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런 저지, '신의 영역'에 도전하나

애런 저지 (게티이미지코리아)

애런 저지(33)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다. 2022년 62홈런 시즌을 포함 50홈런 시즌을 세 차례 달성했다. 메이저리그 역대 5명밖에 해내지 못한 기록이다.

최다 50홈런 시즌 타자

4 - 베이브 루스
4 - 마크 맥과이어
4 - 새미 소사
3 - 알렉스 로드리게스
3 - 애런 저지


이 가운데 맥과이어와 소사, 알렉스 로드리게스(에이로드)는 금지약물로 인해 몰락했다.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는 배리 본즈도 마찬가지다(2001년 73홈런). 이에 2022년 저지가 62홈런을 때려냈을 때 '청정 홈런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저지가 넘어선 선수는 1961년 로저 매리스(61홈런)였는데, 매리스의 아들은 본즈와 맥과이어, 소사를 '범법자'로 규정한 바 있다.

2024
2022년 저지는 첫 번째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해 두 번째 MVP를 따냈다. 158경기 58홈런 144타점을 올렸다. 타율은 .322, OPS는 1.159였다. 타율이 바비 위트 주니어(.332)와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323)에게 밀리면서 트리플 크라운은 놓쳤지만, 2년 전보다 타격적으로 발전한 모습이었다.

성적도 더 좋아졌다. 홈런 수는 넘지 못했지만, 다른 성적들은 모두 개선됐다. 특히 유인구를 잘 골라내면서 타석 당 볼넷률이 2022년 15.9%에서 지난해 18.9%로 올랐다. 덕분에 볼넷 삼진 비율도 데뷔 후 가장 높았다(2022년 0.63, 2024년 0.78).

조정득점생산력(wRC+)은 종합적인 공격력을 측정한다. 리그 평균과 파크팩터를 보정한 값이기 때문에 시대를 아울러 비교할 수 있다. 리그 평균 100보다 클수록 좋은 타자다. 이 기록을 볼 수 있는 <팬그래프>는 160이면 '훌륭한 등급'이라고 분류했다.

2022년 저지는 이 조정득점생산력에서 '206'을 기록했다. 평균보다 106% 더 뛰어났다. 차원이 다른 타자였다. 그런데 지난해 저지의 조정득점생산력은 무려 '218'이었다. 바로 아래 그룹 오타니 쇼헤이(181) 후안 소토(180)와 차이가 분명했다. 1920년 라이브볼 시대 이후 7위에 해당했다.

라이브볼 시대 단일 시즌 최고 wRC+

244 - 배리 본즈 (2002)
235 - 배리 본즈 (2001)
234 - 베이브 루스 (1920)
233 - 배리 본즈 (2004)
225 - 베이브 루스 (1923)
223 - 테드 윌리엄스 (1957)
218 - 애런 저지 (2024)


본즈의 기록은 앞서 언급한 이유로 신뢰하기 어렵다. 그러면 지난해 저지보다 더 압도적인 타자는 1920년 베이브 루스와 1957년 테드 윌리엄스밖에 없다.

1920년 루스는 역사상 최초로 50홈런 고지를 밟으면서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당시 루스를 제외하면 20홈런을 넘긴 타자도 없었다. 루스보다 더 홈런을 많이 친 '팀'도 필라델피아(64홈런)뿐이었다. 이러한 파급력을 일으킨 타자와 비교된 것이 지난해 저지였다.

2025
지난 시즌 저지는 '처음과 끝'이 아쉬웠다. 출발이 너무 좋지 않았다. 5월3일 시즌 첫 33경기를 치뤘을 때 타율이 .197에 그쳤다. 손 위치가 미세하게 높아진 탓에 스윙 매카닉이 흔들렸다. 저지는 이 문제점을 뜯어고친 뒤 125경기에서 타율 .357 52홈런, OPS 1.279로 폭주했다. 초반 부진이 아니었다면 지난해 성적은 더 좋았을 것이다.

