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5000만원 더 보호해주면 좋은 거 아니야?”…예금자보호한도 갑론을박 재점화
4일 금융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23년째 ‘1인당 5000만원’에 묶인 국내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 조정해야한다는 논의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찬성 측은 현행 보호한도가 23년간 변화한 경제적 여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재정비가 시급하단 입장이다.
지난해 1인당 GDP는 3만5570달러(약 4742만원)로, 2001년 1만2000달러(약 1599만원) 대비 약 세 배 증가했다. 국민소득 성장과 함께 예금 규모도 함께 커졌다. 지난 6월 말 기준 부보예금액은 2419조원으로 2001년보다 다섯 배 가까이 신장했다.
국민소득과 예금 규모 성장세를 보호한도가 따라가지 못하자, ‘미보호 예금’도 덩달아 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예금보험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저축은행·보험·금융투자업권에서 예금 규모가 5000만 원을 넘겨 ‘보호되지 않는’ 예금 규모는 올해 3월 기준 1454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체 금융권 예금 규모(2924조원)의 49.7%로, 예금액 절반 정도가 유사시 보호를 받을 수 없단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이 계속 지지부진할 경우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서라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관련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이 대표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과 위험성이 극히 높아지고 연체율이 치솟고 있어 만에 하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벌어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등 예금자 불안을 완화해야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으로 SVB가 보유한 장기 국채 가치가 하락하자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대규모 인출을 시작했고, SVB는 유동성 부족, 지급불능 상태가 돼 파산한 바 있다.
보호한도 상향의 근거가 제기돼도 관련 논의가 20여년째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권 예금보험료 인상 부담이 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 물가 인상을 자극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가 공개한 연구 용역 결과에 따르면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 시 보호받는 예금 비율은 약 7%포인트 상승하지만, 보호 한도 내 예금자 비율은 98.1%에서 99.3%로 1.2%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친다. 보호한도 상향 편익을 누릴 수 있는 소수의 예금자를 위해 전체 금융소비자가 예금보험료 인상 부담을 지게 된단 비판이 나온다.
한 은행에서 최대로 보호해 주는 예치액이 늘면 그동안 여러 은행에 분배됐던 자산이 특정 은행에 쏠릴 가능성도 문제시되고 있다. 만약 예금자들이 주로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형 은행으로 예치금이 집중될 시 중소형 금융사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단 설명이다.
예금보험공사가 최근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상호예금 데이터를 활용해 보호한도 상향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위기 상황에서 상호예금 서비스를 제공한 은행은 예금 조달과 자산 규모가 증가하는 한편 금리리스크 역시 증가했다. 특히 취약 은행을 중심으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단 분석이다.
상호예금 서비스는 은행이 예금자로부터 고액 예금을 수취해 이를 보호한도 이내로 분할하고 타 은행에 재예치해주는 서비스다. 이를 통해 고액 예금에 대해서도 전액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다.
KDIC 예금보험연구소는 “예금자 보호를 강화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일률적인 한도 조정, 업권별 차등화, 동일 업권 내 상품별 선별적 한도 도입 등 다양한 방안의 장단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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