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찾고 싶은 하이트진로, ‘방패막’ 고른 롯데칠성… 주류사 사외이사 보면 미래도 보인다
주류 면허와 허가, 국세청이 담당...면허 취소 권한도 소유
참여연대 “방패막이 활용 의도 의심”
우리나라 주류시장이 갈수록 성장하는 가운데, 주요 주류기업들이 새 사외이사 모시기에 나섰다.
사외이사는 회사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지만, 방만한 경영을 감시하고 기업 방향성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올해 주류업계가 새로 선임하려는 사외이사 명단을 보면 그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려는지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새로 선임을 앞둔 주류 관련 상장사 사외이사 중에선 10명 가운데 8명이 국세청이나 세무서, 혹은 법조계 경력이 있었다.
이 때문에 주류업계를 관리·감독하는 국세청과 검찰·법원 출신 인사를 대거 중용하는 것은 본래 선임 취지와 달리 사외이사를 방패막이 구실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오는 24일 주주총회에서 강명수 한성대학교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하이트진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강 교수가 ‘마케팅 및 글로벌비즈니스 분야 경영 전문가’라며 ‘주요 경영 현안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강명수 교수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관세청 특허심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학계에서도 강 교수를 단순한 마케팅 기법 연구에 그친 학자형 교수가 아니라, ‘기업과 협력사가 함께 성장하는 한국형 동반성장 프로그램에 정통한 행동하는 교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한국콜마홀딩스 사외이사기도 하다.
강 교수는 직무수행계획에 ‘소비자 정책, 브랜드 관리, 사회공헌 및 동반성장에 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업 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고 적었다.
하이트진로는 국내 최대 주류회사다. 특히 소주시장에서는 점유율을 기준으로 절대강자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내내 원소주가 증류식 소주를 앞세워 시장 판도를 흔드는 동안 이렇다 할 맞불을 놓지 못했다.
하반기에는 경쟁사 롯데칠성음료가 무설탕 소주 ‘새로’로 하이트진로 텃밭인 희석식 소주 시장까지 조금씩 빼앗기 시작했다.
NH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가 국내 소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15.8%로 2021년보다 1.2%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하이트진로는 롯데칠성음료보다 3개월 이상 늦게 간판 상품 ‘진로이즈백’을 제로슈거(무가당) 콘셉트로 개선하는 방안을 내놨다.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새 사외이사 두명을 국세청 조사국장 출신, 판사 출신 변호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이달 내놓은 사업보고서에서 “임경구 신임 사외이사 후보는 국세청 조사국장을 역임한 법인·국제조세 분야 전문가”라고 밝혔다.
조현욱 신임 사외후보에 대해선 “회사법을 전공한 법률가로서 기업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바탕으로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업의 법적 책임과 준법경영 기조에 합치하는 경영 의사 판단의 적임자”라고 밝혔다.
주류 혹은 주정(酒精) 관련 기업이 국세청 출신 임원을 기용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국세청은 주세(酒稅)와 주류 면허를 담당한다.
주류에 관한 허가, 단속권이 대부분 국세청 권한이다. 주정업체 같은 경우 신규 면허 발급 권한과, 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면허를 취소할 권한도 국세청이 모두 갖고 있다. 그야말로 생사여탈권을 쥔 셈이다.
이 때문에 매년 국세청 퇴직자가 주류업계에 취업하는 관행을 두고 국회와 소비자 단체에서는 ‘유관기관과 유착 아니냐’고 지적해왔다.
현행 ‘퇴직공무원 관리방안과 전관예우방지를 위한 관리방안’에 따르면 국세청 퇴직 공무원은 일정규모 이상 법무·회계·세무법인,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에 취업을 제한한다. 하지만 관리감독 대상이었던 주류업계 취업에는 제한이 없다.
롯데칠성음료 뿐 아니라 다른 상장사에서도 국세청과 검찰·법원 출신 인사는 유난히 강세를 보였다. 1953년 창업한 유서깊은 주정업체 풍국주정은 올해 신임 사외이사로 서울 성동세무서장을 지낸 장동희 세무사를 선임할 예정이다. 창해에탄올 신임 사외이사 후보에 오른 한동연 세무법인 동심 고문 역시 광주지방국세청장 출신이다.
사외이사진 3명을 한꺼번에 물갈이 하는 한국알콜은 대검찰청 출신 차재목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이번 주주총회에 올렸다. 차재목 고문은 공개적으로 주주관여 활동을 펼쳐온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한국알콜 측에 추천한 인물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부터 국세청 관료 출신을 사외이사로 앉히는 사례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10년 넘게 나오고 있는데, 롯데칠성음료처럼 우리나라 주류 사업을 대표하는 기업도 여전히 전관예우로 의심할 만한 선임을 계속하고 있다”며 “투명한 경영 감시를 위해서라면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감독기관이었던 국세청 출신 인사, 현 정부에서 가장 힘이 센 권력 집단인 법원 출신 인사를 동시에 사외이사 자리에 앉히는 것은 애초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한다는 사외이사 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 호남지역 대표 주류기업 보해양조는 김준 경방 회장을 사외이사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김준 회장은 지난 6년 동안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를 지내면서 거버넌스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김 회장은 사외이사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2차 전지) 사업 자회사 SK온을 분사시키는 중책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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