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에 벚나무가…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게스트하우스
지붕에서 벚나무가 자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일본에 등장했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이 독특한 숙소의 이름은 코도마리 후지(Kodomari Fuji). 코도마리 후지는 일본에서도 산이 많기로 이름난 나가노(Nagano)현과 야마나시(Yamanashi)현 경계에 위치한다. 일본 남알프스, 야쓰가타케 연봉(Yatsugatake Mountains)과 저 멀리 후지산(Mount Fuji)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그림 같은 곳에 자연경관과 딱 어울리는 게스트하우스가 만들어졌다.
건축사학자가 만든 공간
이 기발한 게스트하우스를 대체 누가 만든 걸까, 사진 속 아기자기한 집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건축가가 궁금해진다. 코도마리 후지는 일본 건축가이자 사학자인 테루노부 후지모리(Terunobu Fujimori) 손에서 탄생했다.
1946년 나가노현(Nagano Prefecture) 지노시(Chino)에서 태어난 테루노부 후지모리는 1970~80년대 초기 서양 건물과 도시를 주로 연구했다. 그가 건축을 시작한 것은 40대 이후부터다. 1991년 그의 첫 번째 작품 ‘진초칸 모리야 역사 박물관(神長官守矢史料館, Jinchōkan Moriya Historical Museum)’을 선보이면서 건축계에 데뷔했다. 그 후 다카스기안 찻집(Takasugi-an Tea House, 2003~2004), 라무네 온천(Lamune Onsen, 2004~2005), 네무노키 미술관(Nemunoki Museum of Art, 2004~2006) 등을 선보이면서 본인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해갔다.
테루노부 후지모리는 ‘자연과의 조화’를 컨셉으로 공간을 설계한다. 건축물에 식물을 접목하는 그의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건축사학자로서 그가 쌓아온 지식을 더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창조한다.
코도마리 후지의 주인 노리코와 야마코시 카즈노리 부부는 “테루노부 후지모리의 건축물에 반해 많은 마을과 도시를 찾아다녔다”며 “그의 철학에 반해 건축 설계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첫 구상부터 구체적인 건설계획을 세우는 데만 13년이 걸렸다. 주인 부부는 인스타그램(@kodomari_fuji)에 코도마리 후지 구상 단계부터 공사 과정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코도마리 후지의 백미는 벚나무를 심은 지붕이다. 이 나무는 ‘후지자쿠라(Fujizakura)’로 마을의 상징인 300년 된 수양벚나무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지붕 전체는 손으로 직접 제작한 동판으로 덮여 있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벚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코도마리 후지는 크게 3개 공간으로 구분된다. 앞머리가 둥그렇고 길쭉한 것이 위에서 보면 커다란 배처럼 생겼다.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에 침실과 보관실, 왼쪽에 거실과 주방이 있다. 거실에 반원 모양의 발코니를 설치했다. 여기서 바라보는 마을 전경이 참 정겹다. 나무가 자라나는 지붕 말고도 건물 곳곳에 자연의 흔적이 담겨 있다. 불에 그을린 삼나무 판자로 외벽을 감싸고 바닥과 가구는 밤나무로 제작했다. 여름에는 거실로 연결되는 데크에서 쉬고 겨울에는 벽난로를 바라보며 불멍도 할 수 있다. 코도마리 후지에서는 투숙객이 직접 건물 인테리어 디자인에 참여해볼 수 있다. 숯을 천장에 붙이는 작업을 2024년 8월 말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된 논에 위치한 코도마리 후지의 전체 부지는 4000㎡다. 이중 실제로 투숙객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63㎡정도. 게스트하우스 주변으로는 전형적인 일본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정갈한 논이 산과 만나는 곳까지 가득 찬 모습은 익숙한 듯 낯설다.
코도마리 후지가 세워진 땅은 20만년 전 대규모 화산 폭발로 형성된 곳이다. 화산이 터지자 야쓰가타케 산맥이 무너져 내렸고 용암이 식으면서 지반이 만들어졌다. 조몬시대(Jomon Period, 대략 기원전 1만4000년부터 기원전 300년까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코도마리 후지 이용방법
코도마리 후지는 하루 딱 한 팀만 묵을 수 있다. 주인이 건물에 상주하는 것이 아닌 완벽한 독채 공간이다. 한 번에 최대 5명까지 투숙 가능하다. 침실에 침대 2개, 거실에 2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이불 세트가 제공된다.
투숙객에게 당부하는 말이 눈에 띈다. ‘나중에 묵을 손님을 위해 객실 사진을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삼가세요.’ 돈을 써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여느 곳과는 다르다. 다른 투숙객이 온라인에서 공간을 미리 보게 될 경우 실제 코도마리 후지에 도착했을 때 몰입감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이 같은 문구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건물 외관이나 주변 풍경을 올리는 것은 괜찮다.
코도마리 후지에 머무는 동안 향수나 섬유유연제 등 향이 강한 제품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주인 부부는 인공적인 향기 대신 코도마리 후지 건물 안팎에서 풍기는 자연의 냄새에 집중해달라고 당부한다. 수건과 치약, 칫솔, 전신에 사용할 수 있는 샴푸 등이 어메니티로 제공된다. 여기에 어른용 잠옷도 준비했다. 벽난로는 겨울에만 이용할 수 있고 밥솥과 각종 조리기구, 식기류 등도 구비했다.
음식은 숙소 내 주방에서 직접 해먹을 수 있도록 재료를 따로 판매하고 있다. 샤브샤브 세트 2~3인 4950엔(약 4만4000원), 4~5인 7920엔(약 7만1000원)이다. 얇게 썬 돼지고기, 현지에서 수확한 제철 야채 3~4종, 버섯, 각종 양념과 지역에서 생산한 쌀, 달걀 등이 포함된다. 샤브샤브 세트를 주문하려면 숙박일 최소 3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조식으로는 직접 만든 그래놀라, 우유, 두유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원한다면 팬케이크 믹스와 버터, 각종 토핑도 주문할 수 있다.
숙소 한쪽에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식품 저장실이 있다. 현지 수제 맥주와 각종 술, 스낵, 기념품을 취급한다. 캠핑 의자와 피크닉 매트도 대여해준다. 객실은 1박 6만6000엔(약 59만원)부터다. 여기에 1인당 이용요금 8800엔(약 7만9000원)이 추가된다. 예를 들어 2명이 묵을 경우 객실 요금 6만6000엔에 2인 이용료 1만7600엔(약 15만8000원)을 합쳐 총 8만2600엔(약 74만5000원)을 내야 한다. 미취학 아동은 무료, 초등학생은 1인 3300엔(약 2만9000원), 중학생부터는 1인 5500엔(약 4만9000원)이다. 체크인은 오후 2시부터 5시, 체크아웃은 오전 10시다.
홍지연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