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는 침체된 한국 경제 뛰게 할 마중물"

구자홍 기자 2024. 9. 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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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논란의 ‘지역화폐법’ 대표 발의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 서민, 상인, 지방에 좋은 ‘1석3조’ 제도
● 전국 온누리상품권,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글쎄…”
● 관리비 증가·효과성 의문·인플레 우려도
● 다수결과 거부권 행사 사이에서 표류하는 민생 법안
● ‘국힘’ 의원들도 국민 요구 알아…새 국면 펼쳐질 것
● 분권 국가 초석 다지는 일에 집중하겠다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중식 기자]
지역화폐는 퍼주기 포퓰리즘인가, 아니면 지역경제를 살릴 마중물인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주도한 민생회복지원금법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로 되돌아온 가운데,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9월 19일 또다시 지역화폐법(‘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지역화폐법은 지역화폐에 중앙정부 재정 지원을 의무화한 것이 특징이다. 돈 쓰는 사람 따로, 돈 대는 사람 따로라는 이유로 일각에서는 전 국민 25만 원 지원을 상시화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야당이 김건희‧채상병 특검법과 지역화폐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자 "민주당의 일방 강행 처리로 무리하게 통과된 법안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강력히 건의드린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왜 이토록 지역화폐에 진심인 것일까. 22대 국회 입성 후 '1호 법안'으로 지역화폐법을 대표 발의한 박정현 민주당 의원에게 '왜' '지금' '지역화폐'인지 물었다. 2010~2018년 두 차례 대전시의원을 지냈고, 이후 2022년까지 대전 대덕구청장으로 일한 그는 구청장 재임 시절 대전시 최초로 '대덕e로움'이라는 지역화폐를 도입하기도 했다.

유권자 "지역화폐 다시 살려달라"

1호 법안으로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을 대표 발의했다.

"대부분은 '지역화폐'로 알고 계시는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역 주민은 물론 지역 소상공인들께서도 굉장히 좋아하는 제도다. 구청장 재임 때 '대덕e로움'을 대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정책 효과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국회 차원에서 다시 추진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무엇보다 총선 때 유권자들께서 '지역화폐를 다시 살려달라'는 요청을 많이 하셨다."

2022년 민선 8기가 들어선 후 박 의원이 도입한 '대덕e로움'은 사라지고, 현재는 '온통 대전'이란 대전 지역화폐만 남아 있다고 한다.

지역에서 사용될 지역화폐에 국가재정 투입을 의무화한 이유는 뭔가.

"정부는 이미 지역화폐에 재정을 투입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는 1조2000억 원 넘는 예산을 지역화폐에 투입했다. 현재도 전국 243곳의 지자체 중 191곳이 지역화폐를 운영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앙정부는 멋대로 (지역화폐) 예산을 깎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역화폐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그러나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 과정에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일정 정도 예산에 반영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박정현 의원이 대덕구청장 시절인 2019년 7월 1일 지역화폐 ‘대덕e로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한국 경제 다시 뛰게 할 마중물

박 의원은 "80% 가까운 지자체가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지역화폐는 단순한 지역 사무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월급봉투는 그대로인데 물가가 많이 올라 서민들 가처분소득이 많이 떨어졌다. 그러니 지역화폐를 활성화해 시민께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가처분 소득을 올려드리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화폐는 지역 안에서만 쓰도록 돼 있어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시민과 지역 상인, 지방 경제에 도움 되는 '1석3조' 지역화폐에 정부가 왜 그렇게 인색한지 이해할 수 없다."

