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vs 조국’ 대리전에 판 커진 호남대전…“결과 따라 야권 정계개편”

영광=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10. 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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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전남 영광 재보궐 르포] 흔들리는 호남, 미리 보는 2026 지방선거 민심 
호남 맹주 민주당에 혁신당·진보당 도전장…조직·바람·진심에서 ‘3野’ 중 누가 웃을까

(시사저널=영광=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군수 후보로 누가 나왔냐고요? 투표 날짜가 언제인지도 모르는데, 뭘…." 10월2일 오전 전남 영광 읍내 터미널시장. 생선 장사 준비를 하던 한 상인은 군수 재보궐선거 얘기를 꺼내자 말도 붙이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떡집 주인 김아무개씨(54)는 "후보가 네 명인가 다섯 명 나온 걸로 안다"고 했고, 앞집 정육점 주인 이아무개씨(41)는 4명의 후보 가운데 3명의 이름만 정확히 댔다. 누구에게 더 호감이 가느냐는 질문에는 퉁명스럽게 "모르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고을 원님 선거에 TV만 틀면 나오는 유력 정당 대표들까지 가세하면서 영광이 전국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지역 유권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영광 읍내 외곽 아파트에 산다는 자영업자 이철민씨(56·가명)는 "뽑아놓아도 제대로 임기를 채우는 사람이 없으니 이제 선거에 지쳤다"며 한숨을 쉬었다. 잇단 군수 재보궐선거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이씨는 "당도 중요하지만 깨끗한 사람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단체장들이 잇따라 중도하차한 경험 탓이다. 지역 정치에 대한 냉소가 민심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는 1995년 민선 영광군수 선거 이후 10번째 치러지는 선거다. 현재 민선 8기인 것을 감안하면 민선자치 시기에 두 차례 재선거가 더 치러진 셈이다.  

10·16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0월3일 전남 영광군 영광읍 터미널시장 인근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영광군수 재선거에 출마한 장세일 후보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0월3일 전남 영광군 영광읍 터미널시장 앞에서 열린 장현 후보 선거 캠프 출정식에서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혁신당-진보당 후보 각축

이를 반영하듯 유권자들 대부분은 지지 정당 못지않게 유능하고 청렴한 군수를 바랐다. 영광읍 터미널시장 초입 찐빵집 앞에 서있던 60대 여성들은 "호가호위 세력을 곁에 두지 않고 진실하게 군정을 이끌 후보에게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했다. 약속을 잘 지키는 후보가 당선되길 바라는 유권자도 있었다. 염산면에서 평생 농사를 짓는다는 김희남씨(73)는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를 위한 공약이 쏟아졌다"며 "지금은 이런 공약은 온데간데없고 당선만 되고 보자는 속셈만 보이니 재선거도 별로 기대되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신의를 제대로 지키는 믿을 만한 사람을 뽑고 싶다"고 했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한다는 황아무개씨(48)는 "영광은 대도시 광주 변방으로 군세가 약하고 낙후됐다"며 "영광 경제를 살릴 능력 있는 단체장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영광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판세가 초박빙으로 나타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당과 인물을 두고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50대 이상은 민주당 장세일 후보를, 20∼40대는 조국혁신당 장현과 진보당 이석하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분석과 달리 이런 고민은 유권자의 나이를 넘어섰다. 특히 지역 산업의 중심축인 대마산업단지와 한빛원자력발전소를 끼고 있는 내륙지역 주민 사이에서도 이런 모습이 관측됐다. 

농민 박철수씨(58)는 "민주당이 지난 30여 년간 해준 게 뭐냐"며 "민주당 옷만 입고 나오기만 하면 당선된다는 오만함에 피로감을 느낀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대학생 이상민씨(27)는 "부모 대부분이 '그래도 민주당'이라며 지지하기 때문에 자녀도 투표장에 들어가면 결국 민주당을 찍을 것"이라며 상반된 답변을 내놨다. 반면에 '당보다 인물을 보겠다'는 의견도 많았다. 적지 않은 20∼40대는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후보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영광군수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세 번 당선됐다. 이번에는 무소속 대신 진보당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진보당은 이번 선거에 이장 출신 농민운동가 후보를 냈다. 60대 편의점 주인 최씨는 "2파전이 아니라 3파전이다. 진보당 당원들이 새벽같이 집게 들고 나와서 쓰레기 다 줍고, 노인들 짐도 들어주며 봉사한다"며 "민주당이 자만했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라고 했다. 진보당의 '진심정치'가 바닥 민심을 흔들었지만 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택시기사 김씨는 "칼도 갈아주고, 논에 풀도 베주고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다"면서도 "그런데 이게 표로는 안 갈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영광은 4곳의 단체장을 뽑는 10·16 재보궐 선거구 중 가장 '핫'한 선거구다. 호남의 '집권여당'이나 다름없던 민주당 후보에 맞서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나머지 야권 정당 후보들이 도전한 가운데 야권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참전하면서다. 인구 5만여 명 기초단체의 군수를 다시 뽑는 선거지만, 야당 대표들이 현장에서 직접 뛰면서 영광군수 재선거는 곡성군수 재선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판이 커졌다. 한 영광 군민은 "1년8개월짜리 군수를 뽑는 작은 선거에 당대표들이 뛰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오승용 전 전남대 교수는 "당초 이번 선거가 전국적 이슈가 될 만한 게 아니었지만, 조국 대표나 이재명 대표 등 대선주자들의 선거 지원 활동이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선거 결과에 따라 야권 정계개편이나 호남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野-野 대선주자 대결에 '호남→여의도' 전선 확대

