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개인의 서사를 따지지 않는다"..27년전 참사 생존자가 전하는 위로[박로명의 '처음 만난' 보통사람]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생존자인 ‘산만언니(필명)’ [박해묵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0/ned/20221010110153260fosb.jpg)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10년 동안 밥을 삼키기 어려웠다. ‘밥 잘 챙겨먹으라’는 안부가 제일 불편했다. 차라리 한 번 먹으면 수일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수녀님이 ‘얼굴이 상했다’며 칼칼한 비지찌개를 차려주셨다. 그 밥이 너무나 맛있어 허겁지겁 퍼먹었다. 처음으로 한 그릇을 비웠다. 이젠 밥에 진심이다. 잘 차려진 따뜻한 밥 한 끼가 위로가 된다.”
1995년 6월 29일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생존자, ‘산만언니(필명)’의 고백이다. 그는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무탈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안정과 평화를 경험했다면 찰나의 행복을 누려본 것이라고 했다. “슬프지 않았던 날들이 모두 행복”이라며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그를 지난달 29일 청명한 초가을, 서울 강서구 마곡나루공원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 스틸컷.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부상을 당했다. [논픽션 다이어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0/ned/20221010110154623mgwq.jpg)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
그는 운이 좋게도 무자비한 확률 게임에서 살아남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선혈을 흘렸던 자리에 긴 지렁이 같은 흉터가 남았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상흔은 그대로였다. 그는 “사고를 기점으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며 “절대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20살, 그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사고 당일 삼풍백화점 지하 1층 물품보관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식품 코너에서 불러 걸어가는데 불과 20초 만에 옥상부터 지하까지 폭삭 무너졌다. 건물 상판이 주저앉으며 매서운 회오리바람을 만들어냈고, 건물 파편들은 총알이 돼 사방으로 튀었다.
그가 원래 서있던 자리는 저승의 문턱이 됐다. 영업용 냉장고가 15㎝만 하게 납작해졌을 정도로 천장과 바닥이 바짝 붙어버렸고 시신을 수습하기조차 어려웠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건물의 파편들이 살갗을 뚫고 들어와 뒤통수부터 발꿈치까지 박혔다.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생존자인 ‘산만언니(필명)’ [박해묵 기자]](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0/ned/20221010110156032ydhw.jpg)
‘그 사고’로부터 27년이 지났다. 아직도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는 스스로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것이다. 잘 먹이고, 잘 씻기고, 잘 재우기 위해 매일 애쓴다. 이런 선순환이 깨지면 순식간에 불안과 공황에 압도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인생의 관점이 변했나?
=인생이 허무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사람 운명인데 왜 살아야 하나 싶었다. 불행의 서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 직후 2년간 집 안에 틀어박혀 암막 커튼을 치고 지냈는데 의사가 말하길 “최대한 빨리 일상에 복귀해 바쁜 하루를 보냈어야 치료가 빨랐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렇게 무기력한 20대를 보낸 후 10년이라는 잠복 기간을 거쳐 30대에 정신적인 문제가 터졌다. 불안·우울·조증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오랜 기간 문제가 묻혀 있다가 10년 후에 정신적 문제가 터진 이유는?
=10년까지 참고 산 것 같다. 연애도 해보고, 해외여행도 가보고 남들이 좋다는 건 다 해봤다.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더라. 30살을 앞두고 ‘앞으로 인생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겠다’는 생각을 한순간 우울감이 폭발해버렸다. 죽는 것 밖에 답이 없겠다 싶었다. 자살 시도도 하고, 자해도 했다. 전조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느낄 수 없는 정서적 무감각 상태가 지속됐다. 알고 보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가운데 하나였다. 의사가 ‘롱 텀 PTSD’라고 했는데, 사고 이후 트라우마 증세가 즉각 발현되지 않고 얼마간의 시간을 지나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 스틸컷.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부상을 당했다. [논픽션 다이어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0/ned/20221010110157386vnpg.jpg)
▶생존자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완벽하게 고립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보편적 슬픔’이 아니다. 아무도 마음을 알아줄 수 없어서 인간관계 자체가 힘들어진다.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않게 되고, 기대하지 않게 된다. 인간은 연결돼있을수록 행복한데 한없이 고독해진다.
▶2018년 온라인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연재로 이름을 알렸다.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세월호가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침묵할 수 없어 글을 올렸다. 유가족만큼 노란색이 지겨운 사람이 있었겠나. 유가족의 마음을 모르겠으면 배우고, 그것도 안 되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침묵이 야만적인 민낯보다 낫다. 어렸을 때부터 별명이었던 ‘산만언니’를 필명으로 쓰니 주변 사람들이 ‘삼풍 생존자였냐’며 물어보더라. 회사 동료가 페이스북에 글을 공유했는데 작성자가 아닌 척하며 ‘공감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 스틸컷.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50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부상을 당했다. [논픽션 다이어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0/ned/20221010110158671wrwg.jpg)
▶지인들에게 생존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살아왔나. 처음 말했을 때 반응은?
