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에 전 세계도 충격…美 국무부 부장관 “尹, 심하게 오판”
트럼프 복귀 앞두고 美는 ‘의회 난입 폭동’ 트라우마 떠올려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국회에는 어린이집이 있다. 국회 직원 자녀가 주로 다닌다. 국회 어린이집 아이들은 국회 운동장에서 매일같이 뛰논다. 그곳에 12월3일 밤 군용 헬기와 공수부대가 들이닥쳤다. 다음 날 아침 국회 어린이집에는 많은 아이가 등원하지 않았다. 아직 어수선한 곳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다. 그날 부득이하게 아이를 등원시킨 한 학부모의 SNS에는 "나도 울고, 선생님도 울었다"고 쓰여 있었다. 그 학부모는 아이들이 노는 곳에 헬기와 군이 들어온 게 "데미지(충격)가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계엄령 소식에 충격이 큰 건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외신들은 충격과 놀라움을 전했다. 외신들은 대부분 한국의 계엄 상황을 '충격'으로 표현했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이) 1980년대 이후 민주주의 국가로 여겨졌지만, 국가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에서 계엄령이 확대되었던 당시의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로부터 40년 이상 훌쩍 지나 윤 대통령이 야당을 겨냥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전하며 "윤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조치에 많은 한국인이 충격을 받았고,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이전의 군부 통치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CNN은 케임브리지대학의 존 닐슨-라이트 동아시아학 교수를 인용하며 "이런 일이 일어난 건 기괴하다"며 "누구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미국이 민주주의 증진을 대외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왔는데 동맹국인 한국 대통령의 결정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현지시간 12월4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결정에 대해 "심각한 오판"(badly misjudged)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캠벨 부장관이 이날 한 행사에 참석해 한국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자 "매우 문제가 있고 위법적"이라며 윤 대통령의 판단을 이같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전 세계를 충격에, 한국을 위기에 빠뜨린 尹"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 세계를 충격에, 한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대통령'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충격적인 것은 (한국이) 경제와 군사안보의 중추적 파트너이자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 질서의 지지자로서 위상이 높아진 시점에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라면서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윤 대통령이 한국 내 '친북 세력'을 제거하고 '자유민주적 헌정 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이유만을 언급했을 뿐 계엄령 발동에 대한 근거와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교도통신도 윤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 척결을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 USA투데이는 계엄령이 미국에서는 정말 낯선 개념(alien concept)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브래넌정의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미국 역사에서 총 68회 정도의 계엄령 선포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명확한 헌법 규정이나 정의가 없어 미국에서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라고 전한다.
브래넌정의센터는 미국에서의 계엄령 사례를 ①군이 법률 집행 주체가 아닌 상태에서 민간 당국을 지원하는 경우 ②군이 법률 집행 주체로서 민간 당국을 지원하는 경우 ③군이 민간 당국의 역할을 대체하는 경우로 정리했다.
①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당시 군이 구조활동을 지원한 경우 ②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군이 진압작전을 지원한 경우 ③은 진주만 폭격 이후 군이 하와이 지역을 관할했던 경우를 들 수 있다. ③의 경우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계엄령의 전형에 속하는 유형인데 이마저도 미국에서는 하와이 사례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다.
연방주의 국가로 출발한 미국에서는 19세기 초중반 이전까지 군의 비상통치 개입은 터무니없는 일로 간주되었다. 1814년 당시 앤드루 잭슨 장군(훗날 제7대 미 대통령)이 영국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뉴올리언스에서 통행 금지, 언론 검열, 영장 없는 구금 등을 한 적이 있는데 미국 역사에서는 이것이 최초의 계엄에 가까웠다. 당시 잭슨 장군은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지역연방법원은 그에게 벌금 1000달러를 선고했다. 승전 장군에게 가혹한 조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잭슨 장군은 당시 벌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실패하면 쿠데타,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사다.
미국에서는 이후 남북전쟁 중인 1864년에 링컨 대통령이 켄터키 지역을 포함한 일부 지역에 계엄을 선포한 사례, 1903년 제임스 피보디 당시 콜로라도 주지사가 콜로라도 노동전쟁 중 주(州) 내 일부 카운티에 내린 조치 정도가 계엄령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30년대에 머레이 오클라호마 주지사가 재임 당시 30여 차례나 계엄에 준하는 조치를 취한 적도 있다.
尹 보며 트럼프 떠올리는 미국인들
정리하자면 미국 역사에서는 남북전쟁이 시작된 186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40년대까지 60여 차례 계엄에 준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마저도 연방군의 개입은 극도로 제한하고, 각 주에서 자체적으로 주방위군을 동원해 위기관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미국 정치평론가 존 브레스나한과 CNN 백악관 출입 기자 MJ 리가 방송에 출연해 한국 상황이 미국의 1·6 의회 난입 폭동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태생인 리 기자는 트럼프 당선인에 대해 "자신의 적을 상대하는 데 군대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던 인물"이라고 평하며 한국의 계엄 관련 뉴스가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몇 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미국인이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브레스나한도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의 이런 모습들이 트럼프의 복귀를 생각할 때 두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마' 하다가 미국은 1·6 의회 난입 폭동을 겪었고, 우리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었다. 민주주의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꾸고 다듬으며 완성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 세계는 이번 한국의 사태를 보며 이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유혈 피해 없이 6시간 만에 헌법 절차에 따라 사태가 일단락되었다고 안심 혹은 자화자찬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국회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우리가 운동장의 봄을 어떻게 돌려줄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