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개월째 미사일 도발 ‘0건’, 4년 만의 이례적 행보
북한이 지난 5월 초 이후 5개월째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의 마지막 발사는 5월 8일 원산 일대에서 실시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수발이었다. 당시 미사일은 최대 800km를 비행한 뒤 동해상에 낙하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추가 도발은 없다.
북한이 이처럼 장기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멈춘 것은 2021년 3월 이후 약 4년 만의 일이다. 과거에도 174일간의 공백 기간이 있었으나, 이번처럼 정치적 맥락이 복잡한 시기에 도발을 중단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재명 정부 이후 첫 ‘무도발’ 기간 지속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단 한 차례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은 극초음속미사일을 포함해 5차례의 발사를 감행하며 한미 연합훈련에 강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그 행보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공백이 아니라 정치적 신호로 읽힌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향후 열릴 수 있는 북미 간 대화 국면을 염두에 둔 ‘의도된 자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을 자극하지 말라” 김정은의 신중한 계산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멈춘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김정은이 불필요한 자극을 피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북한을 옹호하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화 재개의 실마리가 마련된 상황에서 굳이 ‘적대적 행동’을 취해 협상 구도를 깨뜨릴 필요가 없다. 트럼프가 향후 북미 관계의 재정립을 검토하는 가운데, 북한 역시 ‘대화의 여지’를 남기며 전략적 유화책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무기 과시 방식 변화 ‘발사 대신 시찰’
북한은 도발 대신 김정은의 군수공장 시찰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는 무기 능력을 과시하되, 국제사회의 직접적 제재나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절묘한 방식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26일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핵물질 생산 관련 협의를 주재하며 “핵무력은 우리의 절대불변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0월 초에는 미사일총국 산하 연구소를 방문해 신형 ICBM ‘화성-20형’ 개발 현황을 점검했다. 이는 발사 없이도 군사력 과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략적 노출’이라 부른다. 즉, 발사하지 않아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노출하며 내부 결속과 대외 억제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식이다.

도발 대신 대화 준비?
북한의 ‘조용한 행보’는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제9차 노동당 대회와도 맞물려 있다. 김정은은 대회를 앞두고 대내외적으로 안정적 환경 조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경제 성과를, 외부적으로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최근 북러·북중 외교를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 복귀를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확대, 중국과의 교류 복원 등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위한 ‘후방 안정판’ 역할을 한다. 이러한 다층적 외교는 결국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에서 전략적 여유를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전문가 “대화 국면 전환 앞둔 조용한 계산”
전문가들은 이번 장기적 도발 중단을 ‘전략적 관망기’로 규정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실험이 필요한 무기만 제한적으로 발사하고, 과거처럼 한미훈련에 맞춘 시위성 발사는 줄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의 무기공장 방문은 도발 없이도 무력 과시 효과를 높이려는 수단”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미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북한은 지금 ‘도발을 멈춘 평화’가 아니라, ‘다음 국면을 준비하는 침묵’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대화의 문을 닫지도, 완전히 열지도 않은 채 시간을 벌고 있는 이 전략적 공백기가 한반도 정세의 새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