박 의원은 "내수 부진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지역화폐는 내수를 활성화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할 마중물 구실을 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역화폐 발행에 따른 운영과 관리비 증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지역화폐는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가성비 뛰어난 정책이다. 관리 비용이 조금 들기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대덕e로움' 도입 후 두 차례 정책 효과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는데, 지역 상권 활성화에 크게 도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대덕구청장으로 재임한 지 698일째 되던 2020년 5월 27일, 박 의원은 당시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대덕e로움' 발행 효과 분석 결과가 나왔어요. 점포당 1일 평균 7만2000원 수입 증가, 고객 증가 점포 35%, 대덕구 내 지출 증가한 사용자 35%, '대덕e로움' 사용 이유 65% 할인 지원, 25%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 대덕구 내 소비가 늘었고 소비가 늘어난 만큼 골목상권에 도움이 됐다는 결과가 나왔네요."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할인율을 대폭 높인 온누리상품권을 대규모로 공급하고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지역경제 활성화와는 무관하다. 예를 들어 친정이 전남 목포인 사람이 온누리상품권을 목포에서 사더라도 서울에 올라와서 쓸 수 있는 게 온누리상품권이다. 그에 비해 지역화폐는 지역에서만 쓰도록 사용 범위가 정해져 있어 돈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전국 어디서나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정부는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임대료와 전기료 지원, 대출이자 감면 등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 중인데.

"소상공인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정부가 지원해 준 그 돈이 결국 누구에게 흘러가는지를 잘 봐야 한다. 임차료를 지원해 주면 부동산을 가진 임대업자에게 돈이 흘러가고, 전기료를 보태주면 한전으로 가지 않나. 대출이자는 돈 빌려준 은행들이 가져간다. 명목상 소상공인을 돕는 정책인데, 따지고 보면 덕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 지역 소상공인에게 중요한 것은 지역에서 소비가 활성화돼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지역 상인에게 돌아갈 이익이 커진다."

정부와 여당은 13조 원 규모의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면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600조 원이 넘는 우리나라 1년 예산에 비하면 13조 원은 결코 큰돈이 아니다. 민생회복지원금도 지역사랑상품권도 모두 민생 법안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민을 돕고, 민간 소비 활성화로 지역경제까지 살릴 수 있는 좋은 민생 정책이다. 그런 민생 법안을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민생 법안인 민생회복지원금과 지역화폐법을 정부와 여당이 정쟁 법안으로 만들고 있는 게 문제다."

9월 11일 경제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원이 민주당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정부가 지역화폐를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가 이재명 대표의 치적이자 대표 브랜드 정책이기 때문이냐"며 "그런 이유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뀌지 않으면 국민이 3차 경고할 것

모든 국민에게 25만 원을 줄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더 두텁게 지원하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민생을 살리는 방법을 두고 얼마든지 여당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민생회복지원금이나 지역사랑상품권보다 더 좋은 정책이 있으면 내놓으면 된다. 그래야 대화가 되지 않겠나. 그런데 여당은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무조건 '민주당안(案)은 안 돼'라고만 얘기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여당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9월 11일 "안 주는 것보다 낫다"며 "전 국민 25만 원 일괄 지급안을 포기할 테니, 선별·차등 지원이라도 하자"고 했다. 기존 보편적 지급 원칙에서 선별·차등 지원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다만 '소비 쿠폰' 등을 지급하자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어 여야 타협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9월 11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민주당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안에 대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일회성 현금성 소비 쿠폰을 나눠주는 것으로는 민생 지원 효과나 소비 진작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민생회복지원금법도 지역사랑상품권법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현실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부 여당과 조율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여당에서 선을 긋고 '무조건 안 돼'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바람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화를 통한 협상과 타협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어느 한쪽의 비협조로 협상과 타협이 끝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야당은 다수결 원칙을 앞세우고 대통령은 헌법상 권리인 거부권 행사로 맞서면서 이른바 민생 법안이 표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1차 경고를 보냈다. 22대 총선 결과는 2차 경고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으면 국민은 어떤 방식으로든 3차 경고를 보낼 것이다. 국민께서 헤어질 결심을 하실 것이다. 우리는 국민 뜻에 따라 국민 대표가 된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수 국민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박 의원은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가 더 낮아지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 생각도 달라질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국민 뜻에 따라 뽑힌 그분들(국민의힘 의원들)도 국민 요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여당 의원들이 국민 뜻을 수용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

문득 박 의원은 "밖에서 국회를 볼 때는 좀 답답했는데, 안에 들어와서 일해 보니 굉장히 '다이내믹'하더라"며 "특히 윤석열 정부에 대한 문제의식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가 있던 날 국회 상황을 예로 들었다. 박 의원과 인터뷰한 9월 10일 오후에는 국회 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주무 부처 장관인 외교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불참 논란으로 대정부질문 시간이 오후 2시에서 저녁 7시로 늦춰져 밤늦게야 이뤄졌다.

