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숙종 15년이었던 1689년
아직 100일도 안 된 이 아들을 숙종은
원자로 임명합니다.
원자는 세자로 아직 책봉되기 전
임금의 장남을 일컫는 말로

숙종이 후궁 장씨 사이의 아들을
원자로 임명했다는 건
언젠가 크면 이 아이를 세자로,
즉 후계로 임명하겠다는 것이었죠.

더불어 후궁 장씨를 후궁의 등급 중
가장 높은 빈에 임명하니
우리가 알고 있는 희빈 장씨,
즉 장 희빈이 되었습니다.

이때 송시열과 그 추종자들이
이를 문제삼자
숙종은 불 같이 화내며
송시열과 무리들을 삭탈관직 후
유배보내버리고
송시열에겐 최고수위의 유배령을
내립니다.

숙종은 서인을 불경한 무리로 몰아가며
서인 집안이었던 왕비 인현왕후마저
폐서인시켜버렸고,

이를 두고도 서인 86명이
상소를 동시다발적으로 올리자
제대로 숙종의 심경을 건드려
숙종은 주동자들에게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가해 죽였고,

송시열에게도 사약을 내립니다.
조선후기를 정계를 좌지우지했던
송시열은 이렇게 죽죠.

이 사건이 두 번째 환국인
기사환국이고,
기사환국으로 장 희빈은
새로운 왕비로 등극했으며
아이는 이듬해 숙종 16년 세자로
임명되었습니다.