끝도 쓴맛을 남겼다. 포스트시즌에서 완전히 자존심을 구겼다. 포스트시즌 14경기 동안 홈런 3개를 날렸지만, 시리즈 내내 타격감이 떨어져 있었다(49타수 9안타 .184). 심지어 월드시리즈 5차전에선 결정적인 수비 실책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저지의 타격 (양키스 SNS)

그래서일까. 올해 저지가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원래 초반 적응기를 보낸 뒤 점점 페이스를 끌어올렸는데, 올해는 벌써 독주 채비를 갖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지 주요 타격 지표 (ML 순위)

홈런 : 14개 (1위)
타점 : 40개 (1위)
득점 : 39개 (2위)
타율 : .414 (1위)
출루율 : .500 (1위)
장타율 : .783 (1위)
OPS : 1.283 (1위)
wRC+ : 256 (1위)

*득점 1위 오타니 44득점


저지는 밀워키와의 개막 시리즈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2차전에서 만루포 포함 3홈런 8타점을 쓸어담았다. 한 경기 8타점은 개인 신기록이었다. 양키스 선수가 3홈런 8타점 경기를 선보인 것도 2005년 에이로드 이후 20년 만이었다.

양키스 타자 3홈런 8타점 경기

1930/5/23 : 루 게릭 (3홈런 8타점)
1936/5/25 : 토니 라제리 (3홈런 11타점)
1995/9/1 : 폴 오닐 (3홈런 8타점)
2005/4/27 : 에이로드 (3홈런 10타점)
2025/3/30 : 애런 저지 (3홈런 8타점)


저지는 단순히 한 경기에서 불타오른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맹타를 휘둘렀다. 지난 시즌 초반에 볼 수 없었던 몰아치기가 올해는 빠르게 자주 나왔다.

시즌 초반 저지는 홈런에 집착하지 않았다. 좋은 타구를 생산하면서 치고 나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확성에 신경을 쓴 결과 5월4일까지 첫 33경기 타율이 .432에 달했다. 지난해 첫 33경기 타율 .197와 대조적이었다.

저지는 4월 한때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 4월6일부터 4월28일까지 20경기 동안 홈런이 단 하나였다. 같은 기간 타율은 .425였지만, 사람들은 저지의 홈런을 그리워했다. 그러자 카를로스 로돈은 "이번 주엔 토니 그윈이었지만, 다음 주는 행크 애런이 될 수도 있다(Right now, he’s like Tony Gwynn, Next week, he’ll probably be like Hank Aaron)"고 말했다. 그윈은 역사상 손에 꼽는 교타자, 애런은 설명이 필요 없는 홈런 타자다.

로돈의 예언은 정확했다. 이후 저지는 14경기에서 홈런 7개를 집중했다. 그러면서 홈런 단독 선두에 올랐다. 지난해 아깝게 놓친 트리플 크라운을 정조준하는 모습이다.

변화
저지는 이미 정점에 있는 타자다. 더 애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저지는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했다. 만족을 모르는 자세로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려고 했다.

2024년 저지(왼쪽)와 2025년 저지 스탠스 (중계화면 캡쳐)

지난 시즌 초반 저지는 오픈 스탠스를 취했다. 앞발을 조금 열어뒀다(왼쪽). 그런데 올해는 두 발이 거의 평행을 이루는 스퀘어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오른쪽).