박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 대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민생 현장의 생생한 국민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의원, 구청장 등 지방행정 경험을 살려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법과 제도 정비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현재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7대 3정도 된다. 최소한 6대 4 정도까지 세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있어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실화하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세수 구조를 두고 '분권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지난해 예산 부족을 이유로 18조 원에 이르는 지방교부금을 내려보내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올해도 세금이 적게 걷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자치와 분권이 상당 부분 후퇴했다. 이 문제부터 원상 복구해야 한다. 분권 국가로 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일에 집중하겠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중앙정부가 지방에 예산은 보내지 않으면서 업무만 내려보내는 일이 굉장히 많다. '아동수당'도 그렇다. 정부가 도입한 아동수당은 국비와 지방비를 매칭해 지급하도록 돼 있다. 정부 정책 시행을 위해 부족한 지방정부 재원을 투입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국비와 지방비 매칭 사업이 늘어나면 지방 살림을 꾸려가기가 더 어려워진다. 최소한 노인과 장애인, 아동 관련 사업은 100%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사랑상품권법을 당론으로 발의해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탄소인지예산제, 탄소다이어터 최초 시행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대전충남녹색연합을 창립하고 환경운동에 앞장 서 온 그는 구청장 재임 때 '대덕형 그린 뉴딜'로 기후 위기 대응 모델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산이 탄소 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사업 전환을 모색하는 '탄소인지예산제'를 전국 최초로 도입했고, 탄소를 줄이는 주민 참여 정책인 '탄소다이어터'를 시행하기도 했다. 그는 자치단체 차원에서 실시한 기후 위기 대응 모델을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노력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22대 국회 전반기에는 시급한 지역화폐 도입을 위해 행정안전위에서 활동하게 됐는데, 하반기에는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지원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 마련에 기여할 생각이다."

박 의원은 총선 도전을 앞두고 펴낸 책 '다시 박정현입니다'에서 기후 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좋은 토양에 뿌려진 씨앗은 적당한 시점이 되면 반드시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고 정부 예산을 심사하는 게 주된 업무다. 그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의원으로서 어떤 씨앗을 뿌릴지 궁금하다. 다시 정치 현안으로 돌아왔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한 원내 제1당이다. 다수당으로서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만나 여야 상설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으니 협의체가 구성돼 가동되면 조금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당이 의원 숫자는 많지만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책임은 여당에 있다. 여당이 당면한 민생 문제와 관련해 더 깊이 고민하고 협치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우리는 늘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 민생회복지원금도 그렇고 지역화폐도 그렇고 '야당 법안은 안 된다'고만 고집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여당이 안을 내놓아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박 의원은 이 대목에서 '채 해병 특검법'을 거론했다.

"한동훈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 경선 때 제3자 특검 추천을 언급했다. 우리 당은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 한 대표 주장대로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검을 추천할 수 있도록 법안 내용을 바꿨다. 이제 한 대표가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할 때다."

지역화폐로 시작한 박 의원 인터뷰가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은 '특검' 얘기로 흘렀다. 여야 입장 차가 큰 쟁점 법안일수록 '야당 단독 국회 통과-대통령 거부권 행사' 수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협치 실종' '비생산 국회'라는 오명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역화폐법은 어떤 궤적을 그리게 될까. 대통령 거부권에 막혀 현실화되지 못하는 비운의 법이 될까. 아니면 여야가 서민과 지역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전격 의기투합해 현실화될까. 다수결이란 민주주의 원칙과 거부권 행사라는 헌법상 고유권한 사이에서 '지역화폐'는 표류하고 있다.
신동아 10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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