=20대 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사고로 생긴 흉터에 대해 물으면 교통사고라고 답한 적도 많았다. 거짓말을 하다 보니 상대방에게 마음을 터놓기 힘들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숨겼다. 그러다 2014년 세월호 팽목항을 다녀오면서 주변에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 삼풍 생존자야”라고 말하면 대다수 반응은 “집 좀 살았나 보네”였다. 삼풍백화점은 강남구 서초동에 있었던 고급 백화점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압구정 갤러리아’ 이미지였다.
▶실제로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나.
=삼풍백화점은 ‘부유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기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사고가 터졌을 때 사람들이 더 감정 이입을 했던 것 같다. (저는) 부유한 집안도, 법조인 집안 출신도 아니었다. 신림동에 사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삼풍백화점 사고는 ‘재해재난 사고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의 완벽한 교본이었다. 사고 현장엔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종교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이 모두 있었다.

▶최근에도 참사는 계속된다. 포항 주차장 침수 사고나 대전 아울렛 화재 사고 등 이런 사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삼풍백화점 사고 같은 참사들이 쪼개져 얼굴과 이름을 바꿔서 찾아온다. 규모가 작냐 크냐의 문제지, 결국 사고는 모두 같은 것이다. 사망자가 한 명이든 수백 명이든 미리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면 차이가 없다. 아직 한국 사회는 유리판 위를 걷는 오징어게임의 ‘징검다리’와 같다. 사람들은 어디가 안전한 유리인지 알 수 없다. 적어도 앞서 걸었으니까 겨우 살아남았으니까 ‘거긴 밟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사고, 세월호 침몰 등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살아난 생존자들에게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언젠가 책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남의 인생을 살려면 그 사람의 살가죽을 입고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 정도로 알 수 없는 것이 남의 인생이고, 생존자나 유가족의 마음은 헤아리기 힘든 것이다. 최소한 사회가 조롱과 멸시와 비난만 하지 않아도 좋겠다. 억울한 사람 억울하다는데 그저 사회가 친절하게 대해줬으면 한다. 유별나게 기억해달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고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사를 자신의 일처럼 느끼지 못한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기적이라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시대정신이 한몫을 하는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수동적으로 각자도생을 받아들인 것 같다. 법은 늦고, 문화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이러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에게 마이크를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무엇인가.
=밥이다. 사고 후 수년간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밥을 차리는 것도, 먹는 것도, 치우는 것도 귀찮았다. 그러다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보육원에 봉사를 갔는데 수녀님이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시더라. 여러 차례 거절해도 밥상을 떠밀었다. 묵은지 비지찌개와 가자미 튀김, 포기김치를 내어주셨다. 못 이긴 척 밥을 한 숟갈 떴는데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그릇을 싹 비운 후에 수녀님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 따뜻한 밥 한상에 치유의 힘이 있었다. 몸속의 에너지를 가득 채웠다. 이젠 밥을 신봉한다. 밥에 진심이다.
▶사고 후 작가님이 깨닫게 된 행복의 진정한 의미는?
=행복은 강렬한 감정이 아니다. 처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강아지들과 산책하다 지는 노을을 봤을 때. 그런 순간순간의 평온함이다. 하루 중 행복한 순간을 꼽아보자면 5분일 것 같다. 1년으로 보면 봄의 며칠이지 않을까. 대다수 날은 춥고, 덥고, 습하고, 어둡고, 외롭다. 인생을 멀리 보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발끝, 배꼽만 보고 살자’고 다짐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기로 했다.
!['산만언니'는 동물보호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유기견 '복주(사진)'를 키우게 됐고 이후 유기견 입양, 중성화 수술 지원 등 동물 보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사실상 버는 돈을 다 여기에 쓰고 있다”며 웃었다. [산만언니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0/ned/20221010110201406mhtr.jpg)
▶앞으로 계획은?
=처음엔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려웠는데, 이젠 알리고 싶은 증언의 욕구가 더 커진 것 같다. 첫 책인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출간한 이후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가제는 ‘어떻게 견디셨나요’다. 세월호 침몰, 천안함 피격, 대구 지하철 화재, 씨랜드 화재,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등 여러 참사의 생존자와 유가족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사고 이후 밥을 먹는 게 죄책감이 들었다. 비슷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고, 어떻게 밥을 다시 먹게 될 수 있었는지 묻고 알리고 싶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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