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CEO 인선]⑤ 입지 좁아진 농협금융 이석준·이석용…회장·행장 교체?

9월부터 돌입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조망해 봅니다.

/그래픽=박진화 기자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이석용 농협은행장이 나란히 임기만료를 맞을 예정인 가운데 연임 가능성은 다소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올해 초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취임하면서 자회사인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건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지배구조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농협은행은 4건의 금융사고가 터지면서 행장 책임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주 회장과 행장을 함께 교체할 경우 그룹의 경영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 회장과 이 행장이 함께 부임했던 지난 2023년 1월처럼 동시교체 카드도 고려되고 있다. 이번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특히 주목되는 배경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지주는 지난달 26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지주 회장과 행장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 이 회장과 이 행장의 임기가 오는 12월31일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5대 금융그룹 중 유일하게 지주 회장과 행장의 연임 여부가 함께 결정될 예정이다.

은행 외에도 4곳의 계열사 대표 임기가 연말에 마무리된다. 윤해진 농협생명 대표, 임동순 NH아문디자산운용 대표, 서옥원 NH농협캐피탈 대표, 김현진 NH벤처투자 대표가 승계 대상 명단에 올랐다.

중앙회 입김 어디로…이석준 회장 거취 '주목'

/그래픽=박진화 기자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지분 100%를 가진 농협중앙회가 임원 선임에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농협금융 임추위에는 이윤석, 김익수, 박흥식, 길재욱, 이종백 이사가 참여한다. 이들 가운데 특히 강 중앙회장이 공식 취임한 직후 발탁된 박 이사가 기타비상무이사로 임추위원 활동을 시작해 눈길을 끈다. 박 이사는 농협중앙회 이사회 격인 대의원을 지냈고 현재 광주비아농협 조합장을 맡고 있다.

지주 기타비상무이사는 지주 대표이사 회장뿐 아니라 금융 계열사 대표이사까지 추천하는 자리라 역대 농협중앙회장 최측근 인사들이 맡아왔다. 박 이사 역시 강 회장이 추천한 인사로 알려졌다. 박 이사가 중용되기 전까지는 강 회장 취임과 맞물려 한 달 넘게 공석이었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상근하지 않으면서도 주요주주가 기업에서 이사회의 경영참여를 원할 때 선임한다. 사외이사의 경우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대학 교수 등 회사와 무관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 회장은 올해 초 취임한 강 중앙회장과 NH투자증권 대표 선임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며 고질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드러낸 바 있다. 농협은행뿐 아니라 계열사 금융사고도 발생하며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정기검사를 받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여기에다 강 중앙회장이 올해 5월 발표한 '내부통제 및 관리책임 강화 방안'에 중대사고를 낸 계열사 대표의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이 회장의 입지는 좁아진 상태다.

다만 이 회장 연임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니다. 대다수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던 곳이 농협은행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행장이 이 회장보다 해당 내부통제안의 직접적인 대상에 좀 더 가깝기 때문이다. 농협금융 내 농협은행의 비중이 60~70%에 달하는 만큼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동시에 교체하면 경영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올 상반기 농협금융은 연결기준 순이익으로 전년 대비 3.7% 증가한 1조9737억원을 거뒀다. 이 가운데 농협은행의 비중은 61.7%에 달한다.

역대 농협금융 회장을 지냈던 6명 대부분은 초임 2년의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거나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해 3년을 채운 인물들이다. 1959년생인 이 회장은 1983년 행정고시 26회에 합격해 경제부처에 들어왔다. 재정경제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서 예산과 금융 분야를 섭렵해 관련 능력을 인정받으며 기재부 2차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을 역임한 뒤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까지 지낸 정통관료 출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에는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다.

금융사고 책임론…이석용 은행장, 세대교체 수순 밟나

/그래픽=박진화 기자

1965년생인 이 행장은 199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후 인사전략팀장, 조합감사위원회 사무처 국장, 농협은행 수탁업무센터장, 농협은행 서울영업본부장을 거친 후 농협중앙회 기획조정본부장을 맡았다. 정통 농협맨인 만큼 이 행장의 경영성적표도 올 상반기 1조2667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역대 최대가 기대된다. 다만 농협 조직에서는 실적이 연임 여부를 판가름하지 않기 때문에 내부통제 이슈로 연임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특히 지주 회장과 행장 교체가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는 배경은 그룹 경영안정성 차원 외에 역대 중앙회장과 농협은행장 간 역학관계에 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장이 바뀌면 세대교체 차원에서 지주 회장보다 행장이 먼저 교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6년 신용과 경제부문 분리(신경분리) 이후 첫 중앙회장인 김병원 중앙회장이 취임하자 이경섭 전 행장이 임기만료에 따라 이대훈 전 행장으로 교체됐다. 이대훈 전 행장은 농협은행장 최초로 3연임에 성공했지만, 2020년 이성희 중앙회장이 취임한 뒤 임기가 9개월가량 남은 상황에서 전격 사퇴했다.

특히 강 중앙회장이 취임하면서 내놓았던 내부통제 및 관리책임 강화 방안은 직접적으로 이 행장의 연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중대 사고에 대한 범위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8월 117억원대의 횡령을 비롯해 올해 들어 10억원 이상의 금융사고가 4건이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계열 자회사 금융사고에 대한 관리·감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 행장은 금융사고가 일어난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오십보 백보이기는 하나 이 회장보다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더욱 낮은 이유다. 특히 금융당국이 농협금융 조직의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사하면서 경영진 세대교체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례 깼던 윤해진 농협생명 대표, 이번에도?

/그래픽=박진화 기자

1965년생인 윤 대표는 199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중앙회 상호금융여신부장, 제39대 중앙회 경남지역본부장, 농협은행 신탁부문장 부행장을 지낸 농협맨이다. 부행장을 맡은 지 1년 만에 농협생명 대표가 되면서 농협생명의 지주 출신 CEO 선임 공식을 깬 인물로도 꼽힌다. 윤 대표 취임 당시 중앙회 소속 임원이 지주를 거치지 않고 은행에만 잠시 있다 생명 CEO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윤 대표의 거취도 관심을 끈다. 역대 농협생명 CEO들은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2012년 초대 대표를 지낸 나동민 전 대표가 1년 연임한 사례가 있으나, 이후 선임된 김용복, 서기봉, 홍재은, 김인태 전 대표 모두 2년씩 임기를 채우고 퇴임했다. 윤 대표가 이번에도 단임에 그칠지, 연임에 성공하며 관례를 깰지 주목하는 이유다.

농협 조직에서 경영성적표가 CEO의 연임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윤 대표 취임 이후 농협생명의 재무건전성은 개선됐다. 윤 대표 취임 전인 2022년 자본잠식에 빠졌던 농협생명의 실적은 지주의 유상증자 참여 등 전폭적인 지원으로 개선됐다. 올 상반기 순이익은 1639억원으로 전년 대비 12.4% 증가했다. 보장성보험 판매 확대로 보험손익이 46.8% 급증한 2815억원을 기록하면서다.

임초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