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철도 터널에 최신 개발 차량들이 모여드는 이유

127년된 케이츠비(Catesby) 터널의 대변신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고 있던 시절의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수도 런던과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 노선의 건설이 한창이었다. 그레이트 센트럴 메인 라인(GCML, Great Central Main Line)이라 불린 철도 노선은 1899년 개통되어 주로 석탄을 런던으로 운반했다.

으레 철도 노선 건설 이야기가 그렇듯 노선 건설에는 우여곡절이 따랐다. 런던과 맨체스터의 중간 지점쯤 위치한 노샘프턴셔(Northamptonshire)에서는 철도 노선 건설 책임자와 토지 소유주인 헨리 애튼버러(Henry Attenborough)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철도로 인해 자신이 아끼는 풍광이 훼손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들은 합의를 보았는데 풍광을 해치지 않으면서 철도 노선을 놓는 방법이 제시됐다. 바로 터널을 뚫고 그 안에 철도 노선을 까는 것이었다. 노선이 개통되기까지 2년여를 남긴 1897년, 마침내 길이 2.7km, 폭 8.2미터, 높이 7.8미터의 완벽하게 직선을 이룬 철도 터널이 완공됐다. 터널은 19세기 당시 대부분의 영국 건축물에 쓰인 스탠포드셔 블루(Staffordshire blue) 벽돌 3천만 개로 만들어졌다. 터널의 이름은 해당 부지의 이름을 딴 케이츠비(Catesby)로 지어졌다.

그레이트 센트럴 메인 라인은 20세기의 절반을 넘긴 1966년 9월 폐쇄를 맞았다. 68년 동안 운행됐던 이 철도 노선이 폐쇄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케이츠비 터널 내부의 선로도 철거되며 사람들에게 잊혔다. 관리도 허술해지면서 때로는 터널 내부에 여기저기에서 스며든 물이 30cm가량 차올라 있기도 했다.

20세기 말부터 케이츠비 터널을 부활시키자는 제안이 하나 둘 등장했다. 다시 철도 노선으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터널을 자동차 시험 시설로 전환하자는 제안이 등장했다. 이 제안은 2017년 승인되며 케이츠비 터널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터널을 시험 시설로 전환하는데 소요된 예산은 총 130만 파운드(한화 약 227억 원)였다.

2020년, 케이츠비 터널 안팎은 새로운 시설로 개조를 위한 공사로 무척 분주해졌다. 배수 시설이 현대화됐고 풍동 시험을 위한 시설물과 센서도 설치가 이뤄졌으며 노면에는 철도 대신 자동차를 위한 아스팔트가 고르고 평평하게 포장됐다. 그리고 2021년 폐쇄된 지 54년 만에 철도 터널에서 자동차 시험 시설로 케이츠비 터널은 새로이 거듭났다.

터널은 자동차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빛, 전파, 바람, 소음 등의 요소들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험 시설로서 매력이 극대화된다. 2.7km 길이의 완벽한 직선이라는 것도 케이츠비 터널이 자동차 시험 시설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던 조건으로 유리하게 작용됐다.

이러한 이유로 케이츠비 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긴 자동차 실내(Indoor) 시험 시설로서 업계에 알려졌다. 특히 일관된 시험 환경이 보장되어 반복 테스트가 가능하고 시험 결과를 계속해서 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 높은 매력을 가진다.

24시간 동안 외부 온도와 케이츠비 터널 내부 온도의 비교

케이츠비 터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험은 코스트다운(Coastdown)으로 차량에 작용하는 기계적(타이어) 또는 공기 역학적 저항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코스트다운 시험은 대상 차량이 목표 속도에 도달한 후 중립 기어로 변속해 타력 주행 상태에서의 감속량을 계측해 저항의 정도를 평가한다. 2.7km의 여유 있는 길이를 갖춘 케이츠비 터널에서는 최고 180km/h의 속도에서 시작하는 코스트다운 시험도 가능하다고 한다.

최신예 차량들은 ADAS 기능 탑재 의무화로 인해 차량 외부에 센서 및 카메라가 장착된다. 터널이 제공하는 시험 환경의 일관성 덕분에 작고 사소한 센서 부착 유무에 의한 저항 차이도 데이터로 확인 가능하다. 터널의 폐쇄적 환경이 제공할 수 있는 매력이다.

이외에도 레이스 머신의 공기 역학 성능 계측 및 파워트레인, 제동 시스템의 냉각 효율 검증을 비롯해 소음원 파악 및 소음 수준 계측에도 특화되어 있다. 2023년에는 WTLP 인증도 획득하여 배출가스 및 효율 검사도 이뤄진다.

19세기 자그마치 127년의 역사를 가진 노후 터널이 최신예 차량들의 시험을 위해 활용되고 있다. 케이츠비 터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하루 10시간 사용 기준 1만 5천 파운드(한화 약 2622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반나절은 5시간 기준으로 8천 파운드(한화 1398만 원)다. 그 외에는 2시간 이상 임대를 조건으로 한시간당 시험 차량 주행 속도에 따라 1000 파운드(한화 약 175만 원), 1150 파운드(한화 약 201만 원)로 이용 요금이 책정됐다. 자전거의 시험 비용이 가장 저렴한데 3시간 기준 1000파운드다.

휴일인 일요일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한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 볼 수도 있다.

국내에도 케이츠비 터널과 유사한 사례가 있다. 과거 경부고속도로의 구간이었던 충청북도 옥천의 당재터널을 스마트팜으로 가꾼 것. 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후반부에 공사가 진행됐던 당재터널은 공사 중 11명이 사망하는 등 당시 최악의 난이도를 가진 공사 구간으로 악명이 높았다.

오토뷰 | 전인호 기자 (epsilonic@autovie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