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곰’ 결승전…어미 곰은 새끼 죽인 원수를 이길 수 있을까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격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미국 알래스카의 ‘카트마이 국립공원’은 이맘때가 되면 ‘뚱보 곰’을 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국립공원이 덩치가 커진 곰을 선발하는 이유는 뭔가요. 무조건 덩치만 크면 우승 곰이 될 수 있는 건가요?
A.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말씀처럼, 미국 알래스카 남부의 카트마이 국립공원에서는 이 시기가 되면 공원 안에 사는 알래스카불곰들이 ‘덩치 경연’을 벌입니다. 불곰들은 겨울잠에 대비해 6월 하순부터 10월까지 몸무게를 최대 50%까지 부풀립니다. 사냥이 어려운 겨울 동안에는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비축한 에너지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불곰들은 국립공원 안에 있는 브룩스 강에 모여 산란 철 ‘고향’을 찾은 연어들을 사냥합니다.
카트마이 국립공원은 불곰의 이러한 생태와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4년부터 ‘올해의 뚱보 곰 선발대회’(Fat Bear Week)을 운영하고 있어요. 국립공원 내에 살고 있는 2200여 마리 곰 가운데 10~12마리를 선발해 온라인 토너먼트 방식으로 올해의 뚱보 곰을 뽑습니다. 여름 동안 가장 덩치를 키운 곰들을 소개하고, 온라인 투표를 통해 ‘우승 곰’을 가리죠. 올해의 뚱보 곰은 순전히 시민들의 참여로 선발됩니다. 국립공원이 곰들을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눈 대진표를 대회 누리집(explore.org)에 공개하면 시민들이 곰의 덩치와 사연을 보고 응원하는 곰에게 투표하는 방식이죠.
2014년 대회가 만들어질 당시엔 ‘뚱보 곰 선발 화요일’이란 이름으로 단 하루뿐인 행사였지만 점차 관심이 커져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행사로 확대 됐고, 참가자도 첫해엔 2000명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전 세계에서 14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올해 대회가 시작된 지난 2일(현지시각) 뚱보 곰 선발대회에 대한 소소한 궁금증을 6개 질의응답으로 정리했습니다. 보도를 보면, 이 대회는 카트마이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일하던 마이크 피츠가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국립공원 관계자 리안 로는 “멸종위기 동물과 보전 이야기는 대부분 암울하고 우울할 수 있지만, 뚱보 곰 선발대회 기간에 우리는 진심으로 곰과 자연을 응원하고 찬양할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설명했습니다.
그럼 사냥에 능해 ‘급찐’ 곰들만 우승을 거머쥘 수 있는 걸까요? 대회 제안자 마이크 피츠의 설명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는 “투표에 정해진 기준은 없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몸집이 가장 커진 곰에게 투표할 수도 있지만 (다른 곰과의) 상대적인 뚱뚱함을 볼 수도 있고, 새끼를 키우느라 힘든 어미 곰처럼 각자 곰의 사연을 고려해 투표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대회 누리집도 이를 위해 대회 참여 곰들의 프로필과 약력을 안내하고 있는데요, 가령 올해 대회 1라운드에 참여한 곰 903은 연어를 두고 먹이 경쟁을 벌이는 갈매기를 잡아먹어 걸리(Gully)라는 별명을 얻었다던가 강 주변에서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는 곰 32가 덩치(Chunk)로 불린다는 등의 사연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전 대회에서는 몸집이 가장 큰 것은 아니었지만, 어미로서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곰 435(홀리)와 128(그레이저)가 우승 곰으로 뽑힌 적도 있습니다.
곰들끼리의 관계를 알게 되면 대회는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올해 대회에서는 지난 7월 두 마리의 새끼 중 한 마리를 잃은 어미 곰 ‘그레이저’와 그의 새끼를 공격한 ‘덩치’가 결승에서 맞붙으면서 누가 우승의 영예를 거머쥘지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새끼를 잘 보살핀 그레이저일까요, 몸무게 540㎏이 넘는 대형 곰 덩치일까요. 최종 우승 곰은 미국 동부시각 8일 저녁 9시 이후 공개됩니다.
이런 몰입감 때문일까요. 최근엔 각종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온라인 해킹으로 일부 참가 곰에게 비정상적인 몰표가 쏟아져 투표가 무효화 되는 사건도 벌어졌고, 올해는 대회 선발 목록에 올랐던 곰 402가 다른 곰에게 공격당해 사망하는 바람에 개최일이 하루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국립공원은 평소에 불곰들의 모습을 라이브캠으로 공개하는데, 그러다 보니 402가 다른 곰과 싸우다 죽는 모습도 그대로 생중계됐다고 합니다. 국립공원 대변인 맷 존슨은 “라이브캠은 자연의 경이로움뿐 아니라 가혹한 현실도 그대로 전하고 있다”며 “곰들은 이처럼 각자 생존을 위해 다른 곰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습니다.
이렇게 야생동물의 생태를 알리는 행사는 올해의 뚱보 곰 선발대회 이외에도 ‘남극 황제펭귄 관찰대회’, ‘뚱보 물개 선발대회’ 등이 해마다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챙겨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한동훈 ‘김건희 자제’ 발언에…친윤 권성동 “비공개로 말했어야”
- ‘명태균 폭로’ 터지자…윤, 한동훈과 재보궐 이후 독대 검토
- 뉴진스 하니 “멤버들과 팬들 위해 국정감사 나갈 것”
- 캄보디아 프놈펜에 한국형 아파트 ‘부영 타운’ 들어섰다
- [단독] 박완수 쪽 “2021년 명태균이 제안해 윤 서초동 자택 방문”
- ‘민원인에 금품 수수·성추행 혐의’ 김진하 양양군수 압수수색
- 폐쇄 앞둔 옛 포항역 ‘빨간집’…성매매 탈출해도 불안한 미래
- 인천, 광역버스 준공영제 시행…운수업체 지분 사모펀드엔 매각 않는다
- 왜 삼성전자만 홀로 춥다 할까…‘어닝 쇼크’에 뒤따르는 질문들
- 한동훈 “김건희, 자제 필요” 용산과 전면전 치닫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