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백기사 합류 ‘베인캐피탈’, 투자이력 살펴보니 [넘버스]

베인캐피탈 /사진=베인캐피탈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탈이 최윤범 회장의 우군으로 나서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합류했다. 분쟁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고 투자 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는 데다 엑시트(자금회수)가 불투명한 가운데 최 회장의 백기사가 된 것이다.

고려아연은 베인캐피탈과 공동으로 총 3조1000억원을 투입해 이날부터 자사주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이 중 고려아연이 약 2조7000억원, 베인캐피탈이 약 4000억원을 각각 부담한다.

베인캐피탈의 과거 지분투자 사례는 이번 투자의 배경을 이해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베인캐피탈은 그간 특정 기업의 경영권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백기사를 자처하며 틈새를 노리는 전략으로 딜에 참여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국내의 휴젤 투자가 꼽힌다. 베인캐피탈은 지난 2017년 4월 경영권 분쟁 등 내홍을 겪던 휴젤의 지분을 9275억원에 인수했다. 휴젤은 생화학 박사인 문경엽 대표와 성형외과 의사인 홍성범, 신용호 원장이 주도하고 40여명의 의사들이 출자해 2001년 설립한 보톡스 회사다. 2003년 보톡스 자체 개발에 성공한 뒤 2010년 보톡스 제품 판매를 시작했으며 2015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당시 휴젤의 최대주주는 동양에이치씨로 지분 24.36%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양에이치씨는 문 대표와 홍 원장이 각각 43.3%씩 동일하게 지분을 소유한 특수목적회사(SPC)였다.

문 대표와 홍 원장은 2016년부터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홍 원장은 동양에이치씨의 지분을 50.75%로 늘리며 실질적인 최대주주에 올라 휴젤에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이후 올해 1월 문 대표 해임안건을 놓고 임시 주총 소집도 추진했다. 공동창업자 간 경영권 분쟁이 1년 넘게 이어지던 시점에 휴젤은 홍 원장 측의 경영 참여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며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이후 문 대표와 홍 원장은 경영권 분쟁을 끝내고 제3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표는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홍 원장은 의료 플랫폼 사업 등을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베인캐피탈은 휴젤의 두 공동창업자가 경영권을 두고 옥신각신하던 사이 인수기회를 포착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경영권 분쟁의 틈을 파고들어 딜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 결과 베인캐피탈은 2017년 휴젤을 9274억원에 인수할 수 있었다. 이후 휴젤 밸류업(기업가치)에 성공해 조 단위의 엑시트도 완료했다. 베인캐피탈은 2021년 GS·CBC컨소시엄에 휴젤을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GS·CBC 컨소시엄은 GS그룹, 아시아 헬스케어 전문 투자펀드 CBC그룹, 국내 사모펀드 IMM인베스트먼트, 중동 국부펀드 무바달라로 구성된 해외 SPC다. 이 중 CBC그룹이 최대주주다. 베인캐피탈은 휴젤 매각으로 내부수익률(IRR) 20%를 상회하는 등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했다.

고려아연과 유사하게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된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도운 경험도 있다. 미국 악기 소매 체인점 기타센터 투자자 그 예다. 1959년 설립된 기타센터는 기타, 드럼, 키보드 등 음악장비를 판매하며 304개 매장을 운영하는 미국에서 가장 큰 악기 소매 업체다. 기타센터는 2000년대 중반 디지털 음악 시장이 활발해지며 매출 감소 등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기타센터의 일부 주주가 경영진의 전략과 재무 성과에 불만을 나타낸 데다 헤지펀드까지 등장해 기존 경영진의 두려움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2007년 베인캐피탈은 21억달러(부채 포함)를 투입해 기타센터 지분 50%가량을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베인캐피탈은 기존 경영진인 마티 앨버트슨 체제를 유지하며 경영진과 협력해 운영효율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기타센터의 기존 경영진은 베인캐피탈의 지원으로 경영효율을 높일 수 있었고 주주와도 소통하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타센터는 베인캐피탈의 대표적인 투자실패 사례로 꼽힌다. 인수자금을 차입자금으로 충당하는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기타센터를 인수한 방식이 문제가 됐다. 기타센터는 베인캐피탈의 매수를 지원하며 16억달러의 부채를 부담한 데다 수익성 악화까지 겹치며 재무여건이 크게 악화됐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기타센터가 베인캐피탈의 매수를 지원하기 위해 6억5000만달러의 기간대출, 7억5000만달러의 채권, 3억7500만달러의 인수금융을 제공했다며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채무출자전환(debt-for-equity swap)이 이뤄져 기타센터의 채권자였던 글로벌 투자사 아레스매니지먼트가 경영권을 갖게 됐다. 이후 기타센터는 팬데믹으로 2020년 파산신청을 했지만 현재는 칼라일그룹, 브리게이드캐피털매니지먼트를 주주로 맞아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고려아연 투자는 휴젤, 기타센터 사례와 다르지만 업계에서는 베인캐피탈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배인캐피탈 등 대규모 미국계 PEF 운용사는 경영권 분쟁 관련 딜이든 뭐든 형식을 개의치 않고 투자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엑시트까지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경영권 분쟁인 만큼 엔트리밸류(진입가격) 자체가 높은 데다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했다.

1984년 설립된 베인캐피탈은 1850억달러(약 250조원)의 운용자산(AUM)을 보유한 미국계 PEF 운용사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밋 롬니 상원의원이 공동 창업자 중 하나다.

남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