현재 판세는 어떨까. 일각에선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에서 치러지는 선거이니만큼 일찌감치 판세가 정해졌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하지만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딱 부러지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혼전과 박빙의 접전 양상이다. 영광 토박이로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전남도의원 출신 민주당 장세일 후보(60)와 와신상담 두 번째 군수선거에 도전하는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67), 첫 농민군수를 꿈꾸는 이석하 후보(53)가 엎치락뒤치락하며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후보 3명이 각각 지지율 30% 안팎에서 선두권을 형성하지만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차기 군수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자고 나면 지지율이 바뀌는 거 같아서 누가 이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 누가 우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후보 자신들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0대 정당인)  

실제 10월1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세 후보가 오차범위 내 3파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트리뷴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9월29~30일 영광군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민주당 장세일 후보 32.5%,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 30.9%, 진보당 이석하 후보가 30.1%를 각각 기록했다. 선두인 장 후보와 3위 이 후보 간 격차가 2.4%포인트에 불과해 세 후보 모두 오차범위(±4.4%포인트) 내 초접전을 펼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역대 영광군수 선거에서는 민주당 텃밭임에도 '공천장의 위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정당보다는 후보들의 출신 읍·면에 따라 표를 주는 소지역주의와 후보 개개인의 지연, 학연이 큰 영향을 미치곤 했다. 특히 정치권의 절대 강자가 없었던 만큼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난립했고 선거 혼탁상도 심각했다. 이번 재선거에선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이 소지역주의와 후보 개인기를 넘어설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특히 TV 토론이나 유세 현장에서의 연설이 당락을 가를 최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토착민들과 엇박자를 내는 원전이나 산단 근로자의 표심 향배도 변수다. 영광 지역 전체 유권자는 4만5019명이다. 가장 큰 전통시장인 터미널시장이 있는 영광읍이 40%를 차지한다. 이어 한빛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홍농읍에 12.6%, 굴비 주산지인 법성포에 9.9%가 거주한다. 무엇보다 군수들의 잇따른 중도 탈락에 따른 반작용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부패사슬을 끊을 청렴함과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능력을 지닌 후보임을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안갯속 판세 속에 '청렴군수' 출현 열망 꿈틀

영광군은 그동안 군수 3명(재선 포함)이 뇌물수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불명예 퇴진하는 바람에 '군수의 무덤'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전임 무소속 강종만 군수는 단체장 선거에서 두 차례 당선됐지만 민선 3기 당시인 2008년에는 돈을 받아서, 이번에는 돈을 줘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진해 재선거의 빌미를 제공했다. 민선 6·7기 군정을 맡은 김준성 전 군수는 2014년 7월 자신 소유의 석산 부지를 자신의 친척 명의로 이전한 뒤, 토석 채취업자에게 부당하게 매매한 혐의로 기소돼 군수직을 상실했다. 

잇단 군수들의 실각은 자신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겠지만, 이로 인한 군정의 후유증과 여진은 더 크게 남았다. 그때마다 군청 안팎에선 군정 공백과 혼란 가중이 불가피했으며 '실·과장 행정'으로 전락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했다. 4급 서기관인 부군수가 직급에선 높지만 전남도에서 파견(?) 나와 1~2년의 짧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부군수보다는 평생 군청에서 잔뼈가 굵은 실·과장들이 조직 장악력에서 앞서 '권한대행 군정'이 겉돌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영광군 공무원들은 올해 5월 한 달간 2000여 건(누적)의 휴가 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수가 중도 하차하면서 부군수 대행 체제로 전환된 조직 분위기가 느슨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자치단체장의 중도 낙마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되고 보자는 선거 풍토'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지역이 좁다 보니, 선거가 과열되기 마련이고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해 불법이 일상화되고 있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에선 군수가 세 차례나 직을 잃게 된 것에 대해 모두가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민 김민철씨(57)는 "잇단 단체장 낙마 사태로 지역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고 군민들이 자존심을 많이 구겼다"며 "군수가 불명예로 중도 하차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군민 모두 뼈를 깎는 자세로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도 정치인이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유권자들의 현명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선거가 과열혼탁하기 마련이다"며 "이번에는 '지원금의 맛' 등에 현혹되지 말고 제대로 된 인물을 군수로 뽑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할 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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