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으로 미국의 물가가 약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하고 소비자 심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더라도 전쟁 여파가 수개월간 경제 전반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휘발유 가격은 전월 대비 21.2% 급등했다. 이는 1967년 미 정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이는 월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분의 약 4분의3을 차지했다.
전쟁 이후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평균 1달러 이상 상승했고 이는 이미 고물가 장기화에 부담을 느끼던 소비자들에게 추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젤을 포함한 기타 자동차 연료 가격도 30.8% 급등해 사상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3월 헤드라인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3% 올라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그러나 전월 대비 상승폭은 0.9%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물가가 크게 뛰었던 지난 2022년 6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피치레이팅스의 올루 소놀라 미국 경제 책임자는 “이러한 추가 요금이 청구서에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며 소비자들은 이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며 “항공료나 사치성 여행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상품 가격 전반이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이란이 2주의 휴전에 합의했지만 글로벌 공급망과 에너지 인프라에 이미 가해진 충격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학자들은 이번 분쟁이 성장률을 둔화시키고 물가를 끌어올리며 소비자의 구매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영향의 정도는 분쟁 기간과 향후 긴장 재고조 여부에 달려 있다.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로 인해 4월 초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 심리도 2009년 이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4월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 잠정치는 47.5으로 전월의 53.3에서 10% 이상 하락했다.
우드맥킨지의 이사벨 길스크는 국제유가가 휴전 소식에 하락했지만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이 완화되더라도 연말까지 휘발유와 디젤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가스버디의 패트릭 드한은 메모리얼데이(5월25일) 무렵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약 3.65달러 수준에 이르고 여름철에는 3달러대 중반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분쟁이 재격화되면 미국 내 평균 가격이 5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충격 외에도 비료 공급 차질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운송비 상승 역시 다양한 소비재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Y-파르테논의 그레고리 다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피해는 발생했다”며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이는 전 세계 소비자와 기업에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2월 실질 가처분소득이 감소했고 저축률 하락 등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전쟁이 발생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더욱 약화됐다. 물가를 반영한 소비 지출은 몇 달간 부진한 흐름을 보인 이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세금 환급 확대, 관세 인하 등은 소비자들에게 완충제 역할을 일부 할 수 있다. 또 3월 CPI에서 육류, 유제품, 계란 등 식료품 가격이 하락해 일시적인 완화 요인도 나타났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의 낸시 반덴 하우튼은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보다 큰 타격을 입은 저소득 가구가 다른 분야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최근 시장 변동성에 따른 자산 효과는 고소득층 소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들도 신중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들이 채용과 투자를 일시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관망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통상 연준은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 지표를 인플레이션과 정책 방향을 판단하는 데 참고한다. 3월 근원 CPI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연준이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보다 지속적인 물가 압력을 시사해왔다.
시티그룹의 베로니카 클라크는 “연준은 당분간 금리 인하를 보류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로서는 확실히 관망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최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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