저지는 스탠스의 각도를 좁힘으로써 빠져나가는 공을 좀 더 오래 지켜보고 있다. 지난 시즌은 바깥쪽 공의 대처가 다소 떨어졌지만, 올해는 바깥쪽 공에도 무시무시한 성적을 거두는 중이다.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세 구간 성적 (타율/장타율/헛스윙률)

24 : .268 / .472 / 30.2%
25 : .523 / .955 / 26.9%


저지는 투수들이 그나마 해답을 찾아냈던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도 강점으로 바꿔놓았다. 그렇다고 최정상급 파워를 갖춘 저지에게 몸쪽 승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웃존으로 향하는 유인구도 저지를 속이는 건 어려웠다. 그러면 보더라인 피칭으로 저지를 막아야 하는데, 그 피칭을 완수할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

저지는 스트라이크 존을 보다 확실하게 커버하고 있다. 자연스레 정확성도 나아졌다. 스트라이크 존 콘택트율 81.1%는 데뷔 후 최고 수치다(2023년 72.5%, 2024년 77.3%). 상위 1%에 속하는 평균 타구속도(95.9마일)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지는 존에 들어오는 공을 그저 맞히는 게 아니다. 온 힘을 다해 강하게 때려낸다. 좋은 타격의 표본이다.

지난해 저지는 좌완이 던지는 체인지업에 약했다. 표본이 많진 않았지만, 타율이 .182에 머물렀다(22타수 4안타). 장타율도 저지에게 어울리지 않는 .364였다.

좌완 체인지업은 대개 우타자 바깥쪽으로 흘러간다. 위에 언급된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들어간다. 올해 이 부분 대처력을 높인 저지는 좌완 체인지업 상대도 잘해내고 있다. 아직 지켜봐야 되지만, 6타수 2안타(.333) 1홈런이다.

투수들의 숨 쉴 공간마저 없앤 저지는 더 숨 막히는 타자가 됐다. 지난해 저지가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와 비교된 타자였다면, 올해 저지는루스와 윌리엄스를 합친 타자다. 시즌 초반을 감안해도 이 정도의 위압감을 준 타자는 극히 드물었다.

전인미답
현재 저지는 55홈런 페이스다. 통산 4번째 50홈런 시즌에 도전한다. 스퍼트를 낸다면 60홈런도 충분히 가능하다.

경기 전 저지 (양키스 SNS)

궁금한 건 타율이다. 저지는 50홈런 시즌들의 타율이 결코 낮지 않았다. 2017년 52홈런 타율 .284, 2022년 62홈런 타율 .311, 지난해 58홈런 타율 .322였다. 그런데 올해는 4할 타율을 상회한다. 참고로 50홈런 시즌의 최고 타율을 보유한 타자는 1921년 베이브 루스다.

50홈런 시즌 최고 타율

0.378 - 베이브 루스 (1921)
0.376 - 베이브 루스 (1920)
0.364 - 지미 팍스 (1932)
0.356 - 베이브 루스 (1927)


1920년대 메이저리그는 공의 반발력이 달라지면서 타자들이 우위에 섰다. 1921년 리그 평균 타율이 .286였다. 1900년 이후 5번째로 높은 타율이다. 그리고 위에 있는 4시즌 역시 1920-30년대다. 투수들이 라이브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시기였다.

1900년대 이후 리그 최고 타율

0.292 - 1930년
0.289 - 1929년
0.288 - 1925년
0.286 - 1922년
0.286 - 1921년


반면, 오늘날 메이저리그는 투고타저에 가깝다. 투수들의 구속 상승과 구종 다양화가 더해지면서 타자들의 타율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현재 리그 평균 타율은 .243에 불과하다. 투수들의 시대가 극에 달했던 1968년 리그 평균 타율 .237와 큰 차이가 없다.

라이브볼 시대 리그 최저 타율

0.243 - 2025년
0.243 - 2024년
0.243 - 2022년
0.242 - 1967년
0.237 - 1968년


즉, 리그가 전체적으로 타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저지는 나홀로 타율이 치솟았다. 과거 선배들보다 불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4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타율 .406를 기록한 이후 4할 타자 명맥이 끊겼다. 물론 4할 타율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지만, 그만큼 저지의 타격은 완성형에 가깝다.

올해 저지는 그동안의 시즌들이 마치 예고편인 것처럼 폭발하고 있다. 본편이 안겨줄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클라이맥스가 기다려진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