것을 아는 게 지지 않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불가능성만 말해 온 것 같지만 생을 언제나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물론 이미 죽은 사람에 관한 그림을 그릴 때는 한없이 진중하려고 하지만 보통의 삶을 그릴 때는 고단하더라도 내일 다시 일어나 살아갈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해요.

안 할 수만 있다면 안 했을 일
사실 그림 그리는 걸 누군가 말렸어야 했어요. 저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어요. 주변 분들이 다들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셨어요. 미술학원에서 뭐든 그리라고 하면 똑같이 그리는 걸 잘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작가가 될 만한 기량은 아니었지요. 그림을 그려서 상도 받고 대학도 가고 했지만, 처음 서울에 올 때만 해도 작가가 아니라 미술 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 제 머릿속에는 그게 그림 그리는 사람의 인생 수순이었어요. 그런데 휴학을 했다가 엇학기 복학을 했더니 교직 이수 요건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좀 어이없지만 그게 인생 첫 실패였어요. 그 첫 실패와 때를 맞춰 집이 무너졌고요. 바닥인가 싶으면 더, 더, 내려가고, 모든 생계를 떠맡게 되었지요. 그게 스물한 살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곧잘 해서 먹고 살 만큼의 돈은 벌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랬던가 봐요. 생활이 되니까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싶었던 거예요. 돈이 많거나 직장이 안정적이거나 한 게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채 그냥 하루하루 살았어요.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됐다고, 작업 과정까지 행복한 건 아니에요. 그림을 이렇게 그리겠다는 이미지가 떠오르면 스케치를 시작해요. 괜찮아 보여요. 밑작업을 할 때는 직장인처럼 능률에 차 있어요. 그러다가 아 망했구나 하는 시간이 반드시 오고 말아요. 이거 망했네, 역시나 망했어. 그때부터 씨름을 하는 거예요. 지우고 다시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망했어, 망했어, 그러면서 술 마시고 울고, 그림도 망했고, 인생도 망했어 하다가 시간을 두고 그리기를 멈추기도 하고 그림을 뒤집어 놓고 있기도 해요. 그러다가 더는 지울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때가 그 작품을 다 그린 거예요. 마스터피스라는 얘기가 아니라 얘랑 나랑 할 건 이제 다 했다, 그렇게 됐을 때의 쾌감이 있어요. 뭔가를 만들었다, 완료했다. 그런 게 모여서 전시장에 걸릴 때는 뭐랄까, 자부심이라기는 좀 그렇고, 소소하게 저 혼자만 가질 수 있는, 이걸 ‘내가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안 할 수 있었다면 안 했을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건 안 할 수 없어서 하는 사람들의 일인 것 같아요. 안 해도 됐다면 월급 받는 일을 했을 거예요. 다른 무슨 일을 해도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어요. 학교를 못 다닐 위기도 있었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어요. 대학원은 정말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는데 조교를 시켜주겠다고 해서 가게 되었고, 강의를 하게 됐는데 전시도 안 하는 사람이 강의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공모전에 넣었다가 두 번째 개인전을 하게 됐어요. 그 전시를 통해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안 할 수 없게끔 잡아 끌어 준 분들이 있었어요. 그게 참 신기하고 감사해요.
그리는 사람과 그림, 모두가 하나의 물질

제가 이제 만으로도 마흔이 되었고, 제 나름 인생의 형식을 갖추고자 생계와 작업을 무관하게 가져가려고 해요. 그런 방식이 작성 성과를 더 좋게 하는 것 같아요. 최근 그림들에서는 물감이라는 물질성을 표면에 흐르도록 두는데, 그림을 그린다는 건 일루전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물감이 쓱 흘러버리면 그림도 하나의 물질이라는 게 확연히 드러나게 돼요. 일루전과 물질 사이에서의 긴장감, 그 자체가 인체를 대변하는 형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너무 형상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더 구체화해야 할까 싶어지기도 하고요. 아무튼 앞으로는 좀 더 가볍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조금 더 농담 같은 그림, 인체가 조금 더 구체화되는 그림들을요. 풍경 그림에는 텍스트를 같이 넣어서 자막처럼 보이는 작업들도 해 보고 있어요.
다음 전시는 하긴 할 텐데, 또 잡히겠죠. 작업이 조금 더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저의 그림이 궁금하시면 제 홈페이지에 다 올려놨어요.

인터뷰 | 이주호
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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