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가 초반 불안함을 지워내고 완연한 상승 곡선에 올랐다. 개막전 패배 후 1라운드를 5승1패로 마친 데 이어 대전 원정에서 정관장을 3-0으로 누르며 파죽의 6연승을 달렸다. 스코어만 보면 일방적이지만 내용은 더 단단했다. 2세트 12-20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서브 압박과 수비 전환, 교체 카드의 적중으로 한 세트를 통째로 뒤집었고, 전체 3세트 동안 팀 범실은 고작 10개에 그쳤다. 김종민 감독이 “디펜스·연결·세터 안정이 숙제”라고 꼽았던 과제를 코트에서 스스로 증명한 밤이었다. 무엇보다도 공격수들의 과감함을 주문한 메시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모마는 23점으로 마무리를 책임졌고, 강소휘는 사이드에서 템포를 끌어올리며 12점을 보탰다. 위기 때 필요한 슈터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슈터에게 공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선수들이 경기 중에 학습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 더 값지다.

경기 초반 흐름은 매끄럽지 않았다. 1세트 초반 정관장의 강서브와 중앙 콤비네이션에 리듬이 끊겼고, 토스-공격 타이밍이 엇갈리며 자잘한 연결 실수가 나왔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서둘러 페이스를 바꾸지 않았다. 리시브 라인을 다잡아 랠리 시간을 늘리고, 강소휘의 오픈과 타나차의 서브로 상대 수비 축을 흔들었다. 정관장이 블로킹으로 균형을 맞춰오자 김종민 감독은 과감히 세터 카드를 스위치하며 템포를 조정했고, 세트 막판엔 모마의 결정구와 김세빈의 블로킹으로 흐름을 붙잡았다. 1세트에만 10개의 범실을 쏟아낸 정관장은 손쉬운 실점으로 리드를 잃었고, 도로공사는 ‘실수하지 않는 팀’의 표정을 되찾았다.
이 경기의 백미는 2세트였다. 12-20까지 끌려간 스코어는 통상 세트를 포기하고 3세트 재정비를 택할 수 있는 간격이다. 도로공사는 반대로 들어갔다. 레시브 이후 첫 볼의 높이를 조금 낮추고, 코스는 더 과감하게 바깥으로 벌렸다. 교체로 들어온 카드들이 곧장 힘을 냈다. 이예은의 서브 타임이 상대를 틀어막았고, 이윤정은 센터와 사이드의 각도를 바꿔 정관장 블로킹을 분산시켰다. 무엇보다도 모마의 복귀 타이밍이 절묘했다. 21-23에서 투입되자마자 연속 득점으로 듀스를 만들었고, 이선우의 네트 터치를 유도하며 역전, 마지막 볼까지 직접 마무리했다. ‘공격수들이 더 과감해져야 한다’는 감독의 주문을 경기 가장 뜨거운 순간에 정확히 구현한 장면이었다. 점수판을 넘어 분위기가 단숨에 기울었다는 점에서 2세트는 단순한 역전 이상, 팀의 정체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3세트는 통제의 미학이었다. 정관장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붙어보려 했지만, 도로공사는 수비에서 첫 터치를 안정시키며 상대의 러시를 끊었다. 이지윤의 하드 커버와 문정원의 위치 선정이 정확했고, 세컨드 볼에서 불필요한 무리수가 줄었다. 토스는 빠르되 성급하지 않았고, 공격은 과감하되 무모하지 않았다. 리듬을 빼앗긴 정관장은 범실이 늘어났고, 블로킹 타이밍도 늦어졌다. 승부가 막판으로 향할수록 도로공사는 한 랠리, 한 디그, 한 블로킹의 가치를 세트 전체와 같은 무게로 다뤘다. 그래서 스코어 이상으로 안정적인 3-0이었다.
이날 승리의 구조를 뜯어보면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첫째, 서브-리시브 전쟁에서의 판정승이다. 도로공사는 강약 조절이 분명한 서브로 정관장의 세트업 지점을 흔들었고, 자신의 리시브는 짧게-길게 변주하며 상대의 전위 블로커를 옆으로 끌어냈다. 둘째, 세터의 용기다. 김다은-이윤정은 각자 장단이 뚜렷하다. 김다은은 미세한 템포 변화로 중앙을 열어주는 감각이 있고, 이윤정은 넓은 각도로 사이드를 활짝 여는 장점이 있다. 감독의 표현대로 “약점을 피해가기보다 활용”하려면, 오늘처럼 상황에 맞춰 리듬을 바꾸는 용기와 심플한 선택이 필요하다. 셋째, 결정권자의 존재다. 모마의 23점은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장 어려운 볼, 팀이 꼭 필요로 할 때 들어가는 볼을 책임졌다는 의미다. 강소휘의 템포 업과 타나차의 퀵오픈도 모마에게 쏠리는 시선을 분산하며 결정구의 효율을 끌어올렸다.

이 연승의 과정은 도로공사가 왜 ‘우승후보’로 평가받는지를 설명한다. 시즌 초 김종민 감독은 “우린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 디펜스와 연결, 세터에서 흔들린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동시에 “그걸 덮을 수 있는 건 공격수들의 과감함”이라고 해답도 제시했다. 코칭스태프의 냉정한 자기 진단과 선수단의 빠른 실행이 맞물리자 장점은 더 도드라지고, 약점은 경기 중 보완되는 팀으로 변했다. 개막전 패배 뒤 6연승, 승점 16으로 2위 현대건설과 격차를 벌린 현재의 순위표는 결과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경기력의 방향이 올바르다는 사실이다. 수비는 촘촘해지고, 연결은 단순해졌고, 세터는 과감해졌고, 공격수는 책임을 배웠다. 챔피언을 향한 로드맵이 선명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과제는 남아 있다. 큰 흐름을 잘 타는 팀일수록 세트 초반의 작은 흔들림이 도미노가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오늘처럼 초반 리시브 흔들림이 나온 날엔 서브로 즉시 맞불을 놓거나, 하이볼에서의 안전 장치를 조금 더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리그가 길어질수록 상대는 모마-타나차-강소휘 코어에 치밀하게 대비해 올 것이다. 그래서 미들 라인의 공격 가담 빈도와 타이밍, 백어택 루트의 다양화는 파이널을 바라보는 팀에게 필수 과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도로공사가 ‘지키는 법’과 ‘뒤집는 법’을 모두 아는 팀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12-20을 25-23으로 바꾼 2세트는 그 증거로 남을 것이다.

정관장 입장에서는 놓친 아쉬움이 크다. 1세트 범실 10개는 자멸의 신호였고, 2세트 20점 이후 마무리 부재는 패인으로 직결됐다. 박은진·정호영의 블로킹이 살며시 온기를 찾는 장면도 있었지만, 서브-리시브의 기복이 세트 후반 집중력을 깎아먹었다. 다행인 것은 자원들이 분명히 있고, 세터-공격 라인의 호흡만 맞아들면 경기 양상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리턴 매치에서 20점 이후 시퀀스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다음 라운드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도로공사는 ‘강팀의 습관’을 되찾고 있다. 앞서는 세트를 지키고, 뒤지는 세트를 뒤집고, 마지막엔 실수하지 않는다. 김종민 감독의 200승을 밀어 올린 원동력은 화려한 스파이크가 아니라 묵직한 기본기와 과감한 선택이다. 연승이 길어질수록 시험대는 더 높아지겠지만, 지금처럼 명확한 숙제와 명료한 해답으로 하나씩 풀어간다면, 시즌 초반의 선두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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