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주자 등장에도 환호하는 팬들
어제(한국시간 18일) 경기 끝부분이다. 다저스가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윌 스미스가 출루했다.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간 것이다. 스코어는 9-11, 2점 뒤진 상황이다. (다저스-에인절스, 프리웨이 시리즈)
이때부터 관중석이 끓기 시작한다. 다음 타자는 오타니 쇼헤이다. 한 방이면 된다. 그런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잠시 후, 장내 스피커가 켜진다. 선수 교체 안내다. 윌 스미스가 빠진다. 대신 1루에 다른 주자가 나간다. “혜성 킴~”이라는 이름이 들린다. 박수와 함성의 볼륨은 여기서 한 번 더 커진다.
흔치 않은 광경이다. 겨우 대주자일 뿐이다. 2점 차에서 할 게 없다. 2루, 3루를 연달아 훔쳐도 소용없다. 그런데도 관중들이 굳이 일어선다. 그리고 열심히 박수를 쳐준다.
바로 이 장면이다. 최근의 다저스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김혜성이 누상에 있다. 상대 내야가 어수선하다. 1루수, 2루수, 유격수가 모두 안절부절이다. 투수와 포수는 오죽하겠나. 눈치 볼 일이 수두룩하다. 이제나저제나. 언제 뛸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분산된다. 타석에 100%를 집중하지 못한다. 천하의 오타니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 부분이다.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래서 더 박수 소리가 커진다. 굳이 일어서서 게임을 보게 만든다. 굳이 초롱초롱한 눈빛이 된다.
(이날은 뜻이 이뤄지지 않았다. 오타니가 침묵했다. 다음 무키 베츠에서 경기가 끝났다. 동점 혹은 역전에는 실패했다.)

2명이 돌아온다, 2명은 빠진다
다저스에 좋은 소식이 들린다. 병가를 떠났던 주력 타자들이 속속 돌아온다는 뉴스다.
우선 토미 에드먼이 복귀했다.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도 차례를 기다린다. 이미 마이너리그에서 실전 감각을 회복 중이다.
둘이 빠진 기간은 2주가량이다. 그동안 팀은 잘 버텼다. 여전히 서부 지구 1위를 지키며 순항 중이다. 이제 곧 정상 라인업이 가동된다. 그러면 한층 더 안정감이 생길 것이다.
반면 고민도 깊다. 2명이 올라온다는 것은 2명이 내려가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명은 쉽다. 제임스 아웃맨을 빼면 된다. 또 하나가 문제다. 대상 후보가 바로 김혜성이기 때문이다.
본래는 이럴 일이 아니다. 계획이 뚜렷했다. 당시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이렇게 밝혔다. “김혜성은 주로 벤치에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 경험은 일시적일 것이다.” 그러니까 2주를 전제로 한 승격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그것도 180도로 달라졌다. 잠시 쓰기로 한 ‘알바’가 일을 잘한다. 잘해도 너무 잘한다. 이젠 없으면 허전하다. 그만두라고 하기는 너무 아깝다.
모르는 사람은 쉽게 생각한다. ‘그럼 데리고 있으면 되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못 하는 게 문제다. 잘하면 그냥 쓰면 된다. 그게 무슨 걱정거리냐.’ 그런 논리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치 않다. 포지션이 빤~하다. 인원은 정해졌다. 로스터(현역 명단)는 26명을 넘길 수 없다. 대기자까지 포함해도 최대치는 40명이다.
그걸 넘으면 소유권을 포기해야 한다.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계약한 연봉은 모두 지불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LA타임스 “Kim은 남아야 한다”
벌써부터 LA가 시끌시끌하다. ‘김혜성은 빼면 안 된다.’ ‘그럼 누굴 제외시키냐.’ 그걸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그런 와중이다. 명쾌한 기사가 등장했다. 가장 영향력이 큰 LA타임스를 통해서다. 필자는 딜런 에르난데스다. 과감하고, 직설적인 필체로 악명(?) 높은 칼럼니스트다.
이런 내용이다. (각색과 과장이 포함된 번역임을 감안하시라.)
“그 해맑은 웃음에 라커룸이 밝아졌다. 그 배트 덕분에 축 처졌던 팀의 라인업이 힘을 얻었다. 그리고 번개 같은 스피드로 다저스의 공격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리고 명쾌한 결론을 내놓는다.
“흔히 로버츠 감독이 곧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는 소리들을 한다. 아니다. 전혀 어려울 이유가 없다. Kim은 계속 메이저리그에 남아야 한다. 그를 위한 타석이 부족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다저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면서 이름 하나를 꺼내 놓는다.
“다저스는 Kim이 LA에 남을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 부상자 명단을 최대한 활용하라. 그리고 크리스 테일러를 잘라라.”

다저스, CT3와 결별하기로
사실 모두의 머릿속에는 있다. 감히 입 밖에 내놓지 못할 뿐이다.
크리스 테일러(Chris Taylor). 이니셜과 백넘버에서 딴 ‘CT3’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선수다. (NBA의 크리스 폴이 ‘CP3’로 명칭의 원조격이다. 비슷한 시기에 LA 클리퍼스에서 활약했다.)
대단한 스타는 아니다. 그러나 유틸리티 앞에 ‘슈퍼’라는 수식어가 붙는 플레이어다. 포수, 1루수 빼고는 전 포지션을 소화한다. 스피드가 빠르고, 파이팅이 넘친다. 무엇보다 팀에 헌신적이다.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활용도가 높고, 탄력적인 라인업을 운영하게 해주는 존재다. 로버츠 감독의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실현시켜 주는 대안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저스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 선수를 버리라니. 그것도 매정하게 방출시키라니.
올해가 4년 계약(총액 6000만 달러, 약 840억 원)의 마지막 해다. 그러나 작년부터 하락세가 뚜렷하다. 34세의 나이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를 마이너리그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은 DFA(양도지명)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자유의 몸이 된다. 올해 연봉(1300만 달러)은 전액 지불해야 한다.
무엇보다 여론이 신경 쓰인다. 다저스는 이미 몇 명의 야수를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개빈 럭스를 내보냈다. 최근에는 고참 포수 오스틴 반스를 DFA로 풀었다.
이들에 비해 CT3는 비중이 크다. 함부로 처리하기에 부담스럽다. 연금 문제도 걸렸다. 올 7월이면 서비스 타임 10년을 채운다. 연금 100%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다저스가 당장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현실이 됐다.
다저스는 19일(한국시간) 크리스 테일러를 DFA로 처리한다고 밝혔다. 이날 복귀한 토미 에드먼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뜻이다. 김혜성을 ML에 잔류시킨다는 의미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단기 알바에 지나지 않는 처지였다. 에드먼이 올라오면, 다시 사라져야 했다. 마이너리그가 열리는 이름 모를 어느 도시로 말이다.
그걸 뒤바꿔 놨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이제는 진짜 메이저리거가 됐다. 불가능해 보였던 과정이다. 그걸 모두 극복했다. 스스로 자격을 입증한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