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카프(KAPF)’를 아시나요

최병구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2025. 9. 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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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카프'라는 조직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사회주의를 이론적 무기로 했던 카프의 문학, 넓게 말해 프로문학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100년 전 조직인 카프를 알아야 할까? 이에 대한 답변은 긴 글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테크놀로지와 일상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지금-이곳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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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인간 관계 비판적으로 사고했던
100년 전 사회주의 문화단체 돌아보자

올해는 '카프'라는 조직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카프'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에스페란토어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줄임말로 1925년에 결성되어 1935년 해산한 사회주의 문화단체이다. 식민지 시기 카프는 당대의 사회주의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문학, 영화, 미술,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친 활동을 했다.

사회주의를 이론적 무기로 했던 카프의 문학, 넓게 말해 프로문학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100년 전 조직인 카프를 알아야 할까? 이에 대한 답변은 긴 글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테크놀로지와 일상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지금-이곳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변화시키는 삶의 한복판에 있다.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만들 미래를 예측하고 적응하길 요구한다. 기술 혁신이 생산성 혁신으로 이어지며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서사가 다시 등장했다. 분명 기술 혁신으로 우리의 삶은 과거보다 편리해졌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100년 전 카프는 당대의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과 테크놀로지의 상관성을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넘어설지 고민했다. 카프의 준기관지 <조선문예>에 게재된 다음의 문장을 살펴보자.

"근대적 생산과정은 기계를 빌어서 대량생산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핑핑 도는 인간-군중들은 꿈을 꾸어도 강렬한 꿈을 꾸어야 속이 시원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자동차의 속력을 따라가게 되고 강렬한 자극과 고속도의 회전이 우리의 신경을 유쾌하게 한다." - 최승일, '대경성파노라마' <조선문예>, 1929년 5월 86면.

근대가 기계의 발달로 생산성을 높이고 우리의 감각은 속도감을 따라간다는 지적은,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근대 100년의 역사가 이런 궤적으로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초기 프로문인들은 테크놀로지와 속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토대로 기계문명의 시대에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아나키스트 이향의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자는 "대도시의 금융기관이며 상업시장이며 근대 도시제도가 기계를 인생의 주인"('인생과 기계, 기계와 문예(5)', 동아일보, 1929년 11월 1일)으로 여긴다는 경고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최승일과 이향은 이러한 공통된 현실인식을 토대로 기계로 수렴되지 않는 주체의 감각을 되살리길 요구했다. 카프에 대항했지만 누구보다 프로문학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던 염상섭도 기계문명에 익숙해진 조선을 목도하며, "전심(全心) 전령(全靈), 전정(全情)을 쏟아부어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새로운 생명을 창조"('명일의 길-다시 기계정복', 조선일보, 1929년 9월 1일)하길 촉구했다. 이들은 이념 지향은 다르지만, 기계를 상대할 수 있는 인식과 욕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테크놀로지와 인간이 공존하는 삶을 상상하고 기획하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 매우 절박한 일이다. 어쩌면 100년 전 프로문학에 담겨 있는 그 쟁투의 흔적에서 지금